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를 밟아 와인으로 포르투갈서 만난 전통

  • 나보영
  • 입력 : 2017.12.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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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욕조에서 포도를 발로 밟아 와인을 만드는 전통적인 와이너리 - 따봉! 포르투갈 (2)

포르투갈 전통 타일 장식이 남아 있는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의 예배당
▲ 포르투갈 전통 타일 장식이 남아 있는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의 예배당
[세계의 와인기행-44] 지난 편에 소개한 리스보아 지방의 남동쪽에는 알랭떼주(alentejo) 지역이 있다. 초창기부터 포도가 재배된 데다 내륙 깊숙이 자리한 곳이라서 이제는 거의 사라져 가는 전통이 남아 있다는 것이 매력. 가장 강렬한 기억에 남은 곳은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Dona Maria Julio Bastos)다.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는 18세기 초반에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5세(Joao V, 1689~1750)가 사랑했던 여인 도나 마리아(Dona Maria)를 위해 지은 저택이다. 야자수가 늘어선 정원 양옆으로 붉은 지붕이 솟은 저택이 마주 본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 포르투갈 전통 타일 장식이 돋보이는 예배당과 아라비아 숫자가 새겨진 로마시대 암포라가 가득한 저장고를 지나면, 수영장만 한 크기의 분수대 같은 건축물이 눈을 압도한다. 함께 방문한 기자들과 이것이 분수대일까 수영장일까 추측을 하고 있자니 관리인이 다가와 하는 말이 압권이다.

저택 정원의 석조 인공 호수
▲ 저택 정원의 석조 인공 호수
"저택을 지을 때 건축된 석조 인공 호수와 폭포입니다. 중앙의 흰 대리석 조각상은 삼지창을 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죠. 지금은 물을 가두었지만 예전에는 폭포처럼 물이 흐르게 하여 정원의 관개수로 썼습니다." 개인 저택에 있는 인공호수와 폭포라니 놀라울 따름! 유럽의 성이나 저택은 대체로 레스토랑이나 대여 공간으로 개조해 상업적으로 활용되기 마련인데, 이곳은 본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유주가 실제로 거주하고 있어서 더 놀랍다. 150년간 뛰어난 품질의 와인도 생산되고 있는데, 소유주인 훌리오 바스토스 씨와 함께 와인이 양조되는 과정을 둘러볼 수 있었다.

로마 시대 공중목욕탕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고전적인 석조 욕조들이 늘어선 모습부터 여느 와이너리와는 달랐다. 이곳의 대표 와인들은 옛날 방식대로 석조 통에 포도를 넣고 여럿이 발로 밟아 으깨는 풋 프레싱(foot pressing) 방식으로 만든다. 발효 과정도 고전적인 시멘트 발효조에서 이뤄진다. 소량의 시멘트 발효조로 특정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는 있지만, 넓은 공간에 대규모로 조성하여 본격적으로 쓰는 곳은 드물다. 두께가 무려 40㎝에 달하는 시멘트 발효조는 외부 온도 변화의 전도율이 낮아서 와인을 안정적으로 발효할 수 있다고 한다.

1800년대부터 와인이 생산된 역사를 지닌 도나 마리 훌리오 바스토스
▲ 1800년대부터 와인이 생산된 역사를 지닌 도나 마리 훌리오 바스토스
고전 영화에 나올 법한 이 저택의 고풍스러운 식탁에서 여러 와인을 시음했다. 앞서 살펴본 풋 프레싱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94점을 받은 '도나 마리아 그랑 리제르바 2012(Dona Maria Grande Reserva 2012)'와 훌리오 씨가 그의 부친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만든 '훌리오 비 바스토스 알리칸테 부쉐 2012(Julio B.Bastos Alicante Bouschet 2012)'였다.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1986년산 올드 빈티지 와인이었다. 이름은 '킨타 도 카르모 가하페이라 비뉴 틴토 1986(Quinta do Carmo Garrafeira Vinho Tinto 1986)'. 카베르네 소비뇽에 포르투갈의 토착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 것인데 완벽한 균형미와 우아함을 선사했다. 예전에 이 와이너리가 '킨타 도 카르모'라 불리던 시절에 생산되던 와인이다. 이후에 보르도의 유명 생산자 도멘 바롱 드 로칠드(Domaines Barons De Rothschild)와 지분을 나누고 함께 와인을 만들던 시절도 있었다.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의 와인저장고
▲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의 와인저장고
중간에 여러 변화를 겪긴 했지만 훌리오 씨 가문은 5대째 이곳을 소유하고 있다. 조부 때부터 여름이면 놀러 오곤 했던 추억의 장소이자 지금은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훌리오 씨는 강조했다. 킨타 도 카르모 시절의 와인은 한때 한국에 수입됐지만, 도나 마리아는 현재 정식으로 수입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전통을 꿋꿋이 지켜온 한 가문의 정성을 다시 음미할 수 있으리라!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의 오너 훌리오 씨가 부친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만든 와인
▲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의 오너 훌리오 씨가 부친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만든 와인

나보영 여행작가
▲ 나보영 여행작가
[나보영 여행작가]

※ 잡지 기자 시절 여행, 음식, 와인 분야를 담당한 것을 계기로 여행작가가 됐다. 유럽, 북미, 남미,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안 다니는 곳이 없지만 특히 와인 생산지를 주로 여행한다. 매경 프리미엄 이외에도 '한국경제신문'과 '와인21 미디어'에 자신의 이름을 건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더트래블러' 'KTX매거진' '무브' 등의 여행전문지에도 기고한다. 2018년 봄엔 가까운 식도락의 도시 후쿠오카를 다룬 여행서도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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