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당신을 위한 힐링무비

  • 양유창
  • 입력 : 2018.02.0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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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앤-170]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화제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2일 개봉)이 언론시사회를 열고 그 첫 모양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독특한 판타지 영화를 평생 만들어온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자신의 10번째 작품인 이 영화에 대해 "지난 9편과 달리 처음으로 어린 시절이 아닌 신뢰, 타자, 섹스 등 성인으로서 걱정을 이야기한 작품"이라고 밝힌 적 있는데 그러나 영화는 '걱정'보다는 여전히 판타스틱한 동화에 더 가깝다.
영화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영화는 1962년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인간 모양의 양서류 괴생명체와 언어장애 여성의 사랑을 그린다. 영상미와 음악이 어우러져 2시간 동안 꿈을 꾸는 듯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하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언어장애인 엘리사 역을 맡은 샐리 호킨스는 영화 '내 사랑'에서 관절염에 걸린 외로운 화가로 작년 33만명의 한국 관객을 극장에서 눈물 흘리게 한 배우다. 이번에도 그녀는 수화와 음악을 통해 괴생명체와 교감을 나누는 외로운 여성을 진지하게 연기한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경향이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셰이프 오브 워터'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 항공우주 비밀기지의 청소부로 일하는 엘리사는 아마존강에서 실험 대상으로 잡혀온 괴생명체를 발견하고는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다가가고, 그가 해부 대상이 될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출하기 위해 친구와 작전을 짠다.
영화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기지 내 관리자이자 카리스마 있는 악당인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가 두 손가락을 잃은 뒤 괴생명체를 죽이려 하자 그녀는 목숨을 걸고 그에 맞선다. 영화는 엘리사와 괴생명체가 스트릭랜드에게 쫓기면서 점점 더 깊은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한 편의 동화처럼 그려낸다.

영화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엘리사가 이웃집에 사는 절친 자일스(리차드 젠킨스)에게 괴생명체를 구해야 한다며 온몸을 다해 설득하는 장면이다. "우리가 뭐라고 그런 일을 해요? 그건 인간도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자일스에게 엘리사는 소리치듯 큰 동작의 수화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

무언의 이 대사가 주는 감동은 크다. 그리고 이 대사 속에 환경 파괴, 냉엄한 국제관계, 인간의 이기심 등 영화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다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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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엘리사는 괴물을 집으로 데려와 사랑을 나누는데 이때 물이 뚝뚝 떨어져 아래층으로 흐른다. 엘리사의 집 아래에는 마침 극장이 있다. 1960년대는 TV가 대중화되면서 아무도 극장에 가지 않았던 시대다. 관객이 다섯 명뿐인 극장에는 성서 속 비운의 여성을 그린 '룻 이야기'(1960)가 상영되고 있다. 구약에서 룻기는 냉혹한 세상에서 헌신적인 사랑의 원형을 제시하는 이야기로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제와도 맥이 닿아 있다.

엘리사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이름 없는 괴생명체의 존재감은 시종일관 영화에 신비한 기운을 불어넣는다.델 토로 감독이 영화 촬영 2년 전부터 사비를 들여 최정예 팀을 구성해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을 정도로 공을 들인 캐릭터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아가미와 비늘이 있는 이 생명체는 단단한 근육질 몸매에 투명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괴물이면서도 혐오스럽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어색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수많은 여성들에게 자문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괴생명체 캐릭터에는 원작이 있다. 1954년 미국 흑백 3D 괴수영화 '블랙라군의 피조물'에 등장하는 반인 반어류인 괴수 '질맨(Gill-Man)'이다. 이 B급 고전 영화는 2002년 리메이크가 논의됐고 델 토로 감독은 연출로 참여하고 싶어했으나 유니버설 픽처스로부터 거절당한 뒤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써 '셰이프 오브 워터'를 완성했다.

영화의 제목인 '셰이프 오브 워터'는 물의 형태는 그것을 담는 기구의 모양에 따라 얼마든지 변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형태가 아닌 그 속에 담긴 본질이라는 것이다. 사랑도 물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장애인이든, 인간이 아닌 미지의 다른 종이든 사랑은 그들을 위한 새로운 형태(셰이프)를 찾아갈 것이다. 이 어지럽고 각박한 세상에서 사랑이 아름답고 또 위대한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닐까. 델 토로 감독은 이 영화가 "자신을 위한 힐링무비"라고 말했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도 마음이 치유되는 힐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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