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엔 '사이다 풍자' 담긴 공연 어때요?

  • 김연주
  • 입력 : 2017.12.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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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04] 고전이 새 옷을 입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된, 요샛말로 '트렌디한' 옷으로 말이다.

작자 연대 미상의 한글 고전소설 심청전. 한데 국립창극단의 '심청이 온다'의 심청이는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급식체'를 구사한다. 아버지 심봉사는 SNS 삼매경이다. 영국문학의 정전으로 꼽히는 셰익스피어. 그의 문제작 '준대로 받은대로'는 소동극에서 '정의'를 논하는 정치극으로 탈바꿈했다. 정의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화두다. 이 작품에는 '내로남불'형 권력자들이 속속들이 등장한다. 뉴스에스 듣던 단어들과 SNS상에서 벌어졌던 열띤 토론들이 연말 공연장으로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국립극장 마당놀이
▲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국립창극단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심청이 온다'의 작가 배삼식은 '심청전' 속 심청, 심봉사, 뺑덕 등을 더욱 생생하고도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재탄생시켰다. 눈먼 홀몸으로 딸을 키우는 아버지, 딸은 그런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바친다는 '심청전'은 마음씨 착한 효녀에 관한 미담이다.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는 원작의 뼈대는 그대로 가져오되, 고전의 이야기 사이에 현대적인 해석을 채워넣었다.

"공양미 삼백 석에 바다에 뛰어들어도 말리는 어른 하나 없었다고요." 심청이의 하소연이다. 못난 어른들은 가슴이 뜨끔하다. "죽도록 정성 들여/하느라고 허였건만/그 공은 간 데 없고/전처만 생각허니/아무리 생부천들/그 꼴을 어이 볼까." 뺑덕어멈은 전처 곽씨 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심봉사를 향해 억울함을 토로한다. 착하기만 하고 나쁘기만 했던 고전 속 인물들이 마당놀이 무대를 만나 우리 옆집 이웃들의 얼굴을 하고 말을 걸어온다.

국립극장 마당놀이
▲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솔직하다 못해 뻔뻔하다. 백수 심봉사는 방 안에 드러누워 끊임없이 SNS에 신세 한탄과 허세 가득한 글만 올린다. 같은 시간 심봉사의 SNS를 탐색 중이던 뺑덕어멈은 심봉사가 재벌인 줄 알고 덜렁 낚여 결혼을 추진했단다.

초연 당시에도 "청아, 땅콩은 접시에 담아 왔느냐" 등 뼈 있는 대사로 객석을 뒤집어놓은 '사이다 풍자'도 업데이트됐다. 심봉사는 세상에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리와 적폐들로 가득 차 눈을 감아버렸단다. 뺑덕어멈은 심봉사의 재산을 탕진하고는 뻔뻔하게 '특활비'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심청은 현실도피증을 앓고 있다는데 언뜻 보면 이상한 설정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청년들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이와 같이 속을 비워내는 통쾌한 웃음은 마당놀이의 가장 큰 매력. 애초 마당놀이는 해학과 풍자를 통해 민중적인 애환을 전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역할을 도맡아 왔다. 2014년 국립극장은 마당놀이의 부활을 알리며 대극장인 해오름극장 무대 위에 마당과 3면 객석을 설치했다. 그 마당 위에서 탄생한 첫 작품이 바로 '심청이 온다'다. 초연 당시, 손진책·박범훈·국수호·김성녀 등 마당놀이 신화를 쓴 원조 제작진의 재결합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객석 점유율 99%를 기록했다. 4년 만에 돌아온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는 해오름극장에서 하늘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펼쳐진다. 2018년 2월 18일까지.

국립극단
▲ 국립극단 '준대로 받은대로'

◆국립극단 셰익스피어의 '준대로 받은대로'

셰익스피어의 '준대로 받은대로'는 문제작으로 꼽힌다. 희극으로 분류되면서도 비극적 색채가 짙어 '희비극'이란 아이러니한 수식어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프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일이 많은 날들이 무한히 이어지고 있는 나날. 오늘날을 반영하기에 '희비극'만큼 적절한 단어도 없는 것 같다.

'준대로 받은대로'는 빈을 통치하던 빈센티오 공작이 2인자 앤젤로에게 통치권을 잠시 위임한 뒤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시작한다. 앤젤로는 '정의의 사도'를 자임하며 빈에 만연한 성적 방종을 차단한다는 미명 아래 '혼전순결' 법령을 선포한다. 그러면서 이미 9개월 전 약혼자를 임신시킨 클로디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하지만 그의 동생인 견습수녀 이사벨라에게 반하자 권력을 방패삼아 뻔뻔히 자신은 '혼전순결'법을 어기려 든다. 앤젤로는 최근 한국 정치계를 강타한 단어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슬픔이 계속 되다 보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는 법이다. 앤젤로뿐만이 아니다. 피해자들조차도 정의를 내세우며 만행을 자행한다. 보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온다. 자신의 혼전순결을 지키기 위해 오빠에게 "빨리 죽으라"고 요구하는 이사벨라. 삶이 무엇보다 귀하지 않냐며 자신이 살고자 동생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클로디오. 그들은 그럴듯한 논리로 정의를 앞세우지만 자비와 관용이 없는 정의는 폭력에 불과해 보인다.

국립극단
▲ 국립극단 '준대로 받은대로'

흥미로운 건 결말이다. 바이런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두고 "비극은 모두 죽음으로 끝나고 희극은 결혼으로 끝난다"고 한다. '준대로 받은대로' 역시 희극의 공식을 따라 결혼으로 매듭지어진다. 한데 결혼식에 마땅히 있어야 할 환희의 찬가도, 사랑의 맹세도, 웃음도 없다. 마지막 권력을 양도하고 암행어사 행세를 하던 공작이 영웅처럼 컴백해 진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내린 판결은 일견 자비로워 보인다. 사형 대신 결혼을 선고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랑 없는 결혼이다. 방종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죽음 대신 결혼을 해결책으로 내걸지만 그 와중에 '사랑'이란 개인의 자유의지는 묵살된다. 공작 자신도 이사벨라의 마음과 종교적 신념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청혼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당신의 정의가 과연 다른 이들에게도 정의인가? 정의는 여러 개일까 하나일까? '옳다'의 반대말은 과연 '옳지 않다'일까? 무대는 한 개의 원형 무대와 주위를 둘러싼 동심원 모양의 무대 두 개로 이뤄진다. 등장인물들은 무대 위에서 마치 쳇바퀴를 도는 듯하다. 그리고 작품이 던진 여러 가지 질문들은 관객의 머릿속에 파문을 그린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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