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목격자'와 제노비스 신드롬

  • 양유창
  • 입력 : 2018.08.2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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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누구보다 훌륭하고 준법정신이 투철한 37명의 퀸스 시민들은 무자비한 살인마가 큐가든스에서 한 여성을 미행하고 세 번에 걸쳐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그러나 그중 경찰에게 살인사건을 신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격받은 여성이 숨진 뒤에야 오직 한 명이 경찰에 전화를 걸었을 뿐이다."

키티 제노비스와 뉴욕타임즈의 헤드라인
▲ 키티 제노비스와 뉴욕타임즈의 헤드라인

1964년 3월 27일자 뉴욕타임스에는 길거리에서 강도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한 캐서린 제노비스의 비극과 이를 지켜본 주민들의 무책임을 지적한 마틴 갠스버그 기자의 기사가 실렸다. 이 사건의 취재를 갠스버그 기자에게 할당한 아베 로젠탈 편집자는 갠스버그가 애초 보고한 38명을 실수로 37명으로 누락시켜 신문에 실었다.

그로부터 52년 후인 2016년 뉴욕타임스는 당시 기사가 잘못 되었다는 정정보도를 냈다. 52년 만에 뉴욕타임스가 밝힌 팩트는 이렇다.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37명이 아닌 12명이었고, 이들 중 살인 광경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2명은 모두 연인 혹은 술 취한 이들이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 중 2명이 경찰에 전화로 신고했고, 그중 한 명은 밖으로 나가 죽어가는 제노비스의 얼굴을 팔로 감싸안고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베 로젠탈은 뉴욕타임스에서 무려 56년을 근무한 베테랑 기자다. 그는 베트남전, 펜타곤 페이퍼, 워터게이트 등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취재하거나 혹은 편집자로 일하며 취재기자들을 지휘했다. 1960년에는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제노비스 신드롬'으로 유명해진 이 사건에서 더 많이 거론된다.

1964년 뉴욕타임스 도시판 편집자 아베 로젠탈
▲ 1964년 뉴욕타임스 도시판 편집자 아베 로젠탈

1964년 뉴욕타임스 보도 이후 사회와 학계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38명이나 되는 목격자가 있으면서 아무도 타인의 비극에 무관심할 수 있는지 자성과 반성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비브 라텐과 뉴욕대의 존 달리는 정말로 '방관자 효과'가 존재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모여 토론하는 방에서 한 학생이 갑자기 간질 발작을 일으킬 때 실험 참가자들이 도와줄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는데, 방에 한 사람만 있을 때 그가 도와줄 확률은 85%였던 반면, 5명이 있을 때는 고작 31%에 불과했다. 즉, 사람들이 집단으로 있을 때 "나 아니어도 누군가 도와주겠지" 하는 심리가 작동하며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희석되는 '방관자 효과'가 실험으로 증명된 것이다.

맬컴 글래드웰은 저서 '티핑 포인트'에서 이 실험을 소개했고, 스티븐 레빈과 스티븐 더브너도 저서 '괴짜경제학'에서 이타주의의 케이스 스터디로 이 사건을 다루면서 더 유명해졌다. 그러니까 뉴욕타임스의 오보에 의해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방관자 효과'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
▲ 영화 '목격자'

조규장 감독의 영화 '목격자'는 '제노비스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한 여성이 아파트 앞에서 새벽에 살해당한다는 설정, 살인마가 대범하게도 다시 나타나 그녀를 죽인다는 설정, 수많은 잠재적 목격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는 설정 등이 제노비스 사건과 유사하다.

영화는 여기에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아파트)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을 덧붙였다.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재산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고, 집이 없는 사람들은 아파트 한 채 갖는 것(내 집 마련)이 소원일 정도로 한국인의 부동산 집착은 유별나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펼치던 문재인정부의 지지율이 최근 하락하는 이유도 아파트값 폭등 여파일 정도로 부동산은 매우 첨예한 사안이다.

때로는 아파트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집값 담합, 사회적 시설물 기피현상(NIMBY) 등 집단 이기주의로 번지기까지 한다. 영화 속에서 부녀회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집값 떨어질까봐 쉬쉬하는데 이는 뉴스에서 자주 보아온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닮았다.

실제로 2009년 5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죽이고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한 사건은 오후 7시에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었다. 당시 외지인에 대한 주민들의 무관심과 땅값 걱정하며 죽은 사람 원망하는 일부 주민들의 행태는 우리 사회 집단 이기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영화의 마지막 산사태가 벌어지는 장면은 구체적으로 2011년 우면산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서초구의 한 아파트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 영화 '목격자' 촬영 현장의 조규장 감독과 이성민, 김상호 배우(왼쪽부터)

"대한민국 국민의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벽 하나를 사이에 뒀음에도 불구,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이러한 삶의 방식 속에 살인사건이라는 범죄가 침투했을 때 사람들이 드러낼 심리를 담고 싶었다."

조 감독이 밝힌 연출의도다. 그가 영화 속에 담은 사람들의 심리는 공포와 두려움이다. 주인공 상훈(이성민)은 범인이 아내와 딸을 해코지할까봐 두려워하고, 부녀회장은 집값이 떨어질까봐 두려워한다. 두 극단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올곧은 형사 재엽(김상호)은 끈질긴 수사로 상훈을 부추기면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해 나아가고, 상훈의 아내 수진(진경)은 가장 평범한 모습의 생활밀착형 연기로 관객과 공감의 끈을 이어간다.

대범하게도 범인이 누구인지 다 밝히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목격자인 주인공 상훈의 심리변화를 주요 동력으로 삼아 111분을 끌고 간다. 터프한 경찰 반장 혹은 소심한 직장 상사 역할을 주로 맡아온 이성민은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때까지 겁 많고 소심한 가장의 모습으로 일관해 관객을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하게 만들다가 후반부에 가서 터프한 본성을 드러낸다. 영화의 성패는 관객이 상훈에게 얼마나 감정이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데 감독은 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상훈이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이 과제를 돌파한다. 즉, 상훈의 심리묘사는 관객을 답답하게 할지언정 지루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는 상업영화의 중요한 미덕이다.

영화
▲ 영화 '목격자'

영화 '목격자'는 2013년 여름 개봉해 560만 관객을 동원한 허정 감독의 영화 '숨바꼭질'과 2012년 김휘 감독, 강풀 원작으로 240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은 '이웃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일상에 가장 친숙한 소재인 아파트를 공포의 무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목격자'는 두 영화와 비슷하다.

2006년에도 안병기 감독, 고소영 주연, 강풀 원작의 영화 '아파트'가 있었지만 이 영화는 실패했다. 비슷한 이야기도 언제 하느냐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공감지수는 달라진다. 앞서 언급한 세 영화에 비하면 '아파트'는 너무 빨리, 또 어설프게 다가온 영화였던 셈이다.

영화 '아파트'가 너무 빨리 도착한 영화인 이유는 아파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 변화와 관련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가격이 급락하기 전까지 아파트는 소유자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맹목적인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이후엔 하우스 푸어, 각박한 사회 등을 상징하는 논란의 대상으로 인식이 변했다. 집값 변화도 들쑥날쑥 선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부녀회나 재건축 조합 등의 집값에 대한 집착도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영화 '목격자'에 등장하는 부녀회장의 행동이 훨씬 공감대를 얻기 쉬워진 사회적 환경이 된 것이다.

영화
▲ 영화 '목격자'

하지만 영화 '목격자'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생활밀착형 스릴러를 표방했지만, 상훈의 반전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억지스럽게 과장한 설정이 많이 보인다. 우선 경찰이 바로 앞에 있고, 범인이 뒤에 있는데 주인공이 신고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 경찰의 범인 검거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95%에 달한다는 것을 많은 관객이 알고 있을 것이기에 상훈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범인 태호(곽시양)의 뒤에 거대한 조직이 있다거나 혹은 태호가 그전에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상훈의 가족을 겁주는 장면이 필히 있었어야 했다.

또 배경이 되는 아파트가 자주 바뀌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주변에 산이 있는 아파트, 경비실이 있는 아파트, 계단식과 복도식 아파트 등 영화의 주요 배경인 아파트가 등장할 때마다 매번 다른 아파트를 보게 된다. 부자동네라면서 왜 복도식 아파트를 썼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이 아파트를 밖에서 촬영할 땐 복도식이 아닌 계단식 아파트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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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목격자'

결론적으로 '목격자'는 아쉬운 점은 군데군데 있지만, 아파트가 일상이 되어버린 관객 입장에서 몰입하며 볼 수 있는 영화다. 비슷한 상황이 내게 벌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살인마를 신고할 것인가를 내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상훈이 취하는 행동을 보며 답답해할 것이고, 그것이 결국 영화를 계속 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관객은 때로는 주인공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느낄 때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방관자 효과' 혹은 '제노비스 신드롬'은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희석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한 가지 놓쳐서는 안될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제노비스 살인 사건에서도 그렇고, 라텐과 달리의 실험에서도 그렇고, 결국 누군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줬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머뭇거리며 눈치를 봤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도와줬다. 아무도 나서지 않은 0%의 사례는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영화
▲ 영화 '목격자'

영화는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을 과장해 마지막 장면에서도 한겨울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 아파트 창문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는 지나친 비관주의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같은 지옥에서도 서로를 도왔다. 누군가는 집값 걱정을 하며 혀를 차겠지만, 누군가는 밖으로 나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다. 왜 모두가 다 나와서 돕지 않느냐고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도와주기 위해 나올 한두 명을 굳이 보여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거기 희망이 있고, 우리는 그 희망의 끈을 놓치 않고 살아가는 존재들 아닌가.

뉴욕타임스가 52년만에 굳이 오보를 정정한 것 역시 38명 중 단 한 명도 돕지 않았다는 것은 12명 중 두 명이 도왔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 되기 때문이다. 0명과 2명의 차이는 크다.

사람들은 집단으로 있을 때 책임감이 약해져 나서지 않고 뒤로 숨으려 하지만 집단이 아닌 개별적인 인간들은 여전히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다. 마침 아파트는 집단으로 숨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문제는 인간이 아닌 아파트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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