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코보의 소설이 그려낸 세상, 노동과 억압의 덫에 갇힌 인간상

  • 조성준
  • 입력 : 2018.07.05 06: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죽은 예술가의 사회-2] 아베 코보 (소설가·극작가, 1924~1993)

◆함정에 빠진 사람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천명관 소설 '고래'에 나오는 문장이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에게 저 문장은 비유나 상징이 아닌 현실이다. 먼지는 하루 이틀 신경 안 써도 구석구석 쌓인다. 청소솔로 박박 문지른 변기 안쪽은 며칠 후면 붉은 물때가 낀다. 머리카락을 쓸어 모아 버리고 뒤돌아서면 방바닥엔 또 머리카락이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은 매일같이 이뤄지는 누군가의 수고에 감사해야 한다. 끊임없는 노동이 어디 청소뿐인가. 보통 사람들의 밥벌이는 매일 같은 풍경 속 유사한 노동의 반복이다. 매일 먼지가 쌓이듯, 생계전선도 끝이 안 보인다. 오늘도, 내일도, 기력이 다할 때까지 출근인파로 가득한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인생이 함정에 빠진 것 같다.

아베 코보가 1962년 발표한 소설 '모래의 여자'에도 비슷한 함정에 빠진 남자가 나온다. 주인공은 판잣집으로 흘러내리는 모래를 퍼낸다. 삽질을 게을리하면 집이 모래에 파묻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 일을 멈추면 밥도 물도 얻을 수 없다. 무의미해 보이는 '삽질'이지만 살려면 멈출 수 없다. 이 남자는 어쩌다 이런 함정에 빠졌을까.

영화
▲ 영화 '모래의 여자'의 한 장면.

◆탈출할 수 있지만, 탈출하지 않는다

아베 코보 소설의 주요 모티브는 실종이다. '모래의 여자'도 한 남자의 실종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31세 니키 준페이, 직업은 학교 선생. 그는 휴가 중 희귀 곤충채집을 위해 사막화가 진행 중인 바닷가 마을을 찾는다. 막차가 끊기자 마을 노인이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한다. 남자는 모래 구덩이 안 젊은 여자가 사는 판잣집에 사다리를 타고 안내된다. 한밤중 여자는 집 밖으로 나가 구덩이 안으로 흘러내리는 모래를 퍼낸다. 그렇게 안 하면 집이 모래에 파묻힌다. 여자가 퍼낸 모래는 밧줄 달린 통에 한가득 담겨 밖으로 반출된다. 주민들은 그 모래를 공사장에 판다. 이게 이 마을의 경제시스템이다. 여자는 하룻밤 묵어가는 남자를 손님이 아닌 동반자처럼 대한다. 뭔가 이상하다.

잠에서 깬 남자는 바깥세상과 연결된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길한 느낌이 든다. 여자에게 자초지종을 듣는다. 이 마을은 타지 사람을 구덩이 안으로 유인해 감금한 후 모래를 퍼내는 노예로 활용해 왔다. 남자는 꼼짝없이 삽질하게 생겼다. 맨손으로 가파른 모래벽을 필사적으로 올라보지만 실패한다. 여자를 붙들고 으름장을 놔도 소용없다. 탈출은 쉽지 않아 보인다.

남자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모래 퍼내기를 거부하면 주민들은 식량과 식수 공급을 끊는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계속 삽질해야 한다. 여자는 언제부터 모래 퍼내기에 동원됐을까. 남자와 달리 여자는 이 삶에 큰 불만이 없다. 모래 퍼낸 대가로 받은 돈을 모아 라디오를 사는 게 그녀의 몇 안 되는 희망사항이다. 몇 번의 탈출 시도가 좌절되자 남자는 구덩이 안의 노동과 일상에 조금씩 적응한다. 여자와는 육체적 관계를 맺는 사이가 된다.

몇 달이 지났다. 아직 완전히 탈출을 포기한 건 아니다. 남자는 모래바닥에 구멍을 파 빈 통을 심는다. 이 덫으로 까마귀를 잡아 다리에 구조요청 쪽지를 달아 날려 보낼 목적이다. 얼마 뒤 통 안을 들여다보니 까마귀 대신 물이 가득 차 있다. 모래의 모세관 현상을 활용해 이 사막에서 식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주민들에겐 일단 비밀로 한다.

어느 날,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자가 산통을 호소한다. 주민들이 여자를 구덩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긴급한 나머지 여자를 끌어올릴 때 쓴 사다리를 그대로 뒀다. 남자는 드디어 바깥으로 나온다. 감시자들이 여자에게 정신 팔린 지금, 절호의 탈출 기회다. 하지만 남자는 바깥 경치를 한번 둘러본 후 다시 구덩이 안으로 내려온다. 통 안에 가득 찬 식수를 확인하고 만족스러워 한다. 지금 남자의 머리엔 자신이 발견한 이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탈출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소설은 끝난다.

영화
▲ 영화 '모래의 여자'의 한 장면.

◆현실 속 수많은 모래 구덩이들

남자는 부조리한 체제에 순응하고, 코앞의 자유를 보류한 채 억압하는 자들에게 잘 보이려 한다. 소설을 소설로만 읽었을 때 남자를 비판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작품에서 나와 현실로 고개를 돌리면 이 판단은 쉽지 않다. 과로사가 큰 뉴스가 되지 않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은 회사가 죽을 만큼 일 시켜도 탈출하지 않고 버틴다. 낮, 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일하며 드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라는 의심은 애써 지워버린다. 구덩이 안에 갇힌 남자가 그 안의 삽질에서 의미를 찾았듯, 사람들도 쳇바퀴 같은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끊임없는 생계전선에서 탈출할 구멍이 안 보인다면 차라리 노동에 몰두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회사원에게 직장은 대체로 지긋지긋하지만 동시에 전부이기도 하다.

더 창의적인 삶을 꿈꾸며 안정적인 조직에서 훌쩍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시스템에 맞서는 사람들 덕에 사회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소수다. 누구나 혁신과 혁명을 실천하며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피곤하고, 귀찮아도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헬조선이 싫어도 탈출 방법은 안 보인다.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도 맥없이 따른다. 여름휴가 해외여행을 위해 1년을 혹사한다. 보통 사람들의 풍경이다. 이렇게 일상에 적응한 사람들에게 '모래의 여자'는 불편한 소설이다. 희미해진 각자의 모래 구덩이가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떤 삽질을 하고 있는가'. 반세기도 더 지난 이 소설은 여전히 문제작이다.

'모래의 여자'는 1964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만큼 영화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거론된다. 아베 코보가 직접 각색한 이 작품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아베는 동년배 작가 미시마 유키오와 함께 자주 거론된다. 아베는 도쿄대 의학과, 미시마는 도쿄대 법학과를 나왔다. 아베는 좌파, 미시마는 극우를 대표했다. 비현실적인 소재를 활용해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 아베 코보는 '일본의 카프카'로 불렸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10대 문제 작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조성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