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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록커 김경호 록 부활시킨 무명가수

  • 홍장원
  • 입력 : 2017.09.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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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오브 락-25]
-처절했던 첫번째 앨범의 실패 딛고서
-1997년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대박
-지금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록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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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인 1995년 2월 4일. 그룹 넥스트(NEXT)의 첫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KOEX) 대서양관이었다. 4000명의 관객이 몰렸다. 코엑스 공연 사상 역대 최대 인파였다. 당시 티켓 가격이 5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넥스트는 록을 좀 듣는다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최고 인기 밴드 중 하나였다. 넥스트를 통해 록음악을 접한 '록 키즈'도 적지않았다. 리더 신해철의 카리스마는 감성풍만한 학생에게 먹혀들 만한 한방이 있었고 지금 들어도 여전히 세련된 연주와 음악, 철학적인 가사는 시대를 훨씬 앞서간 것이었다.

당시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졸라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은 서점에서 넥스트 공연 티켓을 샀던 기억이 난다. 록음악에 관심이 없었고, 사실 시끄러운 음악을 싫어하셨던 아버지가 그 때 왜 선뜻 티켓을 사주셨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다만 기억나는 건 티켓을 받고 뛸 듯이 좋아했던 한 소년이 있었고 무뚝뚝한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졌던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는 정도다. 그리고 그 중년의 남성은 이제는 살아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뒤로 펼쳐졌던 서점의 단상들. 서점 안 따뜻했던 공기와 쌀쌀했던 바깥 날씨, 애써 졸라 얻은 티켓을 품안에 넣고 잤던 기억들이 파편처럼 떠오른다.

당시 공연은 대성황이었다. 스탠딩 공연이 펼쳐졌는데, 공연에 참가한 몇몇 소년은 다음날 학교에 가서 목을 제대로 돌리지 못할 정도였다. 웅장한 넥스트 음악에 맞춰 짧은 머리로 너무 목을 흔들어댔기 때문이었다. 근육에 마비가 온 것이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본론은 이제부터다. 당시 한국 록음악계에 별처럼 떠오른 넥스트 공연의 서막을 열기 위해 한 무명가수가 오프닝을 섰다. 곱슬머리에 창백한 얼굴, 불면 날아갈 것 같던 호리호리한 한 남자 가수는 비장한 전주가 흐른 뒤 몇 초 지나지 않아 참가자들 몸에 소름을 돋을 만한 미끈한 고음을 과시했다. 무명가수였던 그는 아마도 4000명의 관객을 앞에 놓고 노래하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려는 결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무대는 오프닝으로 끝나기에는 너무 아쉽고 짧았다. 그 가수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한 소년은 다음날 학교 앞 레코드 가게 몇 곳을 뒤져 잘 기억나지 않는 그 가수의 앨범을 결국 찾아낸다. 가사 몇 마디로 제목을 유추해 비슷한 음반 수십 개를 들어다 놨다 하는 정성을 들인 덕분이었다. 넥스트 공연에 들렀던 수많은 관객 중 상당수는 그 소년과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노래가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바로 한국 록보컬을 대표하는 가수 김경호다. 그리고 그가 당시 불렀던 노래는 그의 첫 앨범에 실린 '마지막 기도'와 '자유인'이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대박을 치기 전 앨범이다.

그의 첫 앨범은 상당히 비장미가 강한 노래들이 두루 실려 있었다. 첫 타이틀 곡인 '마지막 기도'가 대표적이다. 남성적이고 선 굵은 연주에 천상을 오르내리는 김경호 목소리가 실려 있다. 김경호 첫 앨범 당시 그의 창법은 지금과는 조금 다르다. 방송인 권혁수의 모창으로 널리 알려진 '야이야이야~~'스타일 마무리는 당시 찾아볼 수 없었다. 목소리가 훨씬 얇았고 직선적이었고 그리고 하늘 높을 줄 모르고 뻗어갔다. 김경호는 당시 '마지막 기도' '자유인' 등 곡에서 3옥타브 솔에서 라에 달하는 최고음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올릴 정도였다. 미끈하고 유려하게 얇은 목소리로 소리가 구름에 닫는 느낌으로 표현했다.

당시 김경호는 타고난 미성(심지어 변성기를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에 엄청난 연습량이 더해져,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음역과 실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노력과 재능이 아깝게도 그의 첫 앨범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폭삭 망하게 된다. 김경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그의 첫 앨범에 어떤 노래가 실렸는지에 대해서조차 알기 힘들다. 앨범이 워낙 주목받지 못해서 유명해진 곡이 없기 때문이었다. 절치부심한 김경호는 음악 스타일은 물론 외모에도 변신을 꾀하고 두번째 앨범 제작에 들어간다.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이 지금도 널리 회자되는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유례없는 대박을 쳤다. 1997년 작이다.

당시는 록 음악이 순위 차트에서 감히 경쟁을 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정통 록이라기 보다는 '록발라드'에 가깝긴 했지만 록의 외피를 입은 음악이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순위에서 고공행진을 벌이자 많은 록팬들이 김경호를 '록을 부활시킨 구세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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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는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하면서 머리를 길렀는데, 이게 사실상 신의 한수였다. 치렁치렁한 긴머리로 박자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아주 신선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머리가 짧았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던 김경호의 미모(?)가 머리를 기르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김경호는 데뷔 당시 다소 수줍어하던 말투와 행동(지금은 예능인이 다 됐다)과 달리 무대에서만큼은 목포 출신 상남자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명곡과 만나 김경호를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너무나도 노래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은 SBS, MBC 등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트로트의 암흑기를 구해준 구세주가 장윤정이었다면, 록의 비수기를 극복하고 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람은 당연 김경호였다. 대중성 측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가수들이 당시 최고 주가였던 DJ DOC, 임창정, HOT 같은 스타들이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정체조차 불분명한 머리 긴 가수가 노래 한 곡으로 샛별 같은 스타들을 제치고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오른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김경호의 두 번째 앨범은 90만장 가까이 팔리는 대박을 쳤다.

당시 인지도가 없던 김경호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그가 두 번째 앨범을 내놓은 직후 나간 '이소라의 프로포즈' 방송을 찾아보면 된다. 그는 타이틀곡이었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앞서 소개한 바 있었던 '스키드 로(SKID ROW)'의 '유스 곤 와일드(Youth Gone Wild)' 두 곡을 불렀다. 이소라가 "한국에도 이런 로커가 있는지 몰랐다. 너무 깜짝 놀랐다"며 소개 발언을 할 때 팔짱을 끼고 미심쩍은 눈길로 김경호를 보던 관객들은 김경호가 두 곡을 부르고 난 직후 우레와 같은 박수를 전하며 "앵콜"을 외치고 있다.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긴머리 로커에게 줄수 있는 최대 찬사였다.

실제로 이 방송이 나간 이후 김경호의 운명은 바뀌었다. 시중 레코드 가게에서 김경호 앨범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김경호는 당시 그때를 회상하며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게 바뀌었어요"라고 말한다. 1990년대 말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 중 하나는 분명 김경호의 노래였다. 술한잔 거하게 먹은 취객들이 꽥꽥거리는 목소리로 "달려가 그에게 나 이말 해줬으면"을 외쳐댔다. 김경호는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히트시킨 데 이어 같은 앨범에 실려 있던 '금지된 사랑'으로 인기 행진을 이어간다. 당시 대학가 밴드들은 경쟁적으로 김경호 노래를 카피해 무대에 올렸다.

밴드 보컬이 노래를 잘하냐 못하냐를 가늠하는 잣대는 '김경호 노래를 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 나기도 했다(물론 이는 정확한 기준은 될 수 없다. 김경호는 타고난 고음성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남성이 김경호 노래를 부르기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저음성대를 가진 사람도 가성구를 잘 다듬어서 훈련을 한다면 두성 발성을 통해 고음을 낼 수 있겠지만 많은 노력과 재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보컬트레이너 장효진의 발성을 들 수 있다. 장효진은 전형적인 바리톤 성대를 타고 태어났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을 통해 3옥타브 후반대 고음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정말 발성이 대단한 트레이너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온다).

이 당시 김경호 뮤직비디오도 다시 감상할 만하다. 김경호가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 열창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전까지 이런 콘셉트 뮤직비디오는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로커'로서의 이미지를 일관되게 밀고나가는 전략이 시장에서 통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앨범의 실패로 '단순히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하는 것만으로는 안되겠구나'라고 김경호와 제작사가 교훈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김경호는 이후로 상당 기간 승승장구하며 히트 랠리를 이어간다. 1997년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내놓은 지 꼭 20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인기가수다. 물론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상당 기간 슬럼프도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두 번째 앨범 이후의 김경호의 모습에 대해 다뤄본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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