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개봉...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은

  • 양유창
  • 입력 : 2017.09.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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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155] 김영하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남자 김병수(설경구)의 이야기다. 17년 전 마지막 살인을 저지른 뒤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이 연쇄살인자는 딸 은희(김설현)와 함께 수의사로 일하며 살고 있다. 어느날 딸이 남자친구 민태주(김남길)를 데려오면서 병수는 이 청년이 자신과 같은 부류의 연쇄살인마임을 직감으로 알아챈다.

소설과 비교해 영화에는 몇 가지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다. 우선, 병수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다. 소설에서 병수는 오이디푸스처럼 원죄를 저지르고 고뇌하는 남자다. 니체와 반야심경을 읽으면서 선과 악에 관한 독백을 늘어놓는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데는 살인 과정에 대한 탐닉 외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 소설에서 병수는 이렇게 말한다. "뱀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이들이 햄스터를 사들이듯이, 내 안의 괴물도 늘 먹이를 필요로 했다."

반면 영화는 병수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를 명확히 한다. 어릴적 가정폭력에 학대당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그는 악한 사람을 보면 살인 충동에 휩싸인다. 소설 속 병수는 과거 자신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해 고뇌하는 데 반해 영화 속 병수는 늙어버린 자신의 녹슨 살인기술(?)을 젊은 세대와 비교하며 자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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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설이 철저하게 병수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며 태주(소설에선 박주태)를 타자화하는 데 반해 영화는 병수와 태주를 나란히 놓고 대결구도를 만든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 누가 진짜 살인자인지를 놓고 진실게임을 벌이는 장면은 소설에는 없는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된다.

영화에서 병수는 태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이유가 있었지만, 넌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였어." 그러자 태주의 반격은 이렇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은 거 아냐?" 이 대사를 비롯해 후반부 두 사람이 몸싸움하는 과정은 세대 간 갈등을 연상시킨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논리와 이치를 설파하지만 결국 원초적인 신체 능력 때문에 좌절한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세운 질서를 무시하다가 결국 자기부정에 빠진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노쇠한 연쇄살인마가 질서의 수호자라는 아이러니는 세대 갈등을 기묘한 모순으로 만든다. 소설에선 세대 갈등이 부각되지 않지만 영화는 시각적으로 노인으로 분장한 설경구의 몸과 김남길의 몸이 대비돼 갈등이 더욱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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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의 문법은 다르다. '소설의 영화화'의 저자 조지 블루스턴은 "소설이 관념적인 형태라면, 영화는 지각적이며 재현적 형태의 예술"이라고 썼다. 소설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정해진 영화는 감정뿐만 아니라 플롯을 필요로 한다. 소설의 관념성을 영화의 시각적인 이미지로 반영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고 대개의 영화가 이 지점에서 실패한다.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각색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영화는 소설에서 관념적으로 처리된 공간을 익숙하고 쉬운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고아원에서 데려온 복잡한 딸 은희는 아빠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효녀로 탈바꿈했고, 태주 캐릭터는 더 단순해졌으며, 병수가 시 수업을 들으며 기억에 관해 성찰하는 과정은 우스꽝스런 시 선생(이병준)의 등장으로 유머 기능으로만 제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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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련된 방식으로 필요한 부분만 최대한 압축 서술하고 있는 소설에 비해 영화의 만듦새는 투박하다. 최근 개봉한 줄리언 반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원작을 단순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톤 앤드 매너로 단점을 만회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원작 소설의 모호한 관념성을 세대 갈등을 담은 이야기로 뚝심있게 풀어낸 점만은 평가할 만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은 편이다. 설경구는 극을 진중하게 끌고가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김남길은 의뭉스런 표정으로 만만찮은 내공을 드러낸다. 김설현도 전형적인 착한 딸의 모습부터 어두운 표정까지 소화하며 제몫을 해낸다. 6일 개봉.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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