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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기업에 투자하라" 日가마쿠라투신의 실험

  • 신헌철
  • 입력 : 2017.09.1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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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투자 비밀수첩-150]
<가마쿠라 투신이 요약한 좋은 회사의 특징>

고(雇) = 인재의 다양성

감(感) = 감동 서비스

장(場) = 현장주의

창(創) = 시장창조

연(緣) = 지역을 소중히

기(技) = 기술력

관(貫) = 온리원

지(志) = 경영이념

염(炎) = 모티베이션

직(直) = 제조판매 일관체제

애(愛) = 직원을 소중히

혁(革) = 계속 변화하는 힘

순(循) = 순환형 사회 창조

*자료 = '착한 기업에 투자하라'(아라이 가즈히로 저, P128~129)

"왜 주식을 매일 사고팔죠?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서요."

일본의 유명 펀드매니저 아라이 가즈히로는 한 직원이 던진 질문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스미토모신탁은행, 바클레이스 등에서 수조 엔을 주물렀던 그가 '착한기업 투자'로 유명한 일본 가마쿠라 투자신탁을 2008년 창업한 배경이다.

가마쿠라 투신은 2013년 수백 개의 일본 내 투자신탁 중 국내 주식 부문 최우수펀드상을 탔다. 이 회사의 대표 상품인 '유이2101'은 상장기업은 물론 비상장 벤처기업까지 착한 기업을 직접 발굴해 투자한다.

이 펀드는 절대 고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연간 5% 수익률(보수 1%를 빼면 4%)을 추구하되 '위험에 비해 수익이 높다'는 점을 내세운다. 가장 특이한 점은 이 펀드는 회사당 투자 비중을 1.7%로 정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종목에 같은 수준의 금액을 투자하는 펀드는 전 세계에 유일무이할 것 같다.

가마쿠라 투신은 또 투자기업 전체 리스트를 언제나 완전 공개한다. 착한 기업을 세상에 더 많이 알리려는 목적이다.

이들이 찾아낸 기업 중에는 풍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로만 수건 공장을 돌리는 '이케우치 오가닉'이 있다. 아라이 씨가 투자에 앞서 이 회사 사장을 만나보니 페트병 생수를 1년에 5병(비행기 탈 때)만 마시고 도요타 프리우스 초기모델을 여전히 타고 다니고 있었다. 최고경영자의 삶 자체가 친환경이니 믿고 투자할 만하다라는 에피소드다. 가마쿠라 투신은 이 밖에 지적장애인 고용률이 16%에 이르는 식품 용기회사 '에후피코', 지역 공헌을 기업 목표로 삼는 '이나이 식품공업' 등을 발굴해 투자했다. 이 펀드의 투자처는 수익의 일부를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위해 사용하는 회사가 아니라 사업 자체가 사회를 위한 회사다.

가마쿠라 투신은 한 발 더 나아갔다.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와 투자처 간 시너지 효과까지 꾀하고 있다. 펀드에 기금을 투자해온 아동재단이 보육원을 지을 때 펀드의 투자처인 목재회사로부터 재료를 공급받아 매출을 늘려주는 식이다. 아라이 씨는 저서 '착한 기업에 투자하라'에서 자신의 운용 철학에 관해 이렇게 요약했다. "의지가 있는 돈은 사회를 변화시킨다. 우리의 목적은 돈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늘리는 것이다."

'착한 펀드'가 '착한 돈'과 '착한 기업'의 연결고리가 돼 준 셈이니 1석3조다. 만약 필자가 일본인이었다면, 일본 사회에 기여하는 이 펀드에 기꺼이 투자했을 것이다.

최흥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11일 취임사에서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한 기업이 시장에서 인정받도록 공시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저출산 대응 노력, 환경 보호, 노사 관계 등과 관련한 공시 의무를 강화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압박하겠다는 얘기지만 아직은 '한국식 접근'이다.

국내에 착한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펀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배구조가 건전하고 사회적 책임도 잘하는 기업의 주가가 안정적이라는 것은 여러 관점에서 증명되고 있다.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공동으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를 대상으로 각종 지표를 분석해 8곳을 '거버넌스 어워드' 최우수 기업으로 정했다. 금융 부문에서는 신한금융지주, 자산 2조원 이상 제조업 부문에서는 LG이노텍이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자산 2조원 미만 제조업 부문에서는 롯데정밀화학, 서비스 부문에서는 SK텔레콤이 각각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으로 꼽혔다. 이들 기업은 코스피지수 대비 평균 주가 상승률이 높았고 최소한 업종 내에서 주가 흐름이 양호했다. 어쩌면 당연히 개선해야 할 지배구조 문제뿐 아니라 사회 발전에 대한 기여도가 측정돼 대중 앞에 공개되는 날이 머지않았다.

'나쁜 기업'은 아무리 수익성이 좋아도 투자를 받지 못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착한 기업을 찾아내는 선구안이 펀드업계에도 필요한 날이 올 것이다.

[신헌철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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