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형사법정서 펼쳐진 흐뭇한 도로교통법 재판

  • 마석우
  • 입력 : 2017.10.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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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매경DB
▲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매경DB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27]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낮에는 아직 덥다 싶지만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은 지금이 틀림없는 가을이고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임을 예고한다. 진행하고 있는 사건이 마무리 수순으로 들어가는 시기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법원의 흐름이 약간 바뀐다. 내년 초 인사를 앞두고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기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맞추어 변호사들의 선구안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재판부의 심증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기민하게 파악해 승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은 조기에 매듭지을 수 있도록 흐름을 잡아야 하고, 패색이 짙은 사건은 어떻게 해서든 다음 재판부에서 다시 한 번 사건을 살펴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오늘은 형사 법정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사건이든 되도록 내 사건의 재판 시간보다 다만 5분이라도 일찍 와서 그날 재판부의 분위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첫 재판기일에는 말할 것도 없다. 재판부마다 재판 진행의 모습이 다르고 그 경향도 다양하다. 이날도 미리 법정에 들어가 선행 사건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청석에 앉아 우리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진행하는 사건이 흥미롭다.

아마도 신호 위반이나 좌회전이 금지된 곳에서 좌회전하다가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범칙금과 벌점이 부과된 사건이었는가보다. 피고인이 즉심에 이의하여 정식 재판을 받는 사건 같다. 피고인이 운행한 차량 내에 블랙박스가 있었는데 이것이 복원이 안 되었는가보다. 재판장께서 그 자료를 제출할 것을 권하셨는데 피고인이 난감해한다. "하루 일당 벌어 그날그날 겨우 사는 사람인데 계속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를 묻고 5만원 범칙금과 벌점 때문에 이의한 것인데 이렇게 계속 재판을 받아야 한다면 재판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다. 재판부도 공판검사도 그리고 방청석도 피고인의 그 절절함에 잠시 숙연해졌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 재판장과 공판검사 모두 딱한 마음이 들었는지 이 사건이 경미사건으로서 피고인 출석 없이 진행될 수 있는 있는 사건임을 확인한 후 국선변호인을 선정할 것임을 알려준다. 본래 형사공판 절차는 반드시 피고인이 출석해야 한다.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공판기일은 진행되지 못하고 공전할 수밖에 없다. 예정된 날자에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영장이라도 발부하여 피고인을 반드시 법정에 출석시키는 것이 바로 형사 절차다.

그런데 형사소송법 제277조는 여기에 대한 예외로써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고도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다액 5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사건, 즉 경미사건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이때는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고 그 대신에 대리인을 출석하게 할 수 있다. 재판장은 이러한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재판을 포기하지 말고 사실을 확인하자고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공판검사는 블랙박스 영상이 보관된 노트북을 제출하면 그 파일을 복원시켜 보겠다고까지 한다. 법원이 선정한 국선변호인이 대리인으로 출석하면 재판이 진행될 수 있으니 재판에 나올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지켜보는 나는 물론이고 방청석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흐뭇해 한다.

내 사건을 마치고 관련 형사소송법 규정을 살펴보았다. 형사소송법 제277조다.

형사소송법 제277조(경미사건 등과 피고인의 불출석)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건에 관하여는 피고인의 출석을 요하지 아니한다. 이 경우 피고인은 대리인을 출석하게 할 수 있다.

1. 다액 5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사건

2. 공소기각 또는 면소의 재판을 할 것이 명백한 사건

3. 장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다액 500만원을 초과하는 벌금 또는 구류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피고인의 불출석허가신청이 있고 법원이 피고인의 불출석이 그의 권리를 보호함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하여 이를 허가한 사건. 다만, 제284조에 따른 절차를 진행하거나 판결을 선고하는 공판기일에는 출석하여야 한다.

4. 제453조제1항에 따라 피고인만이 정식재판의 청구를 하여 판결을 선고하는 사건

공부할 때 이 조문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는 데 쓰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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