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女 시신에 얽힌 이야기, 시체부검실 공포 '제인 도'

  • 양유창
  • 입력 : 2017.09.0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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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154] "한 번 보면 돌이킬 수 없어."

가업으로 3대째 부검을 하는 오스틴(에밀 허시)은 자신을 찾아온 여자친구 엠마(오필리아 로비본드)가 시신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이렇게 경고한다. 엠마가 시신 위에 덮은 천을 걷으려는 순간 시신의 발가락에 걸린 종이 울린다. 시체부검소에서 시신의 발가락에 종을 걸어두는 이유는 혹시라도 모를 실수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죽지 않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지도 모르니까. 곧 오스틴의 장난임이 밝혀지지만 그다음부터 벌어지는 일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한 번 보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경고는 단지 엠마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영화 '제인 도'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선보여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시체부검실이라는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신, 해부학과 초자연적인 현상의 결합, 밀폐된 곳에서 점점 조여오는 공포가 8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자극한다. 스페인 시체스영화제를 비롯한 10여 개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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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야기는 엠마가 돌아가고 난 그날 밤, 신원을 알 수 없는 20대 백인 여성 시신 한 구가 경찰로부터 인계되면서 시작된다. 경찰은 시신이 긴박한 범죄에 연루돼 있으니 사인을 다음날 아침까지 밝혀달라고 요청하고, 오스틴의 아버지 토미(브라이언 콕스)는 이를 승낙한다. 이제 두 사람은 밤을 새워 제인 도(신원 미상의 여성을 이르는 단어) 시신 부검에 들어간다.

부검에는 3단계가 있다. 1단계는 외상 확인, 2단계는 개복 후 장기 외부 확인, 3단계는 장기 내부 확인이다. 경험 많은 토미는 단계별로 기록해가며 시신의 사인을 파헤친다. 그런데 겉보기에 완벽해 보였던 시신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상하다. 눈동자가 혼탁하고, 혓바닥이 잘려 있고, 발목이 부러져 있고, 손톱에 토흔이 박혀 있고, 질 내부는 날카로운 둔기로 잘려 있다. 심지어 심장을 비롯한 장기엔 흉터가 가득하고, 폐는 불에 타 그을렸다. 이렇게 엄청난 고통을 받았는데도 겉으로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보존됐다는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다.

부검이 진행될수록 토미와 오스틴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시신의 상태에 경악하는데 그때 작업실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문이 닫히고 전등이 깨지고 고양이가 죽어 있다. 급기야 평소 밝은 음악을 틀어놓는 라디오가 지직거리더니 이상한 노래가 나온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당신은 절대 떠날 수 없어. 심장을 열고 태양을 맞이해." 도대체 이 시신의 정체는 무엇일까? 토미와 오스틴은 그날 밤 살아서 작업실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영화는 미스터리의 제인 도 시신을 해부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는 전반부와 그 시신의 비밀이 드러나는 후반부로 구성돼 있다. 전반부는 소재 특성상 표현 수위가 꽤 높지만 잔인함을 노린 고어 장면은 의외로 많지 않다. 대신 카메라가 제인 도의 얼굴을 수시로 클로즈업할 때 눈, 코, 입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서서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모델 출신 아일랜드 배우 올웬 캐서린 켈리가 제인 도 시신을 연기한다).

후반부에선 본격적으로 공포심을 유발하는 장면들이 휘몰아친다. 사인을 밝혀내고 말겠다는 토니의 집념과 탈출을 시도하는 오스틴의 의지가 맞부딪히는 가운데 시체부검실은 점점 불길한 기운에 휩싸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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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도'는 시체부검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택했음에도 꽤 절제하며 호러영화 문법에 충실하게 공포를 쌓아가는 작품이다. 깜짝 놀래키는데 급급한 다른 공포영화와 달리 차분한 페이스로 관객을 안절부절 못하도록 밀어붙이는 완급 조절이 좋다. 다만, 전반부 꼼꼼하게 나열한 해부학적인 설명들이 후반부에 오컬트적인 요소와 결합하면서 무용지물이 되고, 스토리가 뻗어가지 못한 채 급박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쉽다.

영화의 감독은 파운드푸티지 괴수영화 '트롤 헌터'(2010)로 이름을 알린 노르웨이 출신 안드레 외브레달로 '제인 도'는 그가 영어로 만든 첫 영화다. 토니 역을 맡은 알렉스 콕스는 젊은 시절 '맨헌터'(1986)에서 인육을 먹는 연쇄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를 연기한 적 있기에 그가 제인 도 시신을 진지하게 해부하는 모습은 왠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럽다.

'장산범' '애나벨:인형의 주인' 등 올해 여름 두 편의 공포영화가 개봉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공포에 단련된 호러영화 팬이라면 '제인 도'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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