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함 느끼는 '남한산성' 정의인가 지옥인가?

  • 양유창
  • 입력 : 2017.10.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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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158]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지옥이었다." -김훈, '남한산성' 중

실천 불가능한 정의와 실천 가능한 지옥이 맞부딪친다.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청의 용골대와 협상을 하러 가는 길에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않는다. 주전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은 혹시라도 청의 길잡이를 할까봐 자신을 따르지 않겠다는 뱃사공 노인을 칼로 벤다.

영화의 오프닝은 이토록 상징적으로 두 정승의 결의를 보여준다. "죽음으로 삶을 구걸하지 말라"고 외치는 김상헌,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을 수 있다"고 다그치는 최명길은 이후 영화 내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바야흐로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1636년 병자호란이 영화의 배경이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해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이 영화화한 '남한산성'은 2시간2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끊임없이 관객을 곤경에 빠뜨린다. 막강한 적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인가, 항복하고 훗날을 도모할 것인가. 김상헌과 최명길이 벌이는 말의 대전은 어느 쪽을 택해도 고난의 길임이 자명하기에 쉽게 마음이 기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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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 갇힌 인조(박해일)는 고뇌한다. 무능한 왕으로 알려진 그이지만 영화 속에선 꽤 합리적이다. 하긴 역사에 나라를 망하게 한 것으로 기록되고 싶은 왕이 어디 있을까. 그는 묻고 또 묻는다. 예판에게 묻고 이판에게 묻고 또 영의정 김류(송영창)에게도 묻는다. 영혼 없는 공무원 같은 영의정은 예판과 이판 사이를 오가다가 인조에게 되레 되묻는다. "그것은 주상께서 결정하셔야지 왜 자꾸 묻습니까?"

그만큼 결정이 힘든 시기였다. 두 정승이 외치는 삶과 죽음 논쟁의 결과에 따라 치욕이든 죽음이든 감내해야 하는 것은 결국 민초들이다. 영화는 이를 놓치지 않는다. 군에 강제 징집된 백성들은 엄동설한에 동상에 시달리고,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다.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이 즐비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허구의 인물인 대장장이 서날쇠(고수)는 민초를 대변한다. 그는 "나는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소"라고 말하며 정치 게임의 한가운데서 혈혈단신 자신의 생명을 지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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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은 100쇄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는 두 가지 난관이 보인다. 우선, 패배의 역사다. 47일이라는 짧은 기간 내 종결된 병자호란은 쓰라린 패전과 삼두고배의 굴욕을 남겼다. 이를 글로 읽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글은 이성으로 독파할 수 있지만 영화는 공감각으로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패배의 역사가 상업영화가 된 사례는 드물다.

또 하나의 난관은 말의 전쟁이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말로 싸운다. 말이 주는 미묘한 긴장감을 살리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영상의 풍부함을 포기하고 말만으로 이루어진 영화를 만드는 것은 모험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이 두 가지 난관을 정면돌파한다. 영화의 톤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고 차갑다. 영화 속 한겨울 냉기가 관객석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 묵직하다. 김훈의 문장처럼 영화에는 어떤 미사여구도 없고, 사건을 과장하기 위한 인위적인 드라마도 없다. 음악 사용은 최대한 절제하고 있고, 카메라 움직임도 많지 않다. 김상헌의 투박한 억양의 말과, 최명길의 조곤조곤 설득하는 말이 보호장구 없이 치르는 권투경기처럼 혹한 속에 부딪칠 뿐이다. 영화는 관객이 차분하게 두 사람의 주장을 듣고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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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뚝심 있게 밀어붙여도 될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이야기 전개도 소설의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영화가 소설과 달라지는 지점은 엔딩뿐이다. 인조가 서울로 돌아와 47일간 비워둔 궁궐을 바라보는 장면, 날쇠가 평온한 일상에서 망치를 두드리는 장면 등 에필로그가 삽입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 장면의 울림은 꽤 크다. 거장의 소설만큼 뛰어난 연출력 덕분이다.

이병헌과 김윤석의 팽팽한 연기 대결, 좁은 공간을 더 좁아 보이게 만든 김지용 촬영감독의 카메라, 영상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선율, 소설의 날카로운 문장을 대사에 접목한 시나리오, 황동혁 감독의 세련된 연출 등 대중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지만 작품성 면에서 '남한산성'은 최근 만들어진 어떤 사극보다 완벽하다.

'남한산성'은 '국뽕'스러운 애국심을 강조하는 영화는 아니다. '하면 된다'는 확신은 없고 영화 내내 온통 불확신만 가득하다. 결국 결사항전의 의지는 백기투항 앞에 무릎을 꿇고, 최명길의 뜻대로 역사는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승자로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패배와 실패의 기운은 영화 내내 감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실패한 역사로부터 배우기 위함이다. 우연히 얻어진 승리보다는 때론 치열하게 다툰 끝에 감당하기로 결정하고 맞이한 실패가 더 위대할 수 있다. '남한산성'의 메시지는 바로 그런 위대한 실패의 역사를 돌아보는 데 있다.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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