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끝내주는 싱가포르 국민요리 '치킨라이스' 예찬

  • maytoaugust
  • 입력 : 2017.05.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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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부부의 수상한 여행-30] "오빠, 저거 뭐야 무서워."

"웬 음식점 글씨가 저렇게 무섭게 생겼다냐."

싱가포르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KOPITIAM(코피티암)이라고 쓰인 붉은 글씨의 간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저 공포영화 폰트는 뭔데…라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알고 보면 아주 평범하고 대중적인 로컬 푸드코트다. 원래 코피티암이란 것이 '싱가포르식 음식점 및 커피숍'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코피티암 입구
▲ 코피티암 입구
"카야토스트를 파는 야쿤카야토스트, 토스트박스 같은 브랜드들도 다 코피티암이라고 하는 거지."

"그래도 왜 푸드코트 브랜드명 폰트를 저렇게 했는지 모르겠네요."

싱가포르 곳곳에 코피티암이 있는데, 엔터테인먼트의 섬 센토사로 넘어가기 직전 비보시티(Vivocity) 쇼핑몰 내에 있는 코피티암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이곳은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다. 싱가포르의 현지 느낌을 느끼기엔 값비싼 레스토랑들보다는 이런 곳이 훨씬 더 신선하고 좋다.

비보시티 내 코피티암의 신선한 식재료들
▲ 비보시티 내 코피티암의 신선한 식재료들
우리나라 백화점식 푸드코트처럼 음식 종류별로 다양하게 파는 작은 숍들이 모여 있는데, 신기한 건 대부분 이렇게 식재료를 밖에 내놓고 전시한다는 것이었다. 바비큐도 예외는 없다. 커리부터 인도요리, 중국요리, 스시 뭐뭐 별거 할거 없이 다 있다.

"안 고르고 뭐해? 꽤 신선해 보이는데 저거 먹어도 맛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결정장애가 온 벌꿀이가 멍하니 남편만 쳐다보고 있길래 한마디 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고르기로 결심하고 무엇을 주문할까 하다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인도요리점. 옆에 있던 와이프가 도전정신이 마음에 든다며 초를 쳤다.

"솔직히 별로 먹고 싶지 않게 생겼는데 괜찮겠어 오빠?"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게 이런 게 너무너무 좋다."

"그래 오빠가 안 좋은 음식이 어딨겠어…."

직접 고른 인도요리. 일부러 채식주의자 메뉴로 골라봤다.
▲ 직접 고른 인도요리. 일부러 채식주의자 메뉴로 골라봤다.
일부러 몸에 좋은 채식 메뉴로 전부 골랐다. "오빠 많이 배고프지 내 걱정말고 혼자 다 먹어"라고 말하는 그녀를 두고 꿋꿋하게 돈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맛은 약간 짜긴 한데 우리나라 커리와는 확연히 다른 맛이 있어 좋았다.

참. 커리 좋아하는 사람들은 싱가포르의 이런 요리도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싱가포르식 '피시 헤드 커리'인데 인도커리에 생선머리를 넣은 싱가포르식 커리다. 비주얼에 약해 비록 직접 먹진 못했지만 어쨌거나 유명한 현지 음식이니 도전해보길 바란다.

싱가포르 식 피시 헤드 커리. 정직한 이름, 정직한 얼굴.
▲ 싱가포르 식 피시 헤드 커리. 정직한 이름, 정직한 얼굴.
한참 나를 바라보던 와이프가 드디어 무엇을 먹을지 정했나 보다. 일어나는 그녀의 입가에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럼 난 이거 먹을래."

"또 먹게? 어제도 먹었잖아."

"응. 아마 내일도 먹지 않을까?"

놀라긴 했지만 곧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 메뉴가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름하여 '치킨라이스'. 양념하지 않은 닭고기를 삶거나, 오븐에 구워서 밥이나 청경채, 숙주 같은 나물과 곁들여 주는데 우리 돈 4000원대에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비빔밥 위치 정도 되는 국민요리다.
코피티암 치킨라이스
▲ 코피티암 치킨라이스
잠깐 '썰'을 풀어본다면 여기 싱가포르에서 먹는 치킨라이스는 1850년 싱가포르로 이주해온 하이난 출신 중국인들이 주축이 돼 만든 음식이다. 당시 싱가포르는 중국 내 다른 지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이미 농업, 상업, 무역 등 이익이 되는 분야를 모두 선점한 상태였으므로 하이난 출신 이민자들은 틈새 시장을 찾아야 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던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식당,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호텔, 바 등에서 일을 하거나 요리사가 되는 것이었고, 그 결과 하이난 출신 이주자들은 점점 요리사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1920년대 하이난 출신의 웡 이 구안(Wong Yi Guan)은 자신의 고향에서 먹던 끓는 물에서 익힌 닭고기에 밥과 매콤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 방식에 착안하여 닭고기와 쌀밥을 바나나 잎으로 감싸 가게에서 판매했다.

이 치킨라이스가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하고 윙 이 구안 밑에서 일했던 목 푸 스위(Mok Fu Swee)라는 사람이 '스위 키 치킨 라이스(Swee Kee Chicken Rice)'라는 상호의 식당을 차려 치킨 라이스를 판매했는데, 이 요리가 명성을 얻기 시작해 급기야 오늘날 하이난 치킨 라이스가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됐다는 아름다운 얘기가 내려온다.

전날에도 치킨라이스를 먹었다.
▲ 전날에도 치킨라이스를 먹었다.
"오빠, 값도 싸고 맛있어. 요즘 점심 한끼 먹으려 해도 평균 기본 1만원인데, 그 값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니깐."

"응. 가뜩이나 물가도 비싼 나란데 이거(치킨 라이스)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몰라."

밥도 그냥 밥이 아니라 간장에 넣었는지 육수에 우려냈는지 맛도 괜찮았다. 우리 나라 쌀보다 찰기가 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입안에서 종이가루처럼 부스러지는 종류는 아니다. 국물은 닭 삶은 육수 같다. 짜지 않고 밍밍한 맛이다.

인당 5만~6만원 선을 넘기는 싱가포르식 칠리크랩 같은 요리를 매끼 먹을 순 없을 것이고, 여행지에서 로컬 분위기 내면서 한 끼 때우기에는 이런 음식이 제격인 것 같다. 언젠가 한 외국인 친구가 우리나라에 놀러와서 반나절 동안 같이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어딜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무 '김밥x국' 분식집에 데려가서 황제처럼 이것저것 다 시켜서 먹였더니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런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짭쪼름한게 매우 맛있다. 입이 짧아도 무난하게 한그릇 다 먹을 수 있는 맛.
▲ 짭쪼름한게 매우 맛있다. 입이 짧아도 무난하게 한그릇 다 먹을 수 있는 맛.
입맛에 짝짝 맞는 짭조름한 소스와 부드러운 닭고기가 밥과 먹기 참 좋았다며 한 그릇 더 먹으려고 하는 벌꿀이를 말리느라 고생해야만 했다. 싱가포르 동네 음식, 수수한 맛의 치킨 라이스 같은 비슷한 느낌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평범하고 값싼 음식을 먹어도,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MayToAugust부부 공동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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