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에서 곰고기까지 전투식량의 혁명 '통조림'

  • 최기성
  • 입력 : 2017.04.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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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글
▲ /사진=구글
"로마는 병참으로 이긴다." 시오노 나나미가 지은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장교인 리수화가 촌장에게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을 묻자 촌장이 "뭐를 마이 먹여야지. 뭐"라고 답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는 죽여야 살 수 있는 전쟁터에서 더 간절해집니다. 잘 먹고 잘 입어야 힘을 내 싸울 수 있기에 병참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이 소련 공격에 실패하고 더 나아가 반격을 허용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병참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배급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병참 기술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상 속으로 파고듭니다. 문화와 문화가 충돌한 전쟁에서는 음식문화의 다양성이 극대화되기도 하죠. 적의 음식이 나의 음식과 결합돼 음식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전쟁의 아이러니입니다.

'식탐전쟁'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과 인류의 식욕이 만나 기존에 없었던 음식문화를 탄생시켰던 과정과 그 속에서 꽃피운 음식들을 다룹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데 기여하고 배고픔도 없애줬지만 웰빙 바람에 정크푸드로 전락한 전쟁 음식의 새옹지마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전쟁 무기에 기반을 둔 전자레인지, 프라이팬 등 조리 제품과 기술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식탐전쟁-1] 참치에서 곰고기까지…전투식량의 혁명 '통조림'

인류의 역사는 먹거리의 역사입니다. 먹어야 살 수 있기에 인류는 먹을 수 없는 시기에 먹을 수 있는 저장법을 발전시켜 왔죠. 찌거나 말리거나 발효해 저장 성능을 향상시킨 것도 일차적 목표는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저장 성능은 전쟁터에서 더 간절해집니다.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장소나 계절에도 전쟁을 해야 한다면 저장 성능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음식 저장에 혁명을 일으킨 통조림도 전쟁 때문에 발명됐습니다. 통조림의 기원은 1804년 프랑스인 니콜라 아페르가 발명한 '병조림'입니다.

"군인은 위장으로 전진한다"는 말로 유명한 나폴레옹은 전쟁으로 식량 사정이 악화되자 방부제 없이도 식품을 장기 보존할 수 있는 용기를 현상 공모했습니다. 상금은 1만2000프랑으로 당시 왕의 몸값에 해당하는 거액이었습니다.

상금은 파리 동쪽 작은 마을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니콜라 아페르가 가져갔습니다. 그는 병 속에 식량을 넣은 '병조림'을 내놨습니다. 병조림은 캔버스 천으로 삶은 유리병을 밀봉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병조림은 전쟁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때부터 식품가공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병조림은 보존 성능이 좋아 병참 역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보관성이 문제였죠. 유리로 만들어져 파손 위험이 높은 데다 내용물에 비해 무거워 많은 양을 단숨에 공급할 수는 없었습니다.

병조림은 1810년 영국의 피터 듀런드를 통해 가볍고 튼튼한 보존 용기로 발전하게 됩니다. 듀런드는 뚜껑이 잘 열리지 않는 주석 깡통을 선보입니다.

현대 통조림의 시초인 듀런드의 통조림은 개발된 지 7년 후 미국에도 전해졌지만 미국에서 통조림이 대중화된 것은 44년이 지난 남북전쟁 때였습니다. 44년간 통조림이 보급되지 않았던 이유는 '깡통따개'가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사람들이 '용이한 보관'에서 '편리한 사용법'으로 관심을 돌린 것은 1850년대부터입니다. 통조림 따기에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미국인 에즈라 워너는 1858년 획기적인 '깡통따개'로 특허를 냈죠.

이 따개는 날카로운 칼날과 보호 장치로 구성됐습니다. 하지만 칼날을 뚜껑에 박은 다음 톱질하듯 테두리를 따라 움직여야 해 위험이 컸죠. 통조림 주위를 굴러가는 바퀴가 달린 통조림 따개는 1870년 미국의 윌리엄 W 라이먼이 발명했습니다. 그때까지 군대에서는 소총이나 칼로 통조림에 구멍을 뚫는 위험한 방법이 사용됐습니다. 통조림을 따다 다치는 군인이 많아지자 통조림 뚜껑에 '끌과 망치로 윗부분을 둥글게 자르시오'라는 주의 사항을 넣었을 정도입니다.

통조림은 제1·2차 세계대전에서 군인들에게 싸울 힘을 제공하는 1등 공신이었습니다. 맛은 뛰어나지 않았고 지방이 많은, 질 낮은 고기를 사용했지만 에너지 공급원으로는 그만이었습니다.

통조림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나라에서는 전쟁의 고통과 배고픔을 잊게 해줬기에 '애국 식품'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통조림이 인기를 끌면서 맛도 개선됐고 사용하는 재료도 다양해졌습니다. 일본에서는 통조림만 전문 취급하는 식당도 있습니다. TV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에서는 방송인 허지웅 씨가 일본 통조림 전문식당에서 곰고기로 만든 통조림을 먹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진=사조해표
▲ /사진=사조해표
통조림 따는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미국인 에멀 프레이즈는 1959년 뚜껑에 달린 고리를 살짝 잡아당겨 통조림을 여는 '원터치캔'을 발명했습니다.

현재는 최신 통조림 제조 기술을 적용해 소비자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인 제품들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기존의 강철 뚜껑으로 제작된 원터치캔 대신 가볍게 벗겨내는 '이지필(안심따개)' 방식의 알루미늄 호일을 사용했습니다.

안심따개는 캔을 열거나 폐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해 사고의 위험을 크게 줄여줬고 유럽과 일본을 거쳐 국내에서도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통조림은 국내에서 식용유와 함께 명절 선물로도 인기가 높죠. 가격 부담이 적고 유통기간도 길고 반찬 걱정 덜어주는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죠.

통조림은 한우, 굴비, 과일 등 고가 선물세트에 밀려 판매가 주춤했지만 경기가 어려워지자 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청탁금지법도 통조림 인기에 한몫했습니다.

신세계와 이마트가 지난해 추석 선물세트 사전예약 매출을 분석한 결과, 참치와 햄 등으로 구성된 통조림 선물세트는 45만개 정도가 팔려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조미료 선물세트, 생활용품 세트, 커피세트 순이었습니다.

[최기성 디지털뉴스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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