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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의 생각]우성 김종영과 거짓된 진실

  • 손현덕
  • 입력 : 2016.12.0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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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의 생각-9] 문화예술 분야의 문외한인 나에게 우성 김종영 미술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종영 미술관은 북한산 자락 밑에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평창동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에 녹아내리는 평화로운 주말 오후였다.

 매일경제신문이 김종영 선생을 기리는 미술상을 공동 주최하기로 한 건 작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있었는데 김종영이란 미술가가 있는지를 처음 알게 됐다. 허연 문화전문기자가 "기하학적 형태의 조각을 빚으며 우리나라에 추상조각을 도입한 선구자"라고 설명을 했지만 그의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분야였다. 허 기자의 말에 "그래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고 후학들의 존경을 받는다면 그의 이름을 건 미술상을 우리가 같이 해볼 수 있겠다"고 답을 줬다.

 그러던 차에 올해 김종영미술상 수상자로 서양화가인 김태호 서울여대 교수가 선정됐고 그 시상식이 12월 2일 열렸다. 나는 시상식에 앞서 좀 일찍 미술관에 도착해 김종영 선생이 어떤 분인지를 몸소 느끼고 싶었다.

 고백하건대 난 그제서야 예술가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림을 그리든, 서예를 하든, 조각을 빚든 어떤 종류의 예술작품을 만들든지 기교와 재주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작품을 나오게 한 그 예술가의 정신세계라는 것을.

 김종영은 '불각(不刻)의 미'를 추구했다. 그는 서예작품에 불각도인(不刻道人)이라 쓰고 낙관을 찍었다. 말 그대로 깎지 않는다는 뜻일 텐데 조각하는 사람이 조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뭔가 그의 심오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유심히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아닌 게 아니라 대부분을 그대로 두고 억지로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은 덜 만든 것 같은데 뭔가 꽉 찬 충만감을 주는 그런 작품.

 김태호 교수의 표현이 맛깔나다.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김종영 선생의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됐다. 돌이 꽃이 되고, 또 돌에서 바람 소리가 날 수도 있구나, 싫증 나지 않는 사람을 만들 수도 있구나 알게 됐다"고.

 미술관에 본관과 별관이 있는데 별관의 이름은 사미루(四美樓)이고, 본관의 이름은 불각재(不刻齋)다. 불각재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물과 공기, 화강암과 소나무들의 조화이기도 하며, 이들이 함께 빚어내는 공간의 율동이기도 합니다. 건축물은 매 순간 달라지는 자연의 빛, 각도와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공간, 이들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전시장소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선 관람객과 작품 간의 '살아 숨쉬는 교류'가 주체가 됩니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한 작가의 의식 세계를 엿보게 되며 이러한 조각가이자 교육자였던 김종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삶에의 외경'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김종영 作 "자각상B, 12x15x25㎝, 나무, 1971."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 김종영 作 "자각상B, 12x15x25㎝, 나무, 1971."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이날 김종영의 조각 작품에 대한 탐구와 그가 생전에 남긴 예술의 개념, 그리고 작업하는 태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 전시회 이름이 '진실한 거짓'. 불각의 조각을 하는 김종영 선생다운 전시회 이름 같았다. 상호 모순에서 느껴지는 심오한 철학적 고뇌.

 그가 왜 예술작품을 '진실된 거짓'이라 했을까? 생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관중은 자기 자신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기만하면 관중을 속이는 셈이 되고,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면 그만큼 관중에게 성실하게 된다. 결국 작품은 자신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고. 그는 사회적으로 출세하기 위해 조각을 하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김종영의 예술작업은 수신(修身)의 도구였다. 그래서 찬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찬란함이 있다.

 진실과 거짓이 춤을 추는 시대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이 안 되는 시대다. 본인은 진실이라 주장하지만 거짓으로 무장된 게 부지기수이고, 정작 본인은 진실을 말하는데 남들은 거짓이라고 우겨대는 억울함도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안다. 진정한 진실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임을. 우성 김종영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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