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보이는 음악이고, 움직이는 미술이며, 육체로 쓰는 詩다"

  • 허연
  • 입력 : 2017.10.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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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 무렵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 30대 후반 무렵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허연의 일본문학 기행-43] "교바시에서 바바사키몬으로 가는 전찻길 선로를 나가니 큰 가로수들이 잎은 다 지고 고쿄(皇居) 숲에 가느다란 저녁달이 걸려 있었다."

도쿄 중심부 왕궁 근처 가을을 묘사하는 이 장면은 소설 '무희(舞姬)'의 한 구절이다. 도쿄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장편이다.

또한 '무희'는 야스나리 탐미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세 무희의 인생을 바라보는 건조한 시선이 압권인 이 소설은 절대허무에 매달린 야스나리의 문학세계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야스나리의 문학세계는 '무용'을 빼고는 말하기 힘들다. 그 자신이 이름난 무용평론가이자 무용애호가였기 때문이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가 무용평론가로 그려지듯 그의 소설에 무용이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에게 무용은 미학의 정수를 만나는 하나의 창(窓)이자 촉수이다.

그는 "무용은 보이는 음악이고, 움직이는 미술이며, 육체로 쓰는 시이자, 연극의 정화다"고 말했을 정도로 무용지상주의자였다.

'무희'는 야스나리 작품 중 가장 본격적인 무용소설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 여인이 모두 춤인생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소설 전체의 바탕화면이 무용인 셈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지 않았으므로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주인공 나미코는 젊은 시절 프리마돈나를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하고 애정없는 결혼 생활을 20년째 이어가고 있는 여인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내던 다케하라가 있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결단을 내리지는 못 한다.

나미코의 딸인 시나코는 어머니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기 위해 유명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자리에까지 오른다. 하지만 그의 꿈은 전쟁으로 인해 유학이 좌절되면서 무너져 내리고 만다. 시나코는 소녀시절 자신에게 무용을 가르쳤던 가야마 선생을 짝사랑하면서 살아간다.

나미코의 제자이자 시나코의 친구는 도모코는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나미코의 일을 도우며 무용을 배우지만, 재능만큼은 천재적이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무용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 아사쿠사의 스트리퍼가 된다.

소설은 야스나리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어느 주인공도 승자로 만들지 않은채 끝을 맺는다. 그들은 운명에 전투적으로 대항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 운명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이 저항과 순응의 경계선에 소설 '무희'가 존재한다.

"인간이란 저마다 슬픔을 짊어지고 사니까요. 그이도 그래요. 슬픔이 너무 크면 그 밖의 다른일들은 알고도 이해하지 못 하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들도 생기고요."

소설에서 주목해 봐야할 인물이 나미코의 남편인 야기다. 문학을 전공한 그는 일본의 전통미에서 영원한 아름다움을 찾는 인물이다. 그의 정서 밑바탕에는 패전 이후의 허무감, 전쟁공포증 등이 깔려 있다. 처음에는 나미코의 춤에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했으나 그것이 잘 안 되면서 불상이나 도자기 같은 고미술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이런 특성으로 미루어보건대 야기는 야스나리 자신의 분신인 듯 보인다.

1950년대 무력함에 빠진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굴절된 삶을 사는 세 명의 무희를 그린 이 소설은 섬세한 묘사가 압권이다.

"평범한 결혼이라는 게 있을까요? 거짓말을 하시는 군요. 모든 결혼은 하나하나 비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비범해서 결혼이 비범해 지는 것이 아니에요. 평범한 두 사람이 만나서 해도 결국 비범해 지는 게 결혼이에요."

야스나리에게 소설은 하나의 이미지다. 양적 결과물이 아닌 질적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의 수려한 문장에서 '허무'를 만난다. 그것이 승자도 패자도, 옳고 그른 것도 없는 야스나리의 미학이다.

야스나리는 일본이 군국주의 행보를 걷는 동안,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 대해 거의 언급도 묘사도 하지 않는다. 물론 행동으로 가담하지도 않는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떤 작품에서도 군국주의에 대한 입장을 드러낸 적이 없다.

왜 그랬는지는 몇 가지 정황으로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유럽의 허무주의 미래파 표현주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아 신감각파를 형성했던 야스나리는 예술지상주의자였다. 절대미를 찾아 헤매는 그에게 전쟁이나 이념, 국가주의는 어울리기 힘든 세계였을 것이다. 야스나리에게 아름다움이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 하나, 소년이 되기도 전 부모와 조부모를 비롯한 전 가족구성원의 죽음을 목격한 그에게 현실은 그 자체가 무의미했다. 삶과 죽음의 궁극을 본 그에게 현실이란 어느 순간 가차 없이 사라지는 것에 불과했을 테니까.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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