흰 설국과 검은 여인의 머리카락···소설에서 두 색깔은 하나가 됐다

  • 허연
  • 입력 : 2017.04.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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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관에 전시되어 있는 코마코를 모델로 그린 그림. 어두운 전시장과 밝은 그림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 설국관에 전시되어 있는 코마코를 모델로 그린 그림. 어두운 전시장과 밝은 그림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허연의 일본문학 기행-20] 소설 '설국'은 대립과 합일의 연속이다. 야스나리는 상반된 주제나 이미지를 동시에 등장시켜 소설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이끌어간다. 동시에 등장한 대립된 이미지들은 흡사 음양의 조화처럼 하나로 합치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단원으로 흘러간다. '설국'을 읽으면 읽을수록 '짧지만 깊다'는 감흥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소설을 읽고 유자와 마치를 여행하면서 이런 생각은 점점 더 완성되어 갔다.

모든 것이 그랬다. 눈이 많이 내리는 이곳 한촌까지 나를 실어다 준 것은 첨단 교통 수단인 고속열차 신칸센이었다. 고속열차와 한촌은 매우 다른 느낌이지만 이곳에서는 잘 어울린다.

이것은 사실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기도 하다. 일본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에치고 유자와와 이제 서구문명의 현장인 된 도쿄. 두 장소가 소설에서 만나는 것이다.

설국을 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야기하는 분석. 즉 터널을 사이에 둔 현실과 비현실의 구성도 결국 이곳에 오면 하나로 어우러진다.

작품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대립하는 것들을 가지고 이미지를 발현시키는 부분은 너무나 많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 두 명을 보자. 시마무라와 유키오, 이 두 사람은 대립되는 인물이다.

시마무라는 적극적으로 삶의 방향을 정한 사람이다. 무용 평론을 쓰면서 도시에서 살다가 자기 필요에 의해서 유자와를 찾고, 그곳에서 로맨스까지 주도하는 인물이다. 소설 전체를 자기 시각으로, 자기 필요에 의해 직조해낸다.

하지만 유키오는 다르다. 그는 분명 등장인물이지만 대사 한 줄이 없다. 그는 적극적이거나 역동적이지 않다. 소설 초반에 비스듬히 누워 간호를 받는 모습으로 등장해서 소설 말미에는 묘지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역시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시마무라만 있고 유키오가 없는 '설국'을 상상해보라. 그랬다면 아마도 '설국'은 매우 표피적인 작품에 그쳤을 것이다.

생(生)을 상징하는 시마무라와 사(死)를 상징하는 유키오는 하나로 합일되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소설을 들여다보면 대립 장치는 무수하게 많이 발견된다. 권해주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나타난 일본적 문화 특성에 관한 연구'에서 소설 '설국'을 양면지향성, 유현(幽玄)지향성, 합일지향성, 감각지향성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면지향성은 대립되는 이미지를 등장시켜 묘사를 극대화하는 것을 지칭한다.



"벌써 해가 뜨는지, 거울 속의 눈은 차갑게 불타는 듯한 광채를 더해갔다. 그에 따라 눈 속에 떠오르는 여자의 머리카락도 선명한 보랏빛을 띤 검은색으로 짙어졌다."



이 짧고 평범해보이는 문장에서도 대립되는 이미지가 사용된다. '차갑게'와 '불타는 듯한'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상황을 통해 거울 속에 비친 풍경을 설명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흰색의 눈(雪)과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을 대비시키는 것도 의도된 장치다.

스쳐 지나가기 쉬운 대화체 장면에서도 대립되는 이미지는 아주 중요하게 활용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다.



"아는 사람도 있죠, 모르는 사람도 있고요. 손님은 꽤 지체 높은 신분인지 몸이 아주 부드럽습니다."



안마사와의 대화를 묘사하면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한 문장에 놓은 것을 봐도 야스나리는 대비를 통해 합일을 만드는 고수였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대화에서 나오는 다음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즈쓰야의 후미짱인가? 가장 훌륭한 애와 가장 서툰 애가 제일 알기 쉬워요."



여기서도 '훌륭한 애'와 '서툰 애'를 나란히 나열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그려낸다. 풍경 묘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구름이 끼어 그늘이 진 산과 아직 햇살을 받고 있는 산이 서로 중첩되어 음지와 양지가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은 왠지 싸늘해지는 풍경이었다."



"얇게 눈을 이고 있는 삼나무 숲은 삼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또렷이 드러나 찌를 듯 하늘을 가리키면서 땅의 눈 위에 서 있었다."



그늘이 진 산과 아직 해가 비치는 산을 대비시켜 스키장 풍경을 묘사한 것도, 삼나무가 뿌리는 '땅'에 딛고 서서 끝은 '하늘'을 찌른다는 표현도 야스나리가 얼마나 습관적으로 대비되는 이미지를 소설에 깔아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흡사 일본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용어인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확인하는 것 같다. 속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 놓기를 꺼리는 일본인들의 심성에는 두 개의 상반된 코드가 공존한다. 하나가 '혼네', 즉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속마음이고, 나머지 하나가 보호막 혹은 외투라고 할 수 있는 '다테마에'다.

대립되는 것들을 통한 소설의 묘사는 야스나리가 일본적 특성을 그대로 살린 채 신감각을 추구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야스나리가 일본적 특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 결국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평자들이 많다. 맞는 말이다. 노벨위원회가 선정 이유에서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거론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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