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캣츠가 난해한 이유 잘못된 의역과 정서적 차이

  • 원종원
  • 입력 : 2017.07.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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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뮤지컬 읽기-84] 1980년대 말, 런던에서 '캣츠'를 처음 만났던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페라 하우스와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골목을 따라 북동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뉴 런던 극장이었다. 적은 객석 수의 아담한 공연장이지만 '캣츠'가 공연될 당시에는 그야말로 매일 매일이 인산인해였다. 길모퉁이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항상 있었는데, 바로 예약이 취소된 환불 티켓을 구하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자들의 행렬이었다. 반나절 넘게 기다리고도 공연 10여 분 남짓한 시간까지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마지막 행운이 찾아오길 기다리기가 일상사였다. 뮤지컬의 시작과 끝이면 마치 거대한 바다 생물의 촉수가 움츠렸다 펼쳐지듯 공연장을 들고나는 관객들로 일대 장관을 이뤘다. 글로벌한 흥행 뮤지컬의 위용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느꼈던 순간이었다.

'캣츠'는 한국 뮤지컬의 근대사와 함께 살아온 작품이다. 90년대 말,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효경 연출이 해적판 공연을 올린 적도 있었고, 한 유명 극단은 원작자의 소송으로 법정 시비에 휩싸이는 송사를 벌여 결국 공연중지가처분을 받아 수익금을 환수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풍경이었다. 심지어 국내 뮤지컬 제작자들과 프로듀서들은 해당 제작자에게 위로를 건네며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돕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알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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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를 둘러싼 뒷이야기도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그리자벨라에 얽힌 이야기다. 정식 버전이 아직 소개되기 이전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이 고양이를 두고 창녀 고양이라는 해석을 덧붙인 적이 있다. 글래머 고양이라는 노래의 부제도 그런 연상을 주거니와, 낡은 코트 차림에서 풍기는 이미지나 분위기도 제법 그럴싸해 보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이미지를 차용하려다보니 그런 해석이 더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해적판 국내 초연의 주축을 이뤘던 출연진이나 제작진이 엇비슷한 종교적 배경과 신념을 지니고 있던 탓이다. 덕분에 지금도 가끔 언론지상에서 여전히 창녀 고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해석은 작품의 의미를 엉뚱하게 만드는 잘못을 범하게 만든다. 원작에는 늙은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창녀라는 표현이 작품 어느곳에서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스가 극장에 사는 늙은 배우 고양이라든지, 스킴블생크스가 기찻간 고양이고 미스터 미스토플리스가 마법사라는 말은 나오지만, 그리자벨라의 직업이나 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 다만 새벽녘까지 런던 도심 한복판인 토튼햄 코트 거리를 어슬렁거렸다거나 우편배달부가 한숨을 쉬며 저 늙고 보잘 것 없는 고양이가 왕년의 그 예쁜 고양이였나라는 탄식만이 노랫말로 등장할 뿐이다.

창녀 고양이로의 해석은 그리자벨라의 대표적인 노래인 '메모리'에서 관객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추억'을 노래하며 그는 삶의 열정과 기쁨이 가득했던 과거로의 회귀를 목 놓아 부른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노래는 인생의 반성이나 회환의 의미보다는 젊음에 대한 추억과 지나간 시절에 대한 찬미가 담겨 있다. 흘러간 세월을 반추하며 젊음에 대한 그리움을 추억이라는 제목에 담아 노래하는 셈이다. 그래서 많은 고양이은 그런 그의 노래를 듣고 고양이들만의 특권이자 한 마리 고양이로 선택되면 누릴 수 있는 환생의 기회를 양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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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에게 창녀 고양이라는 옷을 입히면 이야기의 내용은 달라진다. 액면 그대로만 해석하자면, 남자 손님에게 큰 인기를 끌던 나이든 창녀 고양이가 화류계로의 귀환을 꿈꾸자 다른 고양이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양보한다는 줄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자벨라는 어린 시절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 볼품없어진 늙은 고양이 정도로만 해석하는 것이 옳다. 군데군데 털이 숭숭 빠진, 그래서 마치 피부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보이는 늙고 추레한 모습이다. 그런 그가 부르는 노랫말은 "나를 쓰다듬어 주면 진정한 행복을 이해할 수 있을 것(If you touch me, you'll understand what happiness is)"이라는 내용이다. 인생의 단맛, 쓴맛을 모두 알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인생의 고단함과 회한의 감성인 셈이다. 창녀 고양이의 환생이라는 난해한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던 초창기 우리나라 관객들과 달리, 손바닥이 벌게 질 때까지 박수를 치고 분홍빛의 상기된 미소로 공연장을 나서는 서구 관객들의 감동은 바로 여기에서 크게 갈리는 셈이다.

'캣츠'를 보고 스토리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을 제대로 분석한 관객이다. 이 뮤지컬에는 사실 뚜렷한 스토리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무대의 원작이 바로 시집이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T S 엘리엇에겐 고양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손주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할아버지는 고양이를 소재로 한 시를 한 편씩 건네줬고, 훗날 이 시들을 모아 시집을 발간하게 된다. 뮤지컬은 이 시집에 곡을 붙여 무대로 꾸민 작품이다. 당연히 시집에는 줄거리가 없다. 이 무대는 한 마리 한 마리 고양이에 담겨 있는 시적 상상력, 그리고 잘 알려진 시구가 노래가 되고 춤이 되는 재미난 변화를 즐기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에 시집을 구해 먼저 읽고 가는 것은 이 뮤지컬을 감상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전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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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의 시집은 우리말로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라 번안돼 출간된 바 있다. 사실 이 번안제목도 원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시집의 원래 영어 타이틀은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로 직역하자면 '늙은 주머니쥐의 고양이에 대한 보고서'쯤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집의 제목 안에도 재미난 작가의 말장난이 담겨 있다. 사실 '늙은 주머니쥐'는 T S엘리엇의 별명이다. 결국 시집은 늙은 주머니쥐라 불렸던 작가가 바라본 고양이들의 세계라는 중의법적 말장난을 담고 있는 셈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들려줬던 재미난 이야기가 아기자기한 언어의 유희를 통해 맛깔스럽게 꾸며지고, 여기에 다시 춤과 노래를 붙여 화려하게 버무려 놓은 것이 곧 뮤지컬인 셈이다. 영미권에서의 기록적인 흥행의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캣츠'는 그야말로 세계 각국에서 공연이 이뤄졌고, 20여 개에 가까운 언어로 번안된 무대가 등장했다. 그러나 제목은 언제나 '캣츠'였다. 딱 한번 멕시코에서 '가토스(Gatos)'라는 현지어 제목이 시도된 적이 있었지만 곧 '캣츠'로 되돌아갔다는 후문도 있다. 아무래도 작품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대중의 평가가 크게 작용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배우가 나오건, 내한공연이 올려지건 간에 늘 제목은 '캣츠'였다.

워낙 세계 각국에서 오랜 세월 공연을 지속하다보니 크고 작은 변화가 가미되기도 했다. 록 스타 이미지였던 럼 텀 터거가 힙합 스타로 탈바꿈되기도 하고, 30회 이상 제자리에서 턴을 선보이는 마법사 고양이의 독무 '푸에테' 노래가 변경되기도 했다. 올해 꾸며지는 오리지널 팀의 내한공연은 여러 버전의 다양한 변화들 중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냈던 장면들을 엮어 무대를 구성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럼 텀 터거는 기존의 록 스타 버전으로, 또 국내 공연에서는 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던 '푸에테'는 기존 버전의 내용으로 꾸미되 극 전개는 요즘 글로벌 뮤지컬들의 추세를 반영해 개연성과 드라마틱한 표현을 강조했던 시드니 버전을 차용했다는 설명이다. 극에서는 노래되거나 거론되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과 사연까지 일일이 조사하고 따지며 뒷이야기마저 즐기는 한국의 '캣츠' 마니아들에겐 더없이 흥미로운 재미난 버전이어서 더 반갑고 즐겁다. 시설 리노베이션을 앞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하니 더욱 남다른 의미가 진한 뒷맛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뮤지컬 칼럼을 연재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비록 이 공간에서는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지만 언젠가 독자들과 다시 즐거운 뮤지컬 공연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웃고 울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어서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늘 뮤지컬 안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길 기원해본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시리즈 끝-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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