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스페셜리포트

세상은 당신이 지난 여름에 한 일을 기억한다

  • 노원명
  • 입력 : 2017.06.15 06:02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노원명의 뉴스메이커-11] 조국 민정수석의 딜레마

아니나 다를까 인사가 문제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관급 인사만 17명을 발표했는데 이 중 이른바 '5대 기준'(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 누구 말마따나 개발시대를 거쳐오며 부모님 봉양하고 형제자매 건사하는 '인류학적' 책무를 완수하려다 보니 손에 때 묻히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던 걸까. 유인태 전 의원은 얼마 전 어느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서민들도 아들딸 결혼시키며 전세금 대주고 한다. 그럴 때 증여세 냈다는 사람을 본 적 있나"고 반문했다. 사실 그런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인사청문회에서 자녀 집 사주고 하는 수준의 증여세 누락은 언급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위장전입과 논문 표절은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병역 면탈, 투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문제에서 "예전엔 다들 그렇게 살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말해선 안 된다.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은 절대 다수의 절대 다수는 그렇게 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사람들이다. 기회가 있었다면 그들이 어떻게 했을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장관 후보에 오른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능력자들이다. 그 경쟁은 공부면 공부, 직장이면 직장, 연줄이면 연줄, 심지어 금수저·흙수저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을 포괄하는 '인류학적' 경쟁이다. 경쟁의 승자에게는 당연히 많은 기회가 돌아간다. 이들이 흠결이 많은 이유는 단 하나,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보수적으로 말해 그렇게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놈의 양심이 걸려 안 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주변에도 꽤 있다. 그래서 "예전엔 다들 그렇게 살았다"는 일반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인생이 성실했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도매금으로 넘겨선 안 된다. 그러나 인생이 성실했던 사람들은 장관 후보에 오르기도 전에 경쟁 대오에서 탈락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기껏 스무 명 남짓한 장관 자리를 흠없는 사람으로 채우기가 이렇게 힘들 턱이 있는가.

어쨌든 인재가 그렇게 없다면 기준을 낮추는 수밖에. 여권을 중심으로 인사청문회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봇물처럼 일고 있다. 지금 이 국면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한 사람이 한 명 있다. 공직자 인사 검증을 총괄하는 조국 민정수석이다. 아마도 그는 하루하루가 자괴와 낭패감의 연속일 것이다. 왜냐하면 조 수석이야말로 공직자 인선 기준에 있어 누구보다 '순결한' 이상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문제로 곤욕을 치르던 2010년 8월 조 수석은 한겨레신문에 '위장과 스폰서의 달인들'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인지상정? 이는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여력이나 인맥이 없는 시민의 마음을 후벼파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위장전입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마련하자고 주장한 데 대해선 "자기 편 옹호하는 데도 지켜야 할 금칙은 있는 법"이라고 잘랐다. 그가 민정수석이 되어 스크린한 많은 후보들이 위장전입 문제를 안고 있다는 현실과 원래 갖고 있었던 이상의 충돌을 조 수석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조 수석은 음주운전에 대해서도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이철성 경찰청장을 임명한 2016년 8월 조 수석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음주운전 단속의 주무부처 총책임자가 과거 이런 범죄를 범하고 은폐까지 하였는데도 임명했다"며 "미국 같으면 애초 청문회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썼다. 그렇다면 지금 음주운전 이력 때문에 논란을 빚고 있는 조대엽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단속 주무부처가 아니라서 괜찮다고 본 것일까. 아니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음주운전은 봐줘도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다면 앞으로 현실화될 인사 기준에서 음주운전 부분은 "주무부처 책임자가 아니라면 음주운전은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는다. 단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에 그렇다"로 명시되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조 수석은 학자 출신이다. 민정수석 역할이 끝나면 다시 학계로 돌아갈 것이다. 학자는 말과 글의 신의로 살아가는 직업. 나랏일을 하는 지금이야 '묵언계(默言戒)'로 임하더라도 언젠가는 학자적 양심에서 참회록을 쓰든가, 아니면 "현실에 부닥쳐보니 내 생각이 틀렸더라"고 오류 선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홍상수의 영화 제목마냥 '우리가 하면 맞고 네가 하면 틀리다'는 식이어선 말의 신의가 죽는다. 정치인은 그렇게 해도 되지만 학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나저나 내가 조 수석이라면 '그때 왜 그런 글을 썼을까' 후회막급일 것 같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당신이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