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향 나는 숙소서 느낀 소도시 나가사키의 호젓함

  • 이윤식
  • 입력 : 2017.04.20 15:07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BeMyGuesthouse-2] 일본 나가사키 '카가미야'

일본 규슈 나가사키는 작은 도시지만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품은 곳이다. 막부 시대 서방무역 거점 데지마, 천황 입헌군주제 일등공신 사카모토 료마, 2차 세계대전을 끝낸 원폭 투하 등 커다란 사건과 인물도 많았던 도시.

그러나 이곳을 방문하기 전까진 그저 '짬뽕'으로 기억된 곳이었다. 나가사키로 여행지를 정한 데도 딱히 특별한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운 좋게 생긴 2박3일 연휴에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를 찾다 보니 왕복 22만7000원인 나가사키행 저가항공 티켓이 눈에 들어왔던 것.

료마도리에서 내다본 나가사키 전경. 일본 최초 무역상사를 세운 사카모토 료마를 기념하는 조타대가 보인다.
▲ 료마도리에서 내다본 나가사키 전경. 일본 최초 무역상사를 세운 사카모토 료마를 기념하는 조타대가 보인다.
여행 블로그들을 살펴보니 사진 스폿이 몇 곳 없는 게 그리 큰 도시는 아니라는 감이 왔다. 작은 도시에서 호젓하게 지내다 오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숙소는 '카가미야'라는 게스트하우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진을 보니 신사와 산과 어우러진 2층짜리 주택이었다. 가격도 8인실 도미토리가 2박에 5000엔. 가격도 좋고 소도시 정취가 느껴져 예약 버튼을 눌렀다.

나가사키 트램 종착역 호타루자야 정류장. 변두리라 9시가 넘으니 무척 어두웠다.
▲ 나가사키 트램 종착역 호타루자야 정류장. 변두리라 9시가 넘으니 무척 어두웠다.
트램 종착역 호타루자야

'카가미야'는 호타루자야 정류장 근처에 있다. 중심지에서 이 숙소로 가려면 JR나가사키역 앞에 있는 트램 정류장에서 전철을 타면 된다. 호타루자야는 종착역인지라 변두리 느낌이 났다. 밤 9시에 도착하니 깜깜한 데다 길 건너로 비석들이 빽빽이 채워진 공동묘지가 보였다.

이런 곳에 숙소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가뜩이나 숙소 홈페이지에 '오후 9시 이후에는 카운터에 사람이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써 있던 터라 마음이 급해졌다.

지나가는 할머니가 알려주신 방향은 더 깜깜한 골목이었다. 일본 신사 앞에 세운 문을 도리이라고 하는데, 계단 앞에 석조 도리이가 보였다. 조금 오르니 조그마한 신당 하나가 보였다.

'무슨 이런 문화재 같은 곳에 숙소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니 오른쪽에 '나가사키 카가미야', 내가 찾던 숙소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게스트하우스 카가미야 바로 앞 계단에는 빨간 도리이가 늘어서 있다.
▲ 게스트하우스 카가미야 바로 앞 계단에는 빨간 도리이가 늘어서 있다.
나무향 가득한 이층 주택

카가미야는 작은 정원이 딸려있는 2층짜리 주택이다. 중년의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데, 부부는 숙소 옆집에 따로 살고 있었다. 9시가 되면 부부가 자택으로 퇴근한다.

늦게 도착한 나는 어쩔 수 없이 퇴근해 자택에 계신 주인 부부를 찾아가 체크인을 부탁했다. 다행히 인상 좋은 아주머니께서 친절히 맞아주셨다.

나무로 된 여닫이문을 여니 나무의 쓴 향이 전해졌다. 마루도, 천장도, 2층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도 모두 나무였다. '이 숙소를 온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잘 온 거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냄새였다.

아주머니께서는 숙소를 안내해주었다. 1층에 식당 겸 거실이 있고, 거실 맞은편에는 기모노방이 있었는데 옷이 족히 백 벌은 넘어 보였다. 2층에는 객실 3개가 있는데, 내가 사용한 4인용 도미토리는 복도 끝 왼쪽에 있었다. 다른 개인실은 일본인 대학생 커플이 쓰고 있었는데, 방을 헷갈려 문을 열어 보고야 말았다.

카가미야 1층의 거실. 숙소가 풍기는 쓴 나무향과 한켠에서 흐르는 노래소리가 잘 어울렸다.
▲ 카가미야 1층의 거실. 숙소가 풍기는 쓴 나무향과 한켠에서 흐르는 노래소리가 잘 어울렸다.
거실의 밤과 낮

거실은 나무 바닥에 2명이 쓸 수 있는 낮은 소파와 동그란 나무 평상 2개가 있었다. 문 왼쪽 벽에 이곳을 왔다 간 여행자들의 사진과 여행 책자가 보였다. 한밤중에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여가수의 조곤조곤한 노랫소리를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아침에는 식사를 하러 온 숙박객들로 이곳은 다소 북적거린다. 거실 맞은편에는 기모노방이 있는데, 빌려 입고 나오는 여자 여행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침의 거실 전경. 숙박객들이 한데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데, 아침식사로는 식빵과 차가 제공된다.
▲ 아침의 거실 전경. 숙박객들이 한데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데, 아침식사로는 식빵과 차가 제공된다.
묘지와 어우러진 주택가

숙소 바로 앞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동네 산책하는 길에 묘지에 들어갔다. 일본에선 사람들이 사원에 단가(檀家), 즉 신도로 등록하고 죽어서 자기가 등록한 절에서 운영하는 묘지에 묻힌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납골당을 동네 가까운 곳에 두고 평소에도 찾아간다는데, 과연 아침 일찍인데도 참배하러 온 노부부를 볼 수 있었다. 물을 양동이에 떠서 납골당에 뿌려주고 향과 초를 꽂고 합장하는 게 참배 방식이라는데, 직접 그것까지 보진 못했다.

아침의 호타루자야 묘지. 콘크리트 바닥에 석탑묘가 빼곡히 들어서 하나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 아침의 호타루자야 묘지. 콘크리트 바닥에 석탑묘가 빼곡히 들어서 하나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일본 묘지는 봉분이 없는 석탑묘인데, 바닥도 콘크리트로 처리돼 있어서 작은 도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인들은 죽어서도 하나의 마을을 이루며 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카가미야는 트램 종착역 호타루자야에서도 10분 정도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는 만큼 교통이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나가사키 자체가 크지 않은 도시인데다 트램을 타면 바로 JR나가사키역과 중심상업지 하마노마치로 갈 수 있어 불편을 감수할 만하다. 일본 소도시 교외의 호젓함을 느끼고 싶다면 말이다.

[이윤식 부동산부 기자]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숙소 주소

일본 850-0012 Nagasaki-ken, Nagasaki-shi, Hongouchi, 1 Chome-12, 本河1丁目12-9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