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야스나리 이즈반도로 여행을 떠나다.

  • 허연
  • 입력 : 2017.08.0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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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이즈의 무희 표지
▲ 단행본 이즈의 무희 표지
[허연의 일본문학 기행-35] '이즈의 무희'는 아주 짧은 소설이다. 한글 번역본 기준으로 단행본 40쪽 정도에 불과한 단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소설은 야스나리의 대표작으로 꾸준히 거론된다.

그 이유는 초기작인 이 작품이 이후 펼쳐질 야스나리 문학세계의 예고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즈의 무희'는 야스나리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물론 1920년 '초혼제 일경(一景)'으로 등단을 하기는 했지만 그의 문명을 문단 안팎에 각인시킨 계기가 된 건 '이즈의 무희'가 주목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이즈의 무희'는 1926년 '문예시대'에 처음 발표되었고 1927년 금성당에서 간행된 단편집에 수록되었다. 발표는 1926년이었지만 야스나리가 이 작품을 구상한 것은 그로부터 6, 7년전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야스나리가 1919년 교우회 잡지에 이즈반도를 여행한 글을 실었고, 1922년에는 '유가시마의 추억'이라는 또 다른 글을 통해 '무희'의 존재를 다시 언급한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봤을 때 야스나리는 1919년 무렵부터 이 소설 구상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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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나리가 이즈반도를 처음 여행한 것은 그가 스무 살인 1918년이었다. 당시 야스나리는 구제(舊制) 제일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무렵 야스나리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당시 일본의 학제를 알아야 한다.

구제고등학교는 우리가 연상하는 일반 고등학교가 아니다. 명칭만 고등학교일 뿐 실제로는 대학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제도하의 고등학교를 의미하는 구제고등학교는 당시 일본 전역에 39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들 학교는 각 지역에 설치된 국립대학의 교양과정 성격을 띠고 있었다. 야스나리가 다닌 제일고등학교는 도쿄제국대학의 예과였다. 제이고등학교는 도호쿠제국대학, 제삼고등학교는 교토제국대학의 예과였다. 그러니까 구제 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건 동경제국대학 재학생이 됐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야스나리가 구제고등학교 입학 전 졸업한 이바라키고등학교의 당시 명칭은 이바라키중학교였다. 당시 중학교는 지금의 중고등학교를 합쳐놓은 6년제였다. 그러니까 당시 학제는 '초등학교-중학교(6년제)-구제고등학교(대학 교양과정)-대학'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제도는 일본이 1950년 지금의 '6(초등)-3(중등)-3(고등)-4(대학)'식 교육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사라졌다.

일본의 교육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인 우리도 비슷한 변천과정을 거쳤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에도 예과가 설치되어 있었고 지금은 일본과 같은 '6334' 학제를 쓰고 있다.

일본의 현재 학제와 과거 학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한국에 돌아다니는 야스나리 학창 시절 기록을 보면 이바라키고등학교(6년제 중학)와 제일고등학교(대학 예비학교)를 혼동하거나 아예 구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시대 구분을 할 때 제일고등학교 입학 시절부터를 야스나리의 성인시절이라고 보면 된다. 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야스나리는 대학생이 됐고, 도쿄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17년 오사카 이바라키중학을 졸업한 야스나리는 도쿄로 올라와 사촌집에 기숙하면서 제일고등학교를 다닌다. 매우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본인들이 우러러보는 엘리트 코스인 도쿄제국대학 입학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고, 학업부담은 본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신분은 확실하지만 의무는 그에 미치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던 것이다.

이 시간을 활용해 야스나리는 이즈(伊豆)반도로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의 기록이 곧 소설 '이즈의 무희'라고 보면 된다. 워낙 짧은 소설인 데다 눈에 띄는 갈등구조를 만들지 않는 야스나리 작법의 특성상 외형적인 줄거리는 밋밋하다.

스무 살의 주인공 '나'는 이즈반도로 여행을 떠난다. 고아 기질 때문에 뒤틀린 성격을 고치고, 태생적인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떠난 여행이었다. 이 여행에서 나는 우연히 유랑극단 일행을 만나 동행을 하게 된다.

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유랑극단에는 14살짜리 무희 가오루(薫)가 있었다. 나는 가오루를 지켜보면서 내 자신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는 이 소녀가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닌지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소녀의 티 없이 맑은 성정을 느끼면서 나의 의심과 우울감도 사라진다.

순간 순간 가오루가 보여주는 나에 대한 작은 관심은 내 일그러진 성격을 밝게 만들어주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가오루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네"라고 나를 평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둘 사이의 애틋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내가 도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행이 시모다 항구에 도착한 날 나는 도쿄행 배에 오른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이면서 서 있고 나는 선실에 누워 눈물을 흘린다.

이런 줄거리 때문에 혹자들은 '이즈의 무희'를 '일본판 소나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직 연정이나 욕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설렘'으로 그려내는 부분은 두 작품이 흡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소나기'는 죽어서 이별을 하고, '이즈의 무희'는 살아서 이별을 한다는 것이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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