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 모두가 맞다고 할때 아니라고 한 두 기자

  • 양유창
  • 입력 : 2018.08.31 17: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영화
▲ 영화 '충격과 공포'


"다들 맞는다는데 왜 우리만 아니라고 하죠? 선배, 우리 잘하고 있는 것 정말 맞아요?"

기자 워렌 스트로벨(제임스 마스든)이 선배 기자 조나단 랜데이(우디 해럴슨)에게 묻는다. 조나단은 말 없이 후배를 다독인다. 그 역시 확신은 없다. 하지만 내부 진술들이 있다. 힘들게 취재한 내부 고발자들은 부시 행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언론도 의심하지 않고 있지만 남들이 쓰지 않는다고 해서 쓰지 않는다면 그건 언론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선 증거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

랜데이와 스트로벨은 협박편지를 받고 편집장 존 월콧(로브 라이너)을 찾아간다. 월콧은 별것 아니라는 듯 협박편지의 오탈자를 교정해준 뒤 두 사람을 돌려보낸다. 편집장과 기자가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좀 더 많았어야 했다. 아무도 포장된 거짓을 의심하지 않을 때 홀로 진실을 파헤치는 두 기자는 분명 어느 순간 흔들렸을 테고, 협박을 받았을 테고,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적인 순간들의 텐션을 끌어올려 관객과 공감할 지점으로 활용했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는 다소 무던하게 상황을 재현하기만 한다. 9월 6일 개봉을 앞둔 영화 '충격과 공포' 이야기다.

영화
▲ 영화 '충격과 공포'

2003년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폭스뉴스, CNN은 말할 것도 없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까지 모두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했다. 심지어 뉴욕타임스는 정부의 발표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 단독보도하기까지 했다. 이는 딕 체니 당시 부통령 측에서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슬쩍 흘려준 것이다. 진보적 정론지로 베트남전 당시 진실 규명에 앞장섰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그렇게 부시 정권에서 망가졌고, 오직 두 기자가 속한 연합신문사 '나이트리더(Knight Ridder)'만이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보도를 해 나갔다. 그리고 훗날 이 보도만이 진실을 이야기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2001년 9·11테러부터 2003년 이라크전쟁 발발까지 두 기자가 어떻게 부시 행정부 고위 관료들의 발언이 거짓임을 밝혀냈는지를 긴박감 있게 묘사한다. 실제 뉴스 화면을 자주 삽입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로브 라이너 감독은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용두사미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우를 범했다. 영화는 이라크전쟁 참전을 아버지 세대의 베트남전쟁 참전과 비교하며 다리를 잃은 젊은 병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 젊은 병사의 이야기는 두 기자가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과 잘 섞이지 못한다.

랜데이의 아내 블래트카(밀라 요보비치)는 남편의 취재가 절정에 달한 순간 국가기관의 도청을 의심하면서 긴장감을 높이지만 이 대사는 맥거핀 외에 특별한 전개로 이어지지 못한다.

영화
▲ 영화 '충격과 공포'

결정적으로 영화는 두 기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쟁이 발발하는 장면으로 끝맺지만 이는 극의 흐름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아쉬운 마무리다.

1984년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로 데뷔해 '스탠 바이 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어퓨 굿 맨' 등 1980~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로브 라이너 감독은 일흔이 넘은 지금도 매년 한 편씩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아쉽게도 영화 속에서 예전의 총명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슷한 시기의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사건과 캐릭터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며 목표 지점을 향해 전진했던 것을 떠올리면, '충격과 공포'에는 사건은 있지만 캐릭터가 부족하다. 적어도 두 기자가 그 당시 느꼈을 심리 묘사에는 조금 더 시간을 할애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존 월콧 역으로 직접 출연한 로브 라이너 감독
▲ 존 월콧 역으로 직접 출연한 로브 라이너 감독

하지만 아쉬운 영화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충격과 공포'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영화 속 두 기자는 당시에는 외롭게 고군분투하며 타 기자들에게 이단아 취급을 받았지만 부시 정부 말기에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유일하게 진실을 알린 언론인으로 재평가받았다.

그들이 속한 나이트리더는 2006년 맥클래치그룹에 피인수되며 사라졌지만 두 기자와 편집장은 참언론인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랜데이와 월콧은 나이트리더의 후신인 맥클래치에서 계속 일하고 있고, 스트로벨은 로이터로 옮겼다.

2017년 9월 30일 스위스 취리히 영화제에서 영화
▲ 2017년 9월 30일 스위스 취리히 영화제에서 영화 '충격과 공포' 상영에 앞서 기자회견 중인 조너선 랜데이, 존 월콧, 워렌 스트로벨(왼쪽부터)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8년 허핑턴포스트는 존 월콧 편집장과 랜데이 기자를 인터뷰해 장문의 기사를 실었는데 이 인터뷰에서 랜데이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부시 행정부가 어떤 발표를 할 때마다 이렇게 질문했어요. '사실이야?' 이건 모든 저널리스트가 해야 할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죠. 2002년 9월 3일, 뉴욕타임스의 주디 밀러와 마이클 고든 기자는 '알루미늄 튜브'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날 부통령 체니와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토크쇼에 출연해 마치 뉴욕타임스가 대단한 국가 기밀을 취득해 보도한 것처럼 말했죠. 바로 다음주에 부시 대통령은 이 알루미늄 튜브가 이라크의 핵무기 프로그램 개발의 증거이며 이라크 정부가 유엔 사찰단에 이를 숨겨왔다고 주장했어요. 이건 이라크에 대한 정보를 과장하는 부시 행정부의 전형적인 방식이에요. 우리는 9·11 이후부터 계속해서 추적했죠. 워렌은 이라크가 월드트레이드센터 공격과 관련 없다는 분석가를 인용한 첫 번째 기사를 썼고요. 이후 우리는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사담 후세인을 내쫓는 결정을 했는지를 취재했어요. 우리는 이렇게 질문했죠. '아프가니스탄의 알카에다가 문제인데 왜 계속 이라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지?' 당시 거의 모든 사람이 사담 후세인이 비밀 무기를 갖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파헤치기 전까지 후세인과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당연하게 여겼어요. 제 생각엔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어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저널리즘의 시작입니다."

양유창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