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피겨여왕 '아이, 토냐' 악녀인가 오해인가

  • 양유창
  • 입력 : 2018.03.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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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앤-173] 이것은 실화다. 한때 미국에서 빌 클린턴 다음으로 유명했던 피겨 스케이터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와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드라마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스포츠인 피겨 스케이팅을 소재로 한 솔직하고, 파워풀하고, 또 폭력적이면서 쌍욕이 난무하는 영화다. 스포츠와 영화에 공통점이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때론 가능하다는 것.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혹은 가장 오해받은 피겨 퀸을 주인공으로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연대기순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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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냐 하딩(마고 로비)은 미국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피겨 스케이터다. 세 살 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한 이래 괴물 같은 엄마 라보나(앨리슨 제니)의 혹독한 지도 아래 스케이트를 탔다. 또래들은 친구가 아닌 경쟁자였고, 이겨야 할 대상이었다. 강압적인 환경에서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고 자란 덕분에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하지만 가장 여성스러운 스포츠를 하는 그녀는 터프했고 욕설이 입에 뱄다. 토냐는 경기 시작 전 피우던 담배를 스케이트날로 비벼 끄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 번도 여성스러웠던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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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냐 주위에 만만한 인물은 없다. 남편 제프(서배스천 스탠)는 툭하면 그녀를 때린다. 폭력이 익숙한 토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제프의 친구이자 토냐의 보디가드인 숀(폴 월터 하우저)은 허풍이 몸에 밴 겁쟁이다. 이들은 토냐의 인생에 개입해 그녀의 인생을 망쳐놓는다.

영화는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경쾌하게 진행돼 지루할 틈이 없다. 과연 토냐가 경쟁자인 낸시 케리건(케이틀린 카버) 청부 폭행 사건에 어디까지 개입했는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미스터리 플롯을 차용하고 있어 끝까지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토냐, 라보나, 제프, 숀이라는 개성 강한 네 캐릭터들의 극과 극 충돌이 영화에 강력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모큐멘터리 스타일의 인터뷰와 중간중간 인물들이 관객을 향해 상황을 설명해주는 대사가 유발하는 소격효과(제4의 벽 깨뜨리기)가 관객이 영화를 더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영화는 마지막에 실제 인물들의 당시 영상을 삽입해 이 '믿거나 말거나'스러운 기막힌 일들이 모두 실화임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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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냉혈한 엄마 아래서 혹독하게 길러진 피겨 스케이팅 천재는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 온갖 우여곡절을 겪다가 라이벌 청부 폭행 혐의에 휘말려 오명을 쓰고 결국 스케이트화를 벗는다. 영화 속에서 토냐가 자주 내뱉는 말이 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트리플 악셀에 실패했을 때도, 결혼 생활이 끝장났을 때도, 엄마에게 도망가기 위해 집을 떠날 때도 그녀는 곧잘 이렇게 말한다.

토냐의 변명 같은 이 대사는 토냐의 인생이 망가진 이유를 설명해준다. 과보호, 과폭력 상태에서 온실 속 피멍 든 화초처럼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책임을 회피하는 걸 당연시 여겨왔다. 불편한 일은 모두 엄마가 처리해줬고, 남편이 생긴 후엔 의존성이 더 심해졌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신경 써서 제대로 알고자 했더라면, 그래서 잘 되든 잘못 되든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녀의 인생은 이토록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고의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인성은 갖추지 못한 토냐의 모습, 그리고 국가대표는 실력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는 심사위원의 말 등은 너무 리얼해서 며칠 전 끝난 평창 동계올림픽의 몇몇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동료를 버린 선수도 있었고, 선수들에게 책임을 떠넘긴 코치도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TV를 통해 보는 피겨 스케이팅의 우아함은 잘 연출된 쇼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토냐 하딩이라는 명과 암이 뚜렷한 매력적인 캐릭터는 '할리퀸'으로 유명한 마고 로비가 연기한다. 영화에 제작자로도 참여한 그녀는 갈고 닦은 피겨 스케이팅 실력과 함께 영화 후반부에는 복싱 실력까지 마음껏 뽐낸다. 라보나를 연기한 앨리슨 재니가 올해 75회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편집상 후보에 올라 있다. 3월 8일 개봉.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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