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흥행보증수표 된 노무현 전 대통령

  • 양유창
  • 입력 : 2017.05.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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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140] '노무현입니다'가 개봉 첫 날인 5월 25일 박스오피스 2위에 등극하며 흥행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애초 제작 자체가 불투명했던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업 영화 대작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상단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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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8년 정계에 입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박진감 있게 그린다. 문재인, 유시민, 안희정, 서갑원, 이광재 등 그의 정치적 동지들과 조기숙, 강원국 등 참모들, 안기부 직원 이화춘, 운전기사 노수현, 노사모 회원 등 29명의 인터뷰이가 그와의 추억을 회고하는 모습을 교차 편집해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을 차분하게 돌아본다. 영화가 공개된 후 완성도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고,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경선 초기 노 전 대통령 모습, 또 문재인 대통령 등 인터뷰이에 대한 호기심 등이 흥행 요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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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첫 주 500여 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했는데 이는 역대 다큐멘터리 사상 최대 규모다. 지금까지 최고 흥행 기록은 2014년 48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갖고 있다. '노무현입니다'가 이 기록을 깰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돌이켜보면 노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매번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변호인'(2013)은 단편영화 한 편 찍어본 적 없는 신인 감독의 영화임에도 '1000만 영화'로 등극했고,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19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작년 다큐멘터리 영화 중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여기에 '노무현입니다'의 흥행 돌풍까지 이어져, 이쯤 되면 노 전 대통령은 어떤 톱스타 못지않은 영화계 흥행 보증수표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왜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매번 큰 관심을 받으며 성공하는 걸까? 필자는 콘텐츠와 영화 매체의 관점에서 두 가지 이유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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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유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가진 콘텐츠로서의 매력이다. 그의 인생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적인 요소가 듬뿍 담겨 있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수천 년 간 구전되어 온 전 세계 신화들을 연구해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신화 속 영웅들이 대개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린다는 것이다. 영웅들은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현실에서 고통받고 각성한다. 이후 스승을 만나 능력을 연마해 도전하지만 좌절한 뒤 다시 절치부심해 영광을 얻고 귀환한다. 캠벨은 이를 12단계로 범주화했고, 이는 스타워즈, 매트릭스 등 할리우드가 영화를 만드는 토대가 됐다.

이러한 스토리 구조에 노 전 대통령의 인생을 대입해보면 꽤 잘 들어맞는다. 변호사로 평범하게 살던 그는 부림사건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힌 뒤 각성한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지만 동서화합을 위해 부산에서 출마할 때마다 고배를 마신다. 그러나 정치인 사상 최초의 팬클럽 노사모 등 그의 진면목을 알아본 시대의 힘으로 마침내 대통령에 오르고 다시 평범한 농부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이처럼 고대신화로부터 전해내려온 영웅담과 닮았다.

캠벨에 따르면 신화 속 영웅담은 결국 한 인간이 도전과 좌절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이다. 즉,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면 영웅으로 등극할 수 있다는 것이 신화들의 공통된 교훈이다. 이런 영웅담은 동굴에서 자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고대 사회부터 계속돼 현대인의 문화적 DNA로 남아 있기에 우리는 본성적으로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작품에 열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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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무현입니다'에서 고작 2%의 지지를 받는 군소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은 제주에서 시작해 전국을 돌며 '노풍'을 만들어간다. 이는 신화 속 영웅담에서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다큐멘터리임에도 영화는 흡입력이 대단한데 그 비밀은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이라는 인간이 갖고 있는 콘텐츠 자체에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인물에 대한 관객의 시선에서 찾을 수 있다.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극장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그린 영화 세 편은 모두 극장 안을 눈물 바다로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전영화 양식으로 서사를 구축해간 '변호인'이 실화를 바탕으로한 스토리의 힘으로 감동을 이끌어낸다면,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 '노무현입니다'는 영화 밖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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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는 별다른 배경설명 없이 울먹이는 인터뷰이들을 과감하게 클로즈업해 보여주는데 이 장면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당신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슬퍼하고 있다면 그 슬픔을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며 나누자는 것이다. 단,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오로지 지지자를 겨냥한 영화였다면, '노무현입니다'는 영화를 만든 이창재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애초 노 전 대통령을 싫어했다고 고백하고 있듯이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는 차이점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예술이 탄생한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죽은 자를 추모하는 제의(祭儀) 역할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현대 대중문화에선 제의 기능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인물을 찍은 이미지라고 했다. 복제된 이미지 속의 인물에는 아우라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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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가득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이러한 제의 기능을 제대로 충족시켜준다. 스크린에서 그는 누구보다 용기 있게 지역갈등, 색깔론, 권위주의 등에 맞서 싸우는데 이러한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다시 한 번 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또 그를 회상하는 인터뷰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마치 장례식 추도사처럼 영화 관람 행위 자체를 일종의 추모 의식으로 만든다. 관객은 그를 지지했든 그렇지 않았든 저마다 자신들이 추억하는 각자의 노무현을 가슴에 품고 영화를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은 드라마틱한 이야기 콘텐츠이자 이 콘텐츠를 소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빚이다.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해 폭발적인 흥행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 속의 '노무현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창재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노무현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 있다. 그렇다면 그 답은 어쩌면 영화가 아닌 노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 있지 않을까.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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