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톱에서 포도밭이 시작, 획기적인 건축물 안티노리

  • 나보영
  • 입력 : 2017.08.0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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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노리 넬 키안티 클라시코 전경 /사진제공=안티노리
▲ 안티노리 넬 키안티 클라시코 전경 /사진제공=안티노리
[세계의 와인 기행-35] 자, 상상을 해보자. 어떤 건물의 루프톱에 오르면 당연하게도 눈높이엔 허공이 있고 땅은 그 건물 아래에 있다. 자연스럽게 난간이 둘러 있는 테라스 같은 공간에서 주변을 내려다보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루프톱이 아무 경계도 없는 대지로 그대로 이어지는 곳이 있다. 걸음을 내디디면 포도밭과 올리브 숲을 밟게 되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이웃 마을로 향할 수도 있다.

이곳은 26세대에 걸쳐 700년 가까이 와인을 만들어온 이탈리아 와인 명가 안티노리(Antinori)의 와이너리다. 공식 명칭이 '안티노리 넬 키안티 클라시코(Antinori nel Chianti Classico)'인 이 건물은 언덕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축됐다. 경사면을 따라 지면 아래에 계단식으로 설계돼 최상층이 지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건물을 관통하는 커다란 나선 계단은 근사한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통로를 통해 지상의 빛이 지하 깊숙이까지 닿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건축가 마르코 카사몬티(Marco Casamonti)가 설계한 이 와이너리는 세계적인 건축 전문 매체들에서도 극찬할 만큼 획기적인 예술작품으로 통한다.

포도밭이 내다보이는 레스토랑 /사진제공=안티노리
▲ 포도밭이 내다보이는 레스토랑 /사진제공=안티노리
"안티노리 가문은 2012년에 이 초현대적인 셀러를 완공하고, 2013년 2월에 피렌체 시내의 본사를 이곳으로 이전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포도밭에서 포도가 운반돼 오면 아래층 양조 탱크로 바로 옮길 수 있으며, 지하 셀러는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아도 사계절 서늘하게 유지됩니다. 내부 벽면은 테라코타로 마감돼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죠." 와이너리 안내를 맡은 엘리사(Elisa)가 말했다.

안티노리는 이 건물을 새로운 생산시설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이 방문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구축했다. 관광객은 포도가 와인이 되기 위해 지나는 방향과 반대로 최하층 출입구로 들어와 아래층부터 셀러와 양조 시설을 둘러보고 맨 위층에 이르게 된다. 중간에 자리한 테이스팅룸에서는 고풍스러운 지하 셀러를 내려다보며 와인을 시음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상층부에는 박물관, 도서관, 와인숍과 더불어 전면이 유리로 된 근사한 레스토랑도 있다. 테이블에 앉으니 직원이 정중히 맞이하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아마도 여러 나라 인사를 기억해두었다가 건네는 것이리라. 그만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손님이 찾아온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하저장고에 자리한 테이스팅룸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다.
▲ 지하저장고에 자리한 테이스팅룸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다.
안티노리는 티냐넬로(Tignanello), 솔라이아(Solaia) 등의 슈퍼 토스카나 와인을 비롯해 이탈리아뿐 아니라 미국 나파밸리, 헝가리, 몰타, 칠레 등에도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 와인 생산기업이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후 알비에라 안티노리(Albiera Antinori) 회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세계 시장에서 이탈리아 와인의 명성을 확고하게 한 인물로 존경받고 있는 피에로 안티노리(Piero Antinori)의 장녀다. 그는 2016년 7월 부친으로부터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안티노리 가문 26세대 알비에라 안티노리 회장
▲ 안티노리 가문 26세대 알비에라 안티노리 회장
"아버지는 지금도 명예회장으로서 우리와 함께 안티노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제가 장녀인데 제 두 여동생과 그 가족들도 함께 가업을 잇고 있죠.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포도밭을 거닐고 수확과 양조에 참여하면서 그들이 일선에 나서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어요."

바람이 언덕을 구르듯 훑는 포도밭에 서서 알비에라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음식, 와인, 여행, 예술, 건축 등은 서로 연결된 문화예요. 저는 사람들이 이곳 토스카나의 언덕에서 자연의 일부가 돼 그 문화들을 충분히 느끼고 갔으면 좋겠어요."

토스카나의 와이너리들은 어느 곳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없지만,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공간에서 음식과 와인과 예술을 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는 안티노리만 한 곳이 없지 않을까 싶다.

나보영 여행작가
▲ 나보영 여행작가
[나보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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