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와이너리 투어의 매력 귀족처럼 멋진 고성서 한잔

  • 나보영
  • 입력 : 2018.01.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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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와인기행-47] 한 번쯤 귀족처럼 성에서 와인을!5세기 고성을 품은 와이너리 - 따봉! 포르투갈(5)

와이너리 여행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때로 그들이 성이나 수도원이나 궁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는 귀족이나 수도사들이 포도원을 소유했기 때문에 유럽 유수의 와이너리들은 지금도 중세 유적의 일부를 이룬다.

성을 소유한 와이너리 라브라도레스 드 페이토리아.
▲ 성을 소유한 와이너리 라브라도레스 드 페이토리아.

독일에 갔을 땐 금욕적인 수도사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수도원 회랑을 걸었고, 프랑스에서는 유령이 나온다는 전설이 얽힌 옛 성의 와이너리에서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며 하룻밤 묵었다. 이탈리아 중부지역의 성이었던 한 와이너리는 대문을 지나 숙소 건물로 가는 사이에 길을 헤맬 정도로 넓었고, 카탈루냐의 고성 와이너리에는 스페인 최대 규모 개인 도서관과 박물관도 있었다. 모두 환상적이면서도 부럽기 그지없는 풍경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최근 다녀온 곳이 포르투갈의 대표 와인 생산지 도루 밸리(Douro Valley)에 있는 와이너리 라브라도레스 드 페이토리아(Lavradores de Feitoria)다.

15세기의 고성인 팔라시우 드 상 마테우스
▲ 15세기의 고성인 팔라시우 드 상 마테우스

도루 계곡의 산길은 고도가 올라갈수록 험준하고 황량했다. 드넓게 펼쳐지던 계단식 포도밭들도 점차 드문드문해졌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인적은 자꾸 줄어만 갔고, 집도 가게도 차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쯤 되니 길을 잘못 든 건 아닐까 슬슬 불안해졌다. 잔뼈 굵은 베테랑 운전사와 포르투갈와인협회(Wines of Portugal)의 홍보 담당자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정도였다.

몇 번이나 핸들을 꺾어야만 차를 돌릴 수 있는 비좁은 도로를 우왕좌왕한 끝에 거대한 고목 뒤에 숨어 있는 통로를 간신히 발견했다. 너무 협소해 길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그 입구로 들어가니 비밀의 공간처럼 고풍스러운 성이 등장했다. 바로 15세기 고성인 '팔라시우 드 상 마테우스(Palacio de Sao Mateus)'를 소유한 와이너리 '라브라도레스 드 페이토리아'였다.

그림 같은 정원에서 음악회나 시음회가 열린다.
▲ 그림 같은 정원에서 음악회나 시음회가 열린다.

이곳은 와이너리 못지않게 성도 유명해서 지도나 서적이나 사전에 자주 등장한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저택, 가구, 수집품, 고서적들을 둘러보곤 한다. 안내인을 따라 둘러보다 보니 천장을 뚫을 듯한 고서적에 입이 떡 벌어지고, 세계 각국의 진기한 예술품과 의상과 보석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명 '대항해 시대'라 불리던 시절 포르투갈 왕국의 모습을 짐작하게 했다. 창 너머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모든 자연과 마을과 지붕들이 발 아래에 있었다.

라브라도레스 드 페이토리아의 와인들
▲ 라브라도레스 드 페이토리아의 와인들

도루 밸리는 포트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지만 라브라도레스 드 페이토리아의 대표적인 와인은 포트가 아니라 드라이 레드 와인이다. 포르투갈에서는 250여 가지 포도 품종으로 포트 와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와인을 만드는데 특히 레드 와인 품질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바로 그 우아한 레드 와인의 매력과 와이너리의 빼어난 풍경 덕분에 이 와이너리는 미국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탐험해야 할 와이너리 30곳(30 wineries to discover in the world)'에 선정됐다.

그날 마신 와인들은 투리가 프란카(Touriga Franca), 틴타 호리스(Tinta Roriz), 투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틴타 바호카(Tinta Barroca) 등 포르투갈 대표 레드 와인 품종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깊고 우아하고 균형 잡힌 풍미로 탁월한 매력을 선사했고, 쟁쟁한 유럽 와인 생산국들 못지않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동화 속처럼 예쁜 정원에서는 근사한 시음회나 음악회도 열린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라면 와인의 맛은 더 부드럽게 느껴질 듯하다. 유럽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바로 와이너리 투어이고, 기왕이면 귀족처럼 보내는 것이 근사하리라.

나보영 여행작가
▲ 나보영 여행작가
[나보영 여행작가]

※잡지 기자 시절 여행, 음식, 와인 분야를 담당한 것을 계기로 여행작가가 됐다. 유럽, 북미, 남미,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안 다니는 곳이 없지만 특히 와인 생산지를 주로 여행한다. 매경 프리미엄 외에도 '한국경제신문'과 '와인21 미디어'에 본인 이름을 건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더트래블러' 'KTX매거진' '무브' 등 여행 전문지에도 기고한다. 2018년 봄엔 가까운 식도락의 도시 후쿠오카를 다룬 여행서도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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