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뮤지컬이다!?-댄스 뮤지컬 '컨택트'

  • 원종원
  • 입력 : 2017.07.0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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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뮤지컬 읽기-83] 뮤지컬이지만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

얼핏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는 말 같지만 엄연한 세계적 흥행 뮤지컬의 한 장르이자 최신 트렌드이다. 바로 '댄스 뮤지컬'을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춤'이 언어와 노래의 역할을 해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의미다. '몸'으로 말하고, '시선'으로 대화하며, '손짓'으로 감동을 건넨다. 덕분에 보다 간단명료해지고 우아해진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묘한 뒷맛을 선사한다. 기존 질서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접목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무대적 투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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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짧은 앙코르 무대가 화제를 일으켰던 '컨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짧은 공연 기간이 아쉽다는 반응이 대부분일 정도로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컨택트'는 브로드웨이의 블루칩이라는 수전 스트로먼이 1999년 발표했던 댄스 뮤지컬이다. 뮤지컬 하면 으레 춤, 노래, 연기의 3박자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겐 충격적으로 보이는 파격과 실험, 즉, 배우가 노래 한 소절도 부르지 않고 오로지 춤과 대사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색적인 재미와 별난 실험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새롭게 작곡된 음악 한 곡 없이 기존의 음원을, 그것도 라이브 아닌 반주 형태로 활용하는 이 작품을 신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음악을 활용한 상업적 성격을 지닌 무대적 실험이라는 뮤지컬에 대한 광의의 해석이 받아들여져 결국 이듬해 토니상에서 5개 부문 7개상 후보에 올라 새로 만들어진 '신작'에만 주어지는 최우수 뮤지컬을 비롯해 안무상과 남녀 조연상 등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는 일대 파란을 연출했다.

춤으로만 이뤄졌으니 단순하거나 지루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이만저만한 오산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스피디한 전개와 감춰진 뒷이야기를 찾는 재미로 유명하다. 우선 무대에 등장하는 춤의 종류가 다양하고 흥미롭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그네타기(swing)'에서는 애크러배틱이, 두 번째 에피소드인 '움직였니(Did you move)?'에서는 고전 발레가,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인 '만남(Contact)'에서는 스윙댄스가 등장한다. 스토리 자체도 재미있지만, 저마다 다른 춤사위가 각각 다른 '맛'과 '멋'을 선보이는 것이 이채롭다. 스트로먼은 작품 제작 계기에 대한 질문에 "공연을 본 관객들이 밖에 나가 춤을 추게 만들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의도가 적중했는지 정말 공연을 보고 나면 대부분 춤이 추고 싶어지는 재미난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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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이 주를 이루다 보니 화제가 되는 것도 뮤지컬 배우가 아닌 춤꾼들이다. 예를 들어,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오리지널 캐스트로 참여했던 무용수 캐런 젬바는 '움직였니?'에서 엄격한 남편 눈을 피해 몰래 발레를 추는 중년 여인으로 나와 순전히 춤만 추고 토니상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됐고, 대서양 건너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는 같은 역을 로열 발레단의 발레니라였던 세라 윌더가 맡아 화려한 발레 테크닉을 선보여 시선을 끌기도 했다. 세 번째 에피소드 '만남'에 등장하는 노란색 원피스 차림의 여인은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끓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미국 초연에서는 로켓 걸 출신의 데버러 예이츠가 발탁돼 금발의 쪽진 머리에 늘씬한 몸매와 환상적인 춤 솜씨로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형의 여인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이번 앙코르 무대는 2010년 국내 초연에 이은 7년여 만의 귀환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편에게 항거하던 여인은 뮤지컬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이란영에서 '오페라의 유령' 우리말 공연의 초대 멕 지리였던 노지현으로, 세 번째 에피소드의 외로운 도시남자 마이클 와일리는 배우 장현성에서 배수빈으로 바뀌는 변화가 이뤄졌다. 신선한 캐스트의 변화가 흥미롭고 재미있다. 늘 가장 주목받는 세 번째 에피소드의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세월이 무색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발레리나 김주원이 탤런트이자 영화배우인 김규리와 더블 캐스트로 등장한다. 특히 김주원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언제 땅 위로 발을 내디딜까 싶은 매력에 감탄하게 된다. 허리 디스크 문제로 의사로부터 춤을 추지 말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소문도 있는데, 더욱 철저한 자기 관리와 발레 연습으로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아졌다는 소속사의 설명에 그저 감탄만 나온다. 김주원이 만들어내는 노란색 드레스 여인의 이미지는 언제나 환상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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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링컨센터에서 처음 막을 올렸던 '컨택트'는 1174회의 연속 공연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이 공연장에 막을 올린 그 어떤 작품보다도 긴 공연기록이다. 물론 과감한 형식의 파괴가 대중적인 호응과 맞물려 이뤄낸 개가라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노래 대신 춤으로만 진행되는 형식이 뮤지컬일 수 있는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도 일었지만, 결국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 작품상을 거머쥐는 진기록도 수립했다. '컨택트'의 성공은 뮤지컬의 형식에 대한 이제까지의 고정관념을 일거에 날려버린 대표적인 '사건'으로 남게 됐다.

지나친 엄숙주의와 경직된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일부 예술가에겐 특히 좋은 자극이 될 만한 무대였다. 세계 뮤지컬계의 현주소를 직접 경험해 보는 값진 시간이 되었기를 꿈꿔본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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