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피터스 문' 난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양유창
  • 입력 : 2018.08.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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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는 유럽 국가 중 난민에 가장 적대적인 정책을 시행 중이다. 2010년부터 8년째 총리직을 수행 중인 오르반 빅토르는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유럽에 난민 문제가 대두되자 세르비아 국경에 레이저 철선을 설치한 장벽을 건설하며 난민 유입을 철저하게 막았다.

이듬해인 2016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등 발칸 국가들이 잇달아 이주민과 난민의 국경 이동을 막으면서 발칸반도를 통한 난민 유입은 원천 봉쇄됐다. 이 루트는 그전까지 100만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들어온 길이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헝가리는 2015년 유럽연합(EU)이 도입한 난민 분산수용 강제할당제를 거부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명의 난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헝가리는 올해 6월 불법 입국하는 사람을 도우면 최대 징역 1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다. 이에 유럽연합은 헝가리가 유럽연합의 난민법을 따르도록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헝가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달 18일 유엔이 새로 마련한 글로벌 난민협약마저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엔 난민협약이 위험 인물의 이동을 용이하게 한다는 것이다.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유엔 난민협약 거부는 지난해 12월 불참을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영화
▲ 영화 '주피터스 문'

"목성에는 70개가량 위성이 있는데 그중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환경을 갖춘 위성의 이름은 유로파다."

영화 '주피터스 문'은 의미심장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유로파는 목성 위성의 이름이면서 유럽의 어원인 제우스가 흠모한 여인의 이름이다. 사람이 찾지 않는 영국 지방을 여행하면서 쇠락한 마을을 멜랑콜리를 상징하는 행성인 토성과 연결시킨 W G 제발트의 소설 '토성의 고리', 입시경쟁에서 낙오한 학생을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에 빗댄 영화 '명왕성'처럼, '주피터스 문'의 유로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은유하는 제목으로 영화에 차용됐다.

과연 유로파는 머나먼 곳에서 온 이민자가 살 수 있는 위성일까? 영화는 유로파에 불시착한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들은 시리아 내전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헝가리 국경을 넘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국경수비대가 이들을 뒤쫓고 아버지와 아들은 흩어진다. 경찰 라슬로(죄르지 체르할미)는 기어이 아들 아리안(좀보르 예게르)을 향해 총을 쏘고 아리안은 가슴에 총알을 맞고 쓰러진다.

영화
▲ 영화 '주피터스 문'

다음 장면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아리안이 중력을 거슬러 공중으로 떠오른 것이다. 마치 성경 속 천사처럼, 부활한 예수처럼 혹은 유로파의 외계인처럼 아리안은 지구의 생존 법칙인 중력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렇다고 아리안이 슈퍼맨처럼 하늘을 휘젓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공중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의료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수용소에서 뒷돈 받고 난민을 빼내주며 살아가는 의사 스턴(메라브 니니제)은 아리안을 발견하고 그를 돈벌이에 이용한다. 하지만 라슬로가 끈질기게 아리안을 쫓으면서 두 사람은 막다른 곳에 몰린다.

영화
▲ 영화 '주피터스 문'

사회주의 국가 헝가리는 어느새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곳이 되었다. 스턴은 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존경받던 의사였던 그는 한순간 추락해 이젠 돈이라면 뭐든지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탐욕이 난민들에게는 작은 희망이 된다. 난민을 막는 것은 '체제'이지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턴은 무신론자에 지독한 냉소주의자이지만 아리안을 만난 뒤 조금씩 변화해간다.

반면 라슬로는 전형적인 체제우선론자다. 그는 개인보다 국가의 안전을 우선시한다. 체제에 위협이 되는 난민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폭발 사고가 발생해 라슬로는 자신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한다.

이처럼 영화는 상징적인 인물들과 하늘을 나는 난민을 종교에 빗댄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스턴과 라슬로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아리안을 찾을 때 그 아이러니가 영화를 끌고 가는 추력이다.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은 아리안이 하늘로 떠오를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영화
▲ 영화 '주피터스 문'

물질만능을 상징하는 스턴은 아리안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면서 점점 인간성을 회복해 간다. 라슬로의 포위망이 좁혀오면서 두 사람의 연대감은 더 강화된다. 영화 후반부에 두 사람은 유사 부자 관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안전한 곳이 있을까요?"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날 곳은 없단다."

아리안이 하늘을 날 때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그를 향해 기도를 올리지만, 정작 하늘을 나는 천사도 땅으로 내려오면 발 붙일 곳이 없다. 그래서 아리안이 하늘을 나는 경이로운 순간은 신비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먹먹하게 다가온다. 유로파는 사람이 살기에 너무 척박한 땅이었던 것이다.

영화
▲ 영화 '염력'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한국 영화가 있다. 올해 초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염력'이다. '염력'과 '주피터스 문'은 자신의 거처에서 쫓겨나야 하는 주변부 인물이 특별한 능력을 갖게 돼 벌어지는 상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닮았다. '염력'은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주피터스 문'은 아버지를 찾으려는 아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발상이 비슷하다.

그러나 '염력'이 제목처럼 단순하게 나쁜 놈들 혼내주는 복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비해 '주피터스 문'은 나쁜 놈으로 전락한 또 다른 주인공 스턴을 통해 아리안이 처한 상황을 바라보며 공감하게 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입체적이다. 즉 '염력'은 철거민이라는 소재를 (의도가 그렇지 않았더라도) 자극적인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반면, '주피터스 문'은 난민이라는 소재를 한 번 더 곱씹어 보게 만든다.

철거민과 난민은 영화 속에서 모두 하늘을 날지만 '염력'에선 나는 것이 단지 신기함으로 소비되는 반면, '주피터스 문'에선 나는 행위가 갈 곳 없는 난민들의 간절함과 맞닿아 더 울림이 크다.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
▲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

영화를 만든 헝가리의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은 2014년 유기견들이 생존을 위해 인간에 맞서는 영화 '화이트 갓'으로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독특한 상상력을 가미한 시적인 영상에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메타포를 가미한 영화가 그의 특징이다.

미클로스 얀초, 이슈트반 사보 등 헝가리를 대표하는 감독의 작품들은 항상 시적인 은유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문드럭초 감독의 영화가 이 경향을 따라가는 것은 헝가리의 영화 전통이라고 볼 수 있다. 난민에게 극단적으로 적대적인 헝가리의 정치적 상황을 생각하면 더 급진적인 영화가 필요할 것 같지만, 오랜 세월 사회주의 독재를 경험해온 헝가리인들은 직유보다는 은유가 더 오랫동안 싸울 수 있는 힘이라고 믿는 듯하다. 작년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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