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무덤에서 사랑을 살려낸 '옆방에서…'

  • 김연주
  • 입력 : 2017.05.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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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70] "모든 비극은 죽음으로 끝나고, 모든 희극은 결혼으로 끝난다."

낭만주의 대표 시인 바이런의 말이다. 동화는 공주와 왕자의 연애를 아주 다양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그려내지만 이후 결혼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육아와 가사로 점철된 결혼생활은 결코 낭만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기 때문. 이번 서울연극제의 공식 선정작 '옆방에서 혹은 바이브레이터 플레이'의 주인공 기빙스 부인은 '결혼은 낭만적 사랑의 무덤'이란 격언에 반기를 든다.

1880년대 뉴욕 근교. 기빙스 박사는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해 남녀의 우울증을 정신과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다. 기빙스 부인은 옆방에서 치료하는 소리를 엿들으면서 남편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며 불만을 토로하다 지쳐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코르셋과 페티코트 등을 착용해야 하는 수 겹의 의복 양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당시는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로, 종교와 도덕 등을 이유로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솔직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남편에게 '관계'를 요구하거나 사랑을 고백하는 건 정숙한 여성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실제로 당대 회화를 살펴보면 여성은 인자한 미소를 띤 채 품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당대 이상적인 여성상은 우리나라 유교시대의 '현모양처'와 유사했다. 또 여성의 우울과 불만을 단순히 '성적 히스테리'로 치부하던 무지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의사들은 바이브레이터가 여성의 우울에 굉장히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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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당대 여성들은 불행했다. 기빙스 부인은 바이브레이터는 물론 불륜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온갖 시도 끝에 여성의 행복에 필요한 건 '성적 쾌락'도 '불륜'도 아닌 바로 '사랑'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남편에게 요구해 쟁취해낸다.

작품은 우리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이유는 자신의 쾌락과 행복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무지와 게으름 때문임을 '바이브레이터'라는 발칙한 상징물로 보여준다. 우리는 결혼을 하고 나면 상대가 바로 곁에, 언제나 함께 있는 사람이라는 연유로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를 쉽게 그만둔다. 그리고는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며 불행하다고 불평한다. 작품은 바이브레이터를 통해 여성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쾌락을 탐구하고 끝없이 추구해야 함을 말한다. 뭐든지 알아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앎'을 기반으로 부부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와 노력이 동반된다면 결혼도 충분히 '로맨틱'할 수 있음을 말한다.

'옆방에서 혹은 바이브레이터 플레이'는 미국의 여성 극작가 사라 룰의 작품으로, 토니상과 퓰리처상 최고의 희곡상 부문에 오른 수작이다. 사라 룰의 특유의 감각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소재를 정겹게 풀어냈다. 객석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때로는 배우들의 대사가 묻힐 정도다.

참고로 바이브레이터 치료라는 소재는 우습지만 역사적 고증에 기반을 둔 이야기다. 실제 바이브레이터는 1880년 영국 정신과 의사에 의해 쾌락의 도구가 아닌 히스테리 치료를 목적으로 한 공식 의료용 치료기기로 발명됐다. '히스테리'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자궁의 병'을 뜻하는데 당시 의사들은 이 히스테리를 치료하기 위해 여성의 외음부를 마사지하면서, 패록시즘(오르가즘을 뜻하는 당시 의학용어)을 통해 뭉친 자궁을 풀어줘야 한다고 믿었다. 초기에는 의사들이 손에 향유를 바르고 마사지를 시도했다. 그러다 1876년 전기가 보급되면서 1883년 최초의 전기 바이브레이터가 발명되고, 이후 손이 아닌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해 여성의 히스테리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에게는 효험이 있었고 일부에게는 없었다. 5월 7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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