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도 이 정도는 돼야 영화사에 남을 수 있죠

  • 홍성윤
  • 입력 : 2017.12.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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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서브컬처-54]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 당연한 말이죠. 하지만 세상에 다시없을 꼴찌라면, 모든 걸 망쳐버린 역사적인 패배자라면 사람들은 기억합니다. 세상은 남다른 꼴등도 기억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사(史)를 빛낸 걸작들 사이로 비죽비죽 솟아나온 세기의 졸작들이 있습니다. 못 만든 수준을 넘어서 재앙과도 같은 완성도로 관객과 평론가들을 후려치는 그런 영화요. 컬트의 반열에 올라선, 혹은 올라설 최악의 영화들을 살펴봅니다.

영화
▲ 영화 '더 룸'(왼쪽)과 '디재스터 아티스트' 포스터. 디재스터 아티스트는 더 룸의 제작 과정과 감독인 토미 웨소에 대한 영화다.

◆영화계의 재앙 '더 룸'

배우 제임스 프랭코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 '디재스터 아티스트'가 12월 8일 개봉합니다(국내 개봉은 미정).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영화 '더 룸'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2003년작 '더 룸'은 상상 이하의 완성도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로스 모린 세인트클라우드 주립대 영화학 교수의 말을 인용해) "못 만든 영화계의 시민 케인"이라고 평가했고, 버라이어티지(誌)의 스콧 파운다스 영화전문기자는 "관객들이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환불을 요구하는 첫 번째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적확한 평가는 가디언지(誌)의 한 기사에서 나왔습니다.

 "좋든 나쁘든 영화를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렇게 '나빠서 좋은' 영화(a movie that's so bad it's good)를 만들기 위해선 통찰력과 추진력, 행운, 그리고 지나친 자만심이 필요하다. 운 좋게도 '더 룸'의 작가·제작자·감독·주연인 토미 웨소는 이 모든 조건을 갖춘 데다가, 연기마저 형편없었다."

한마디로 정성껏 못 만든 영화예요. 삼각관계를 그린 치정극을 표방하고 있긴 합니다만 맥락 없는 전개, 이해 불가능한 대사,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대화, 목적 없는 장면들(길고 긴 베드신), 그리고 최악의 연기로 관객을 고문합니다. 10줄이 넘는 대사를 20초 만에 처리한다든지(아래 첨부 영상 참조), 편집이 엉망이라 여배우의 머리가 한 신에서 풀렸다가 묶였다가를 반복한다든지, 여주인공 어머니가 유방암 투병 사실을 힘겹게 고백하는데 스토리에는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친다든지 하는 불가해한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더 룸'의 제작비는 무려 600만달러(약 65억원)에 달했는데, 토미 웨소는 한국에서 수입한 가죽 재킷을 판매해 영화 제작비를 조달했습니다.

영화는 완성도가 너무나도 처참했던 탓에 되레 인기를 끌었습니다. 소수의, 그러나 열성적인 팬들이 생겼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상영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상영회에서는 관객들이 숟가락을 던지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습니다. 극중 주인공의 거실 선반에는 숟가락 그림이 그려져 있는 액자가 하나 놓여있는데 워낙에 뜬금없는 소품이다 보니 숟가락 그림이 등장할 때마다 야유하며 던진다고.

다시 '디재스터 아티스트' 얘기로 돌아가 보죠. '디재스터 아티스트'는 '더 룸'에서 마크 역으로 출연한 토미 웨소의 친구 그렉 세스테로의 자서전 '더 디재스터 아티스트'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세기의 괴작 '더 룸'의 제작 과정과 기인(奇人) 토미 웨소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개봉을 앞둔 현재 로튼토마토 점수는 95%로 압도적인 호평입니다. 토미 웨소의 외모는 물론 발연기까지 완벽하게 연기해낸 제임스 프랭코에 대한 절찬이 이어지고 있어 '더 룸'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아, 이 영화에는 토미 웨소 본인이 등장한다고 하네요.

최악의 영화
▲ 최악의 영화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왼쪽)과 감독 에드 우드의 삶을 그려낸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에드 우드' 포스터.

◆열정과 재능의 간극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에드워드 D 우드 주니어, 에드 우드(1924~1978)의 별칭은 '사상 최악의 감독'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다큐멘터리 기록영화를 제작하며 영화판에 뛰어든 그는 할리우드에서 독립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영화에 대한 우드 감독의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않았지만, 불행히도 일말의 재능도 없었던 탓에 결과물은 항상 엉망이었죠.

에드 우드의 영화인생을 조명할 때 배우 벨라 루고시와의 우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벨라 루고시는 '드라큘라'(1931)를 비롯해 고딕호러 분야에서 독보적인 스타로 활약했지만, 우드가 그를 만났을 즈음에는 퇴물 배우로 전락했습니다. 우드 감독은 작품 '글렌 혹은 글렌다'(1953)로 이 퇴물 배우와 인연을 맺은 이후 벨라 루고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를 존경하고 보살핍니다. 벨라 루고시 역시 우드의 작품에 출연해 열연하는 것으로 보답하죠.

'글렌 혹은 글렌다'는 원래 미국 최초의 트랜스젠더로 유명한 조지 조겐슨(성전환 이후 이름은 크리스틴 조겐슨)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지만, 여장이 취미였던(?!) 우드 감독이 자신의 도착증을 유감없이 발휘해 감독 본인이 직접 여장을 하고 출연했습니다. 물론 영화는 망했죠.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1959)은 우드 감독 최악의 작품이자, 최고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전설적인 졸작'이에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SF 영화인데 너무나도 조악합니다. UFO가 실에 매달린 채 위태롭게 움직이는 등 엉성한 특수효과가 시선을 강탈합니다. 또 컬러 영화가 개발된 지 30년도 넘은 시점이었지만(1939년작 '오즈의 마법사'도 컬러 영화) 이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은 감독의 고집으로 흑백으로 촬영됐습니다. 이 영화는 1980년 뉴욕에서 열린 '최악의 영화제'에서 '영화사상 가장 못 만든 영화'로 선정됩니다.

이후에도 우드의 실패는 거듭됩니다. 할리우드에서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한 그는 저예산 포르노 영화 등을 만들며 생활고,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다 1978년, 54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에드 우드 사후 그의 작품들은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우드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팀 버튼은 1994년 고인의 일생을 다룬 영화 '에드 우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배우 조니 뎁은 우드 감독 역을 맡아 열연을 선보였습니다. 팀 버튼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분장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
▲ 영화 '무서운영화'의 포스터

◆상식과 형식을 파괴하다 '무서운집'

제대로 못 만든 한국 영화를 꼽으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국제적인 스케일로 망한 전무후무한 졸작 '오! 인천'(1982), 110억원을 공중분해시킨 충무로의 흑역사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영화계와 가요계 모두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긴급조치 19호'(2002), 영화이기를 포기한 그 무언가 '주글래 살래'(2003), 환상의 똥꼬쇼와 명대사 "아빠! 일어나!"를 세상에 남긴 '클레멘타인'(2004), 별점평가 0점에 빛나는 '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2008), 그리고 혜성처럼 등장해서 불꽃처럼 망한 '리얼'(2017). 한국 영화사의 (검게) 빛나는 오점으로 남은 작품들이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죠.

한국 영화사에 굵직한 족적, 아니 상혼을 남긴 영화들. 왼쪽부터
▲ 한국 영화사에 굵직한 족적, 아니 상혼을 남긴 영화들. 왼쪽부터 '오! 인천','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주글래 살래','맨데이트:신이 주신 임무','리얼'.

제 선택은 '무서운집'(2015)입니다. 앞서 언급한 다른 영화들은 투자자들을 눈물 흘리게 하거나(성소) 관객을 불쾌하게 만들거나(주글래 살래) 배우들에게 씻을 수 없는 흑역사를 만들어줬을 뿐(리얼) 누군가를 열광하게 만들어나 매료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졸작일 뿐 컬트영화의 반열에 올라서지 못한 거죠.

하지만 이 영화 '무서운집'은 다릅니다. 충격적으로 못 만들었지만 그 조잡함, 형편없음은 나름의 매력을 갖췄습니다. "장르영화의 혁신! 그야말로 충격적"(영화감독 이병헌), "장르영화의 기상천외한 '탈산업' 전략이다"(영화평론가 김영진) 등 전문가의 예상 밖 호평과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댓글이 쏟아졌고. 극장에서 이 영화를 직접 본 관객의 후기는 성지가 됐습니다. 단 하루 단관 개봉에 그쳤던 영화는 VOD 출시 이후 관객들의 성원 때문에 이례적으로 극장에서 재개봉하는 기염을 토했고요.

영화평론가이자 들꽃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달시 파켓은 '무서운집'에 대해 "완전 골 때리는 영화"라는 평가를 내리며 치켜세웠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제3회 들꽃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동진 운영위원장은 "인터넷이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때에 웹의 영역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독특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이 상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영역 확장을 하고 있는 작품에 주목한 상"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후 '무서운집'은 제10회 파리한국영화제에 특별 초청되기도 했는데 영화제위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제안했다고 합니다.

뉴타입 호러를 표방하고 있는 '무서운집'은 포스터부터 범상치 않아요. 영화의 만듦새는 포스터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조악하고 해괴하고, 무엇보다 안 무섭습니다. 아침을 차려먹고, 김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춤추고…. 주요 사건과는 1도 관계없는 뜬금없는 장면이 상영시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것도 롱테이크로요. 귀신으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만 반복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에로영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를 연출한 바 있는 양병간 감독(64)은 영화 개봉일 GV(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의도적으로 못 만든 영화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각 장면은 수십 번씩 촬영해 엄선한 것"이라며 "연극배우 출신의 주연배우 구윤희 씨가 연기를 잘하려고 해 갈등이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못 만들려면 제대로 못 만들 것

2016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는 총 1520편(한국영화 302편, 외국영화 1218편)에 달합니다. 이토록 많은 영화들 속에서 작품성도 빼어나고 흥행에서도 성공한 영화를 만들기란 천운(天運)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못 만들어서 유명한 영화가 되는 건 더더욱 어렵죠. 여기에 더해 못 만들었지만 소수의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영화로 자리매김하는 확률은 0에 가까울 정도로 낮을 겁니다. 이토록 낮은 확률을 뚫고, 세간의 비난과 조롱을 이겨내고, 부족한 재능에 좌절하는 일 없이 최악의 영화를 만들어낸 이 세상의 모든 에드 우드 감독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본 관객들에겐 위로를 전합니다.

[홍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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