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독일-한국 병치해 풍자한 '괴벨스 극장'

  • 김연주
  • 입력 : 2017.08.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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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84]
언제든 되살아올 망령 괴벨스
극단 파수꾼의 '괴벨스 극장'
나치독일과 대한민국을 병치해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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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국회의원, 당 선전부장을 지냈다. 타고난 언변과 탁월한 문장력으로 대중을 집단 최면 상태에 빠뜨린 희대의 정치 연출가였다. 왜소한 체구에 어려서 앓은 골수염으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된 괴벨스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학업에 몰두했다. 그는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독일문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하엘'이란 반자전적 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1925년 나치당에 입당한 그는 히틀러의 오른팔로 1933년 나치정권 선전장관 겸 문화원장에 오른다. 그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선전 수단으로 이용해 독일 국민을 전쟁에 동원했다. 국가에 반하는 예술을 '퇴폐'라고 낙인찍어 추방했다. 1945년 5월 1일 베를린 총리 관저 벙커 안에서 아내, 6명의 아이와 함께 동반 자살했다.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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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괴벨스 극장'은 세상을 무대 삼아 선전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던 괴벨스의 생애를 추적한다. '선전'과 '나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작품은 굉장히 경쾌하다. 마당놀이에 뿌리내리고 있는 오세혁이 쓴 각본은 풍자와 신명이 돋보인다. 괴벨스의 비합리성과 맹목성을 과장해서 표현해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한다. 이 웃음은 독재와 검열에 대한 조소이며 동시에 그런 단순한 논리에 손쉽게 놀아나는 우리의 민낯에 대한 씁쓸한 비소다.

괴물로 낙인찍힌 괴벨스가 히틀러 부하가 되어 실행한 각종 선동의 궤적을 작품의 큰 줄기로 삼되, 부분 부분 우리의 상황을 덧씌웠다. 정권의 미디어 장악, 정권에 부합하는 예술 장려, 적대적 분노와 분열을 기반으로 한 정책 등은 최근 일련의 사태 속에서 드러난 예술 지원에 대한 선택적 강요, 여론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댓글 조작 등 우리 현실로 곧바로 연결된다. 나치독일과 대한민국을 병치해 조롱한다. 브레히트, 헬렌 켈러 등 나치에 저항하는 예술인들을 호명하는 사이사이 박근형, 윤한솔 등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출가들의 이름이 끼어 든다. 최근 수년 동안 회자된 수저 계급론은 '금포크·은포크·흙포크'로 변주한다.

75분의 짧은 극이지만 선전의 핵심을 짚어낸다. 첫째, 선전에 무엇이 필요한가. 괴벨스는 분노, 낙인 그리고 게으름 세 가지를 말한다. 그는 무기력과 불만에 빠져 있는 대중을 자극해 분노를 유발한다. 분노는 선동의 가장 좋은 휘발유다. 그리고 그 분노를 풀 대상을 정해 낙인찍는다. 괴벨스와 나치에게 그 대상은 유태인이었다. 그리고 나태하고 우매한 군중이 핵심이다. 괴벨스는 예술을 검열하기 시작한다. 오로지 국가를 찬양하는 예술가들만 활동할 수 있도록 한다. 대중을 우매화하는 전략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3S(영화·스포츠·섹스)' 정책도 같은 맥락이며 박근혜정부의 '문화인 블랙리스트'도 마찬가지다.

둘째, 국가 종교 학교는 삼위일체다. 괴벨스는 선전을 자신의 삶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 골수염을 앓아 절름발이가 됐다. 교회는 그의 장애를 신의 형벌이라며 죄인으로 낙인찍고 평생 회개하고 기도하라고 강요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학교를 다녔던 괴벨스는 학교로부터 국가주의를 주입받는다. '국가를 가족같이 사랑하라' '국가가 망하면 개인도 망한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들은 혹독한 매질을 당한다.

셋째, 언제든 너무나 쉽게 괴벨스의 망령은 돌아올 수 있다. 마지막 자살을 앞두고 괴벨스는 외친다. "계속 방관자로 남아 있으면, 언젠간 다시 살아나 너희들의 게으름에 철퇴를 내려칠 것이다." 이 말은 허언이 아니다. 우리는 불과 몇 달 전 괴벨스의 망령을 보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위험성은 도사리고 있다.

작품은 박근혜 정권의 검열과 블랙리스트에 맞서 21개 연극단체가 참여해 5개월간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개최한 '권리장전2016-검열각하'에 출품된 작품 중 하나였다. 작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베서니, 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괴벨스를 매개로 검열과 정치적 통제가 만연한 우리 시대를 우회적으로 사유하게 해줬다. 또한 작품 곳곳에 포진한 촌철살인의 풍자와 희극성, 그리고 정치적 현실에 위축되지 않고 대면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호방하고 집요한 에너지가 압도적"이라고 평했다. 올해 다시 30스튜디오에서 8월 20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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