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신작 '이방인' 죽음 앞에서 부르는 삶의 찬가

  • 김연주
  • 입력 : 2017.09.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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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88]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밋밋하고 간결한 문장들이 툭툭 내뱉어진다. 뫼르소(전박찬)의 독백이 원형무대를 돌아 객석까지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울려 펴진다. 눈으로 읽을 때도 강렬했지만 사람의 목소리를 입으니 더불어 팽팽한 긴장감이 묻어난다.

산울림 소극장이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을 연극무대에 올린다.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산울림 소극장 30주년 때 임영웅 대표는 "쫓기듯이 많은 작품에 매몰되던 과욕을 멈추고 1년에 단 한 편이라도 엄정한 자체 검증을 거쳐 완성도 높은 한편의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방인'이 바로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작품에는 세 개의 죽음이 등장한다. 어머니의 죽음, 뫼르소의 살인, 그리고 뫼르소 자신의 사형집행. 2부로 나뉘어 있던 원작과 달리 연극 무대에서는 이 세 개의 죽음을 중심으로 크게 3막으로 나눠지는 듯하다.

앞서 두개의 죽음에 대해 뫼르소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반응한다. 전보로 날아든 어머니의 죽음에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그에게 죽음은 장례식과 같은 귀찮은 절차에 불과하다. 뫼르소 자신이 저지르는 살인 역시 마찬가지다. 우발적으로 아랍인을 죽인 그는 법정에서 "태양이 너무 뜨거워 죽였다"고 증언하며 어떠한 죄책감도 내비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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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카뮈는 모든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진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언젠간 죽는데 언제 죽는지는 별 의미가 없다. 뫼르소가 타인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결말, 죽음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열심히 살 필요는 또 무엇인가. 이는 곧 삶의 권태로 이어진다. 그런 뫼르소는 감각적인 연인과 사랑에 몰두하며,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친구 레몽의 무리한 부탁도 굳이 거절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결말은 '죽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단 것을 느꼈다."

하지만 사형선고 후 교도소에서 세 번째 죽음,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며 그는 역설적으로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는 게 아니다. 반대로 죽음에 의해 유한하기에 삶은 희소하고 그렇기 때문에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가올 죽음이 두려워 삶에 무관심으로 일갈하던 사형수는 죽음이 정말 피할 수 없는 선고가 되어 눈앞에 설 때, 정면으로 대면함으로써 삶의 기쁨을 본다. 김화영 서울대 불문학과 교수는 "이 소설의 참다운 주제는 죽음 앞에서의 삶의 찬가"라고 말한다.

이 깨달음이 이방인에서 뫼르소 역을 맡은 전박찬을 통해 치열한 몸부림으로 구현된다. 신부와 거세게 다투고, 교도소 바닥을 격하게 뒹구는 그는 죽음이란 이름으로 다가오는 '삶'을 온몸으로 대면하는 듯하다. 또 연극 무대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된 교도소에서 홀로 사색에 잠긴 '뫼르소'의 모습은 인간의 실존적인 고독을 시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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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원작을 충실하게 담아낸다. 길이는 길지 않지만 밀도가 높은 원작소설을 쉬는 시간 없이 120분 안에 담아냈다.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원작을 무대 위 독백으로 풀었다. 뫼르소를 연기하는 배우 전박찬의 몫이 크다. 원작이 가진 치열한 문제의식과 냉철한 문체, 그 극단의 온도차를 대사의 결마다 호흡과 감정을 채워 넣어 새롭게 무대 위에서 구현해 낸다. 여백이 많은 대사와 후반부로 가면 카뮈의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든 현학적인 대사들도 담담하면서도 선명하게 전달한다.

다만 원작에 지나치게 충실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몇 번이고 전 문장으로 돌아가 곱씹고 머무를 수 있는 책과 달리 연극은 현장성을 갖는다. 지나간 대사를 붙잡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 빠르게 내달리는 현학적인 문장들에 집중이 어렵다. 연극만 봐서는 카뮈가 보여주려던 구원의 잔상은 남지만 또렷하게 잡히지는 않는 느낌이다.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나 각색이 더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0월 1일까지, 산울림 소극장.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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