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종의전쟁의 질문 누가 더 인간적 영장류일까

  • 양유창
  • 입력 : 2017.08.1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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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152] 인간이 만든 유인원이 결국 인간을 멸종시킨다. '혹성탈출'은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갖춘 텍스트다. 1963년 피에르 불의 원작 소설과 1968년 프랭클린 샤프너의 영화가 인종차별과 냉전시대 핵전쟁 위기 등을 은유했다면, 현대에 지능을 가진 유인원이라는 소재는 인공지능의 발달과 겹쳐 보인다. 인간보다 더 감정이 풍부한 유인원, 인간과 유인원의 지능이 교차해 행성의 주인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인공지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시사점을 줄 듯하다.

하지만 '혹성탈출' 리부트 3부작의 첫 번째 영화인 '진화의 시작'(2011)에서 '과학'으로 출발한 영화가 시리즈 세 번째 영화인 '종의 전쟁'에서 택한 종착지는 뜻밖에도 '종교'다. 맷 리브스 감독은 이 영화를 유인원판 '십계'로 만들고 싶었던 듯하다. 파라오의 박해를 피해 고난의 행군을 떠나 히브리인들을 끝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모세처럼, 지능을 가진 최초의 유인원 시저(앤디 서키스)는 유인원들이 갇혀 있는 수용소로 잠입해 이들을 구출해 에덴동산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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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전쟁'은 매우 상징적이고 또 종교적인 장엄함마저 풍기는 영화다. 시미안 플루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상징되는 '과학'은 이 영화에선 거의 결정론적인 사건으로만 취급된다.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이제 치유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자연의 섭리가 되었다. 과학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고 그 이후는 초월적인 힘을 갈구하는 종교의 영역이 된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과학에서 종교로 이어지는 '혹성탈출'의 서사는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최초의 유인원 시저와 최후의 인간 대령(우디 해럴슨)을 대비한다. 모세처럼 영웅의 길을 가는 시저와 달리 대령은 '지옥의 묵시록'에서 어둠의 심연 속에 살고 있는 고립된 인간 커츠 대령을 연상시킨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자비해진 대령은 철저하게 감정을 배격한다. 그는 병에 걸린 아들을 직접 죽일 만큼 아무도 믿지 않았기에 지금껏 살아남아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반면, 시저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고 감정에 휘둘려 '반격의 서막'에서 자신이 죽인 코바처럼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결국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해낸다.

시저의 아들은 살해당했고, 대령은 스스로 아들을 죽였다. 둘 다 아들을 잃었지만 이처럼 사연은 전혀 다르다. 대령이 시저를 향해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라고 묻는 장면은 두 캐릭터의 운명을 함축적으로 암시한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힘의 원천인 지능뿐만 아니라 감정도 이제 유인원에게로 넘어갔다. 더 이상 인간이 유인원보다 우월한 지점을 찾기 힘들어졌다. 인간 소녀 노바(아미아 밀러)는 시미안 플루에 노출돼 지능과 함께 감정을 잃은 아이였지만, 유인원과 함께 있으면서 서서히 감정을 습득해간다. 어쩌면 마지막 인간이 될 그녀는 인간보다 유인원에 자신을 동화시킨다. 그렇게 지구라는 행성의 주인은 바뀌고 있다. 영화 후반부 대규모 눈사태 장면은 하나의 종이 다른 종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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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전쟁'은 이야기가 풍성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매 장면이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영화다. '진화의 시작'이 지능을 가진 유인원에 대한 호기심, '반격의 서막'이 인간과 유인원의 대결을 그린 영화였다면, '종의 전쟁'은 결국 진화의 방향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제시한다. 인간이 만든 유인원이 인간을 멸종시키는 그 불편한 과정을 인간 관객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영화는 익숙한 종교적 서사 원형을 차용하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유인원 시저가 흔들리면서 각성을 거듭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묘사해 관객이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그 결과 '종의 전쟁'은 3부작의 완결편으로서 설득력 있는 결말을 갖추게 됐다. '진화의 시작'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된 시저는 '반격의 서막'에서 반영웅 코바를 물리치고 리더로서 길을 제시한 뒤 마침내 '종의 전쟁'에서 선지자로 등극한다. 먼 훗날 유인원이 지배하는 지구에서 그들의 탄생 신화로 구전될 만한 장엄한 마무리다.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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