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심포니·재닌 얀선과 환상의 케미 선보인 사이먼 래틀

  • 김연주
  • 입력 : 2018.10.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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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00] 자닌 얀선이 첫 활을 긋자 순간 안개 자욱한 북유럽의 신비로운 침엽수림이 펼쳐졌다.

"매우 춥고 맑은 북구의 하늘과 같다"는 시벨리우스 표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신비로운 음색이었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는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와 강렬한 마력으로 언제나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특히 얀선의 드라마틱한 표현을 만나자 이 곡은 한 편의 판타지 영화처럼 펼쳐졌다. 특히 1, 3악장 하모닉스를 절묘하게 사용하는 부분에서는 감정이 듬뿍 느껴졌고, 끊어지지 않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특유의 운궁법은 관객의 감정을 끊임없이 고조시켰다.

특히 이날 얀선이 내는 소리가 무척이나 또렷하게 들렸다. 바이올리니스트 치고 음색이 큰 편이 아님에도 말이다. 이는 사이먼 래틀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의 배려심 넘치는 반주 덕분이었다. LSO는 래틀의 지휘에 따라 독주자가 돋보여야 할 때는 소리를 한껏 줄이면서도 극적인 장면에서는 아주 화려하게 소리를 뽐냈다. 특히 현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는 저음부는 자욱한 안개가 끼듯 환상적이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는 "지난 내한 때 얀선이 컨디션 난조라 좋은 연주를 펼치지 못했는데 이번에 명예회복을 제대로 했다"며 "네덜란드 연주자 특유의 활을 현에 밀착시켜 농도 짙은 음색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영어로 유머를 나눌 수 있는 기쁨."

LSO에 부임한 뒤 래틀은 이런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무대에서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나 래틀은 늘 유쾌하고 유머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지휘 때 방방 뛰는 백발과 만면에 띠고 있는 웃음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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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O와 만난 이날 래틀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때로는 악단과 귓속말을 하려는 듯 몸을 가까이 숙이기도 하고 때로는 '더더더'를 외치듯 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놀라운 건 이 지휘자의 열정적인 몸짓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악단이었다. LSO가 워낙 지휘자에 잘 순응하는 악단으로도 유명하지만, 정말 래틀의 미세한 지휘마저도 완벽하게 캐치해 소화해냈다.

그런 그들이 만들어낸 선율은 지극히 '영국적'이었다. 드보르자크와 시벨리우스라는 체코와 핀란드 지역 색채를 강하게 띠는 곡들을 연주했음에도 말이다. 특히 2부 첫 곡이었던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춤곡 4번은 순간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을 듣는 착각이 일 정도로 당당했다. 1부 때 래틀은 슬라브 무곡 3곡을 연달아 연주했는데 중간중간 너무 감동받은 관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친 듯한 박수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시벨리우스가 교향곡에 담아낸 대자연의 신비를 각양각색의 악기가 제 각기 소리로 표현해냈다. 처음을 여는 호른부터, 고음의 고음을 뚫는 목관, 불현듯 나오는 금관까지. 한 마디로 드라마틱했다. 더 생기를 띤 채 즐겁고 화사한 해석을 보여줬다.

래틀은 베를린필보다 LSO와 케미스트리가 더 좋아보였다. 서로를 잘 알고 배려하는 모습이 객석의 좋은 소리로 들려왔다. 특히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래틀은 관악기 주자부터 하나하나 일으켜 감사를 표했다. 최근 기자가 만난 바실리 페트렌코부터 파보 예르비까지 모두 '친절한 리더십'을 강조했는데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누가 누구의 우위에 있거나, 주도권을 잡으려 할 때가 아니라 서로가 최고의 음악을 만들기 위한 파트너로서 협력할 때 나온다는 걸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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