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투수의 요건

  • 정지규
  • 입력 : 2017.05.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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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쇼미 더 스포츠-43] 야구에서 승리투수란 말 그대로 경기에서 승리를 이끈 투수를 지칭한다. 승리투수는 둘일 수 없으며, 무승부가 발생하지 않은 한, 경기를 치른 양팀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차지할 수 있다.

승리투수가 특히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세이브와 더불어 팀 승리와 직결되는 유이한 공식 시상 기록이라는 점이다. 다승과 최다세이브 모두 투수와 관련된 기록이다. 반면에 타자와 관련된 기록 중 팀 승리와 직결되는 공식 기록은 전혀 없다(과거에 승리타점이 있었으나, 지금은 공식 카운팅과 시상을 하고 있지 않다). 홈런을 아무리 많이 치고, 안타를 아무리 많이 쳐도 그것이 팀 승리를 이끌 개연성은 높지만, 결코 팀 승리와 직결되거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승리를 기록한 투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많은 승리를 기록한 투수의 가치는 야구에서 절대적이다. 하지만 승리투수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아니 꽤 복잡하다.

KBO리그에서 발간하는 야구규칙에는 승리투수에 대해 약 3쪽에 거쳐 기술하고 있다. 다른 기록에 비하면 매우 많은 분량이다. 일반 팬들이 꽤 복잡하게 생각하는 세이브에 대한 정의가 반 페이지도 채 되지 않음을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야구에서 한 경기에 나오는 투수는 선발투수와 구원투수로 이분한다. 선발투수는 경기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투수이고,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선발투수는 그 경기에 나오는 투수 중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또 통계상 그러할 확률이 높다. 구원투수는 선발투수 뒤로 나오는 모든 투수를 지칭한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마무리투수랑 구분해야 한다. 굳이 따진다면 구원투수는 중간투수와 마무리투수의 포괄적 개념이다. 선발투수와 구원투수를 구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발이냐, 구원이냐에 따라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는 요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선발투수는 승리투수가 될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선발투수가 승리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5이닝은 무조건 던져야 한다. 내려오는 순간까지 팀은 리드를 하고 있어야 되고, 이 리드는 경기 종료 시까지 이어져야 한다. 정규이닝이 9이닝으로 돼 있는 야구에서 5이닝을 던진다는 것은 한 팀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것을 의미하며, 많은 이닝을 던진다는 것은 가장 많은 공을 던질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5이닝 이상을 던지는 것은 통상 최소 90개 이상의 공을 던지고, 15타자 이상을 상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한 타자들을 2번 이상 대결할 확률도 높다.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팀은 리드를 잡아야 되는데, 투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찌해서 팀이 리드하고 있는 순간에 내려와도 남은 4이닝 미만에서 계속해서 팀이 리드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동료 투수들을 믿어야만 한다. 내려온 뒤에 선발투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반면 구원투수가 승리투수가 되기 위한 이닝 제한은 없다. 심지어 공 1개를 던지고 승리투수가 된 경우도 있다. KBO리그 원년인 1982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공 1개를 던지고 승리투수가 된 사례는 총 17번(명)이나 있었다. 반면 많은 공을 던지고 심지어 완투·완봉을 하고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는 예도 많이 있다. 공 1개를 던져도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승리투수 요건 중에 정성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KBO리그 규칙집에 10.19 (c)항 (1)번은 "선발투수가 던지고 있는 동안 승리 팀이 리드를 잡고 그 리드가 경기 끝까지 이어졌을 경우 승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투구를 하였다고 기록원이 판단한 1명의 구원투수에게 승리투수를 기록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경우 선발투수는 5이닝을 못 채웠지만 선발투수가 내려올 때 팀은 리드를 하고 있었고, 그 리드가 끝까지 이어진 경우다. 그 경우 가장 효과적인 투수를 한 투수를 승리투수로 기록원은 판단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원의 판단이다. 공 1개를 던지더라도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공이고, 아웃이라면 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승리투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외에 구원투수가 승리투수가 되는 경우는 비교적 명확하다. 팀이 승리하기 전에 마지막 리드를 잡기 직전에 던지고 있는 투수가 승리투수가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구원투수가 직접 할 수 있는 건 없다. 타자들이 자기가 던질 때 역전하기를 바라고, 역전이 된 뒤에는 이게 유지되도록 간절히 바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발투수가 겪어야 될 고생에 비하면 구원투수가 승리투수가 되는 것은 가성비가 높은 일이다.

선발투수의 승리투수 요건은 해당 팀의 감독에게 꽤 골치 아픈 일이다. 팀의 승리와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상상을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선발투수의 활약으로 팀은 근소한 리드를 지키고 있다. 5회에도 선발투수가 나왔지만 선발투수는 흔들리며 동점 내지 역점 주자를 내보냈다. 아웃카운트는 투아웃. 한 타자만 잘 막으면 선발투수는 승리 요건을 갖출 수 있지만 아쉽게도 지금 타석에 있는 타자는 오늘 이미 이 선발투수에게 2개의 안타를 쳐냈다. 감독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팀 승패와 상관없이 승리 요건을 채우게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개인보다 우선시되는 팀 승리를 위해 과감히 교체하는 게 맞을까? 예상했겠지만 정답은 없다. 선발투수를 그대로 놔둔다고 반드시 실점하거나 해당 투수가 그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보장도 없으며, 교체하는 것이 팀 승리를 담보하지도 않는다. 모든 게 결과론이 될 뿐이다. 하지만 감독은 갈등할 수밖에 없다. 선택에 따라 팀을 승리로 이끌거나 선수를 믿는 현자가 될 수도 있고, 팀 승리를 위해 선발투수의 맘을 읽어주지 못하는 가혹한 냉혈한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감독은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을 하나의 기록 요건 때문에 하게 되는 셈이다. 감독이라 리더의 자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정지규 스포츠경영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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