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다

  • 양유창
  • 입력 : 2018.07.3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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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영화 '어느 가족'
[시네마앤-185] 지난 26일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은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며 살아가는 유사 가족 이야기다. 이 유사 가족은 아빠, 엄마, 할머니, 큰딸, 그리고 어린 아들과 새로 들어온 딸로 구성되어 있다.

딸이 새로 들어온다고? 그렇다.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갈 곳 없는 여자아이 유리(사사키 미유)를 집으로 데려온다. 유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가 찾는 것 같지 않고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 유괴가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이 가족은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하나씩 데려와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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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 가족'

오사무와 노부요는 아이들에게 도둑질을 시킨다. 하지만 여느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강압적으로 '앵벌이'를 강요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훔치는 과정을 놀이처럼 즐긴다. 작전을 짜고 비밀을 공유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과 오사무는 한 팀이 돼 더 끈끈해진다.

영화는 이 가짜 가족이 왜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사무라는 남자의 전사는 영화 속에 없다. 영화가 알려주는 전사는 노부요가 유흥업에 종사하던 여자였고 오사무는 그녀의 손님으로 알게 됐다는 것 정도다. 그러니까 이들은 원래부터 하층민이었다. 이들 인생에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인생에 딱히 불만이 없어 보인다. 오사무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노부요는 가끔 상념에 젖어 있지만 아이 같은 남편 대신 중심을 잡아준다(안도 사쿠라의 절제된 눈물 연기는 영화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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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 가족'

"이제 워크셰어를 한대."

"그게 뭔데?"

"월급 주기 힘들다고 열 명은 오후에만 나오래."

"다함께 조금씩 더 가난해지는 거네?"

"뭐 그런 거지."

오사무와 노부요의 대화다. 워크셰어는 그럴싸한 단어지만 속내는 인력을 줄여야 할 만큼 경영이 힘들다는 것이다. 세탁소에서 일하던 노부요는 실직 위기에 처하고 가족에는 그나마 있던 쥐꼬리 수입마저 없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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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 가족'

이번엔 큰딸 아키(마쓰오카 마유)가 할머니(기키 기린)와 나누는 대화를 보자.

"새 일자리 구했어. 숫총각들에게 옆가슴을 보여주면 돼."

"옆가슴?"

"응. 이렇게 덜렁덜렁거리는 거야."

"세상에 그렇게 돈 벌기가 쉽니?"

노동조건 악화부터 성의 상품화까지, 영화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천연덕스러운 대사 속에 녹인다. 그래서 이 유사 가족의 삶은 경쟁 중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래 지속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동화 같은 설정임을 상기시킨다.

영화는 2016년 일본에서 일어난 연금 사기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감독은 한 가족이 부모의 사망을 숨기고 연금을 부정 수급한 사건에 살을 입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 중 '아무도 모른다'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합친 듯한 영화다. '아무도 모른다'는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방치된 남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아이가 뒤바뀐 것도 모르고 살다가 6년 만에 사실을 알게 되는 두 가족의 이야기였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서 가족이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가장 이해하기 힘든 관계다. 아이를 버리고 찾지 않는 엄마(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멀어지는 아들(걸어도 걸어도), 끝까지 속내를 알 수 없던 남편(환상의 빛), 가족을 버린 아버지(바닷마을 다이어리), 부자연스럽게 다시 시작하는 부자(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자유 의지가 아니라 이미 할당되어 주어진 관계이기에 벗어나기 힘들다.

'어느 가족'의 유사 가족은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끈끈한 유대감으로 묶인다. 이들에겐 도덕관념도, 윤리도,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만큼은 풍족하다. 항상 천진난만하던 오사무는 아들 쇼타(조 가이리)와 헤어지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버스를 향해 전력질주하고, 쇼타는 경찰에게 오사무에 대해 함구한다. 유리는 진짜 엄마를 찾았음에도 가짜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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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 가족'

우리는 혈연으로 뭉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살면서 관계가 삐걱거릴 때마다 의무감이라는 반창고를 붙이고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영화는 단지 피가 섞여서 같이 살게 됐을 뿐인 가족보다 서로를 이해해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진짜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유리를 꼭 안아주던 노부요처럼 말이다. "아이를 버린 사람은 따로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며 눈물을 훔치는 그녀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배다른 동생을 받아들이던 마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뒤바뀐 아들을 자기 아들인 줄 알고 키웠던 마음을 넘어서 '어느 가족'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아예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일종의 대안 가족으로 제시하는 수준으로 나아갔다. 조금 더 급진적으로 진화한 고레에다 감독의 세계관에 케이트 블란쳇을 중심으로 한 칸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황금종려상으로 응답했다.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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