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절대美를 위해 시간과 공간을 감추었을지도 모른다

  • 허연
  • 입력 : 2017.04.27 06: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허연의 일본문학 기행-21]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는 장소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주체적인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는 에치고 유자와가 소설의 모티프가 됐고 그곳에 실제로 체류하면서 창작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설 속에는 에치고 유자와를 지칭하는 어떤 행정구역 명칭도 등장하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도 그렇다. 소설이 쓰여진 1930, 1940년대 일본은 한창 군국주의를 외치며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배를 확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소설에서 시대에 대한 단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최초로 단행본 설국이 출간된 것은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937년이었다. 줄거리를 보강한 결정판 설국이 출간된 건 1941년으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8개월 전이었다. 결국 '설국'의 핵심이 된 두 개의 단편 '설중화재'와 '은하수'는 중일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어 가는 매우 민감하고 충격적인 시기에 쓰인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이런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그 어떤 묘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작가의 의도였을 것인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설국이라는 소설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야스나리가 추구했던 절대미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 구체적인 현실묘사는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무렵 야스나리는 적어도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서구의 자기장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우리는 그가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한 연설을 기억한다. 그때 야스나리가 발표한 수상 소감문의 제목이 '아름다운 일본의 나'였다.

그는 진짜 일본의 미가 전쟁 이전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서구문학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고전의 미학을 '설국'에 적용시키고 싶어 했다. 소설에 하이쿠가 등장하고, 노벨상 시상식장에서 13세기 승려시인인 도겐의 시를 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설국'이 쓰이던 무렵의 복잡한 일본의 상황을 묘사할 경우 자기가 추구하고자 했던 절대미가 침해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야스나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을 놓고 일본의 과오를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사는 야스나리가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는다고 해서 왜곡되거나 알려지지 않을 역사가 아니다. 인류역사에 큰 상처를 남긴 너무나 엄청난 과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스나리가 시대를 감춘 것은 그저 문학적 성취를 위해서라고 보는 편이 합당해 보인다.

야스나리는 불교적 무상(無常)에서 비롯된 허무를 가지고 절대미를 완성하고 싶어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는 진실이나 현실이라는 단어를, 비평을 쓸 경우에 사용하긴 했어도 그럴 때마다 낯간지러웠다. 스스로 그걸 알아내려 가까이 다가가고자 마음먹은 적이 없으며, 그저 거짓 꿈에 노닐다 죽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 나는 동방의 고전, 특히 불전(佛典)을 세계 최대의 문학이라 믿는다."



이 발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짐작가는 게 있다.

야스나리는 우리가 '진실'이나 '현실'이라고 믿는 것들의 허구를 익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도대체 무엇이 현실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빠져 있었다.

이때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불교적 무상은 야스나리에게 훌륭한 해답이 되었을 수 있다.

야스나리는 '설국'에서 그 어떤 현실적 좌표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며, 선과 악을 구별하지도 않고, 만남과 헤어짐이나 삶과 죽음도 구별하지 않고 그저 평등한 무게로 바라볼 뿐이다.

뒷부분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야스나리는 자신과 함께 신감각파 문학을 주도했던 미시마 유키오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이 급진적 민족주의로 빠져드는 것을 경계했다. 야스나리 역시 일본의 아름다움을 소설에 구현하고자 했지만, 그 아름다움을 천황이나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데 쓰지 않았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그저 아름다움 자체였으니까. 아름다움에 목적이 생기는 순간 아름다움은 사라진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허연 문화전문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