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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결절 극복하고 부활 두번째 전성기 연 김경호

  • 홍장원
  • 입력 : 2017.10.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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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오브 락-26]
-2~5집 성공하며 국민로커 자리 올랐지만
-이후 성대결절로 긴 슬럼프 겪어
-재기 위해 목소리 바꿔가며
-제 2의 전성기 연 현역가수


김경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로커답게 많은 해외 보컬의 노래를 카피했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스키드 로우(SKID ROW)'의 서배스천 바흐(Sebastian Bach)와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보컬의 흔적이 그의 노래 속에 많이 묻어 있다. 스키드 로우와 퀸의 노래 다수를 무대에서 부르기도 했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김경호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그룹
▲ 그룹'스트라이퍼(Stryper)'의 보컬 마이클 스위트(Michael Sweet)/사진=스트라이퍼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김경호의 창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보컬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스트라이퍼(Stryper)'의 마이클 스위트(Michael Sweet)가 아닐까 싶다. 스위트의 노래를 들어보면 타고난 미성을 기반으로 스크래치를 넣어 두께를 더하고, 진폭이 깊은 바이브레이션을 활용해 곡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타고난 미성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피나는 연습을 통해 청자가 좀 더 감동할 수 있는 포인트를 추가한 게 보인다. 높은 노래를 가늘고 호리호리하게 표현하는 것은 타고난 얇은 성대를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높은 노래인데 높아 보이지 않게, 때로는 성대를 찍어 누르는 듯한 꽉 조인 발성으로 거칠고 탁하게 표현하면 듣는 입장에서 지루하지 않고 노래에 더 몰입할 수 있다. 이 같은 고민은 가수 박완규도 고백한 바 있는데, 박완규는 "젊은 시절 그의 콤플렉스가 여자처럼 얇은 목소리였다"고 회고했다(타고난 미성 덕분에 고음을 질러댈 수 있는 훌륭한 무기를 갖췄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김경호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한 것으로 예상되는데, 첫 번째 앨범과 두 번째 앨범 이후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상당히 다른 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특유의 '워우워우워'류의 발성이 나온 것도 두 번째 앨범부터다. 흉성을 당겨 쓰는 창법과 두성을 적절히 믹스해가며 음의 높이와 두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여기에 스위트 창법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선 굵은 바이브레이션과 스크래치를 곳곳에 삽입해 목소리를 매우 풍부하게 만들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성공한 이후 나온 세 번째 앨범도 그의 특유의 목소리 덕에 성공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부근 김경호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두 번째 앨범으로 대박을 쳐서 명실상부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고, 무대에 오르면 그를 지지하는 확고한 팬층도 생겨났다. 그는 이 같은 자신감으로 상당히 어려운 노래들을 세 번째 앨범에 녹여낸다. 세 번째 앨범 타이틀곡이었던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부터 만만치 않은 곡이다. 후렴부 '내가 곁에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마 우린 살아있잖아' 부분에서 가장 높은 음인 '잖~~~~'에서 목소리가 살짝 바뀌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이는 바이브레이션을 동반해 음을 당기는 식으로 올리는 상당히 고급진 테크닉이다. 이 노래 한 곡만 들어도 전성기 김경호의 다양한 테크닉이 곳곳에 심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앨범의 최고 난도는 누가 뭐라 해도 '샤우트(Shout)'라 할 것이다. 샤우트로 시작해서 샤우트로 끝나는, 제목만 들어도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는 정말 어려운 노래다(김경호는 이 노래를 이제는 원키로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성대를 다친 이후에 음역이 다소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 당시 김경호가 샤우트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저게 인간인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3옥타브를 훌쩍 넘는 고음 음표가 쉴 새 없이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데 이를 금속성의 꽉 찬 쇳소리로 짜릿하게 표현한다. 끊임없이 무대를 뛰어다니고 머리를 흔드는데 호흡이 달리는 인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기타와 드럼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성량을 자랑한다. 전성기의 김경호는 전 세계 어떤 록 보컬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짐이 없다. 세계 최정상급의 목소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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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는 네 번째 앨범에서도 성공 신화를 이어간다. 아직까지도 널리 불리는 '비정' '아름답게 사랑하는 날까지'가 이 앨범에 담겨 있다. 다섯 번째 앨범에는 '와인' '딜리트' 등의 명곡이 담겨 있다. 이때까지가 김경호의 1차 전성기라 할 만하다. 히트 랠리나 목소리 모든 측면에서 절정의 시기였다. 다섯 번째 앨범에는 '탈출'이라는 곡이 들어있는데, '샤우트' 못지않게 극악의 난도를 자랑하는 곡이다. 즉 김경호의 성대가 전혀 이상이 없었던 시절 마지막 내놓은 앨범이 다섯 번째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여섯 번째 앨범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요새 화제가 되고 있는 김광석의 노래 '사랑했지만'을 리메이크해 이 앨범에 담았다(김경호가 워낙 노래를 잘 소화해 김광석을 모르는 젊은 세대는 이 노래가 김경호 노래라고 아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조용한 발라드 '희생'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로 김경호는 서서히 슬럼프에 빠져든다. 가장 큰 원인은 2003년 갑자기 찾아온 성대결절이었다. 김경호가 몸 관리를 게을리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데뷔 이후 엄청나게 많은 무대를 소화하면서 성대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특히 그의 목소리를 다채롭게 했던 여러 기교, 예를 들면 스크래치 창법이 목에 상당한 무리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흉성을 적극 활용한 선 굵은 샤우팅을 매우 반복적으로 구사하다 보니 내구성을 타고난 그의 강철 성대도 누적된 피로를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경호처럼 높은 음역대 노래를 소화하는 가수에게 성대결절은 치명적이다. 과거 두성구과 비성구를 이용해 내던 초고음의 상당수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예전 노래 키를 상당수 낮춰 불러야 하고, 이로 인해 '김경호는 한물갔다'는 세간의 비난도 이겨내야 한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자신에 대해 자책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독한 목감기를 앓으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예전처럼 목소리를 만들려고 해도 성대가 콱 잠겨버리는 불편한 느낌이 그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2003년 김경호가 핑클의 '나우(NOW)'를 리메이크한 일곱 번째 앨범을 내놓은 것은 어떻게든 탈출구를 열어 보려는 절실한 몸짓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긴 머리를 자르고 무대에서 춤을 췄고(그런데 김경호는 춤을 꽤 잘 춘다. 최근 예능에서도 걸그룹 못지않게 깜찍한 율동을 선보이기도 한다. 국민 언니라는 별명이 괜히 붙여진 것은 아니다), 신비주의 이미지를 버리고 예능에 출연해 수다를 떨었다.

이 당시 박완규와 불화가 있었던 것은 유명한 스토리다. 박완규가 김경호에게 "어떻게 로커가 그럴 수 있느냐"며 비난했고, 감정이 틀어진 둘은 멱살잡이를 할 정도로 심하게 싸웠다고 한다(이후 박완규가 사과하며 둘은 다시 친한 사이가 됐다).

박완규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김경호를 놓고 '록을 버린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김경호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기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야심 차게 선택한 변신의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2004년 7.5집을 발매했지만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집에서 설움을 삭일 정도였다. 2년간의 준비 끝에 '사랑, 그 시린 아픔으로'를 타이틀곡으로 8집 앨범을 냈는데 이번에는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희귀병이 발견돼 활동을 접어야 했다.

이 앨범에는 3옥타브 이상의 음이 나오는 일이 매우 드물어질 정도로 창법 변화가 두드러진다. 이 즈음부터 김경호는 간간이 방송에서 얼굴을 찾아볼 수 있는 그저 그런 가수로 시간을 보냈다. 예전만큼의 인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앨범 활동도 뜸해졌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김경호는 화려한 전성기를 누린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명보컬' 정도로 기억됐을 것이다. 현역보다는 잊힌 전설로 한 발 물러서야 할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김경호는 현역 가수로 또 한번 일어선다.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2011년 시작한 '나는 가수다' 음악 프로그램으로 볼 만하다. 당시 임재범 김건모 이소라 김연우 바비킴 박정현 등 최고의 가수가 전부 모인 이 프로그램에서 김경호는 '제2의 전성기'를 선언하는 맹활약을 한다.

과거의 가수가 아닌 현재의 가수로 또 한번 도약한다. 당시 김연우와 함께 부른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는 김경호의 보컬이 여전히 아름답고 미려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다. 김연우는 지금은 매우 주목받는 스타가 됐지만 프로그램 당시만 하더라도 '토이' 출신의 노래 잘하는 가수 정도의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김경호는 김연우와 짝을 이루며 노래를 하면서 다분히 김연우를 배려한 듯한 파트 배정과 성량 조절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수에서 벗어나 동료를 챙기고 프로그램 전체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올라왔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후로 김경호의 목소리도 차츰 회복돼 갔다. 이제 그가 내는 소리는 과거와는 메커니즘이 좀 다르다. 과거에 비성구를 통해 두성을 때리는 식으로 날카로웠던 발성은 흉성 비율이 더 많이 늘어난 덕분에 훨씬 걸걸해졌다. 이런 식으로 성대의 부담을 줄이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발성에 변화를 주면서 새 목소리를 잘 가다듬은 덕분에 듣기에 따라서는 예전 김경호 발성보다 성대가 다친 지금의 발성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생겨났을 정도다. 과거 발성이 예리한 전기톱으로 썰어버리는 느낌이라면, 지금 발성은 묵직한 '오함마(쇠망치)'로 뒤통수를 갈겨버리는 느낌이다. 많이 아팠을 때 3옥타브 이상을 내는 것도 버거워하던 김경호는 이제는 순간적으로는 3옥타브 솔 정도의 샤우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을 회복했다(다만 소리를 내는 방식은 좀 달라졌다).

2016년 그가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돌팔매'는 '김경호 2.0' 버전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3옥타브 파 정도로 추정되는 샤우팅으로 시작해 묵직한 헤비메탈 사운드를 목소리 하나로 끌고가는 저력과 실력, 연륜을 보여준다. 그는 50대 이상 장년층 비율이 적지 않은 관객을 놓고 헤비메탈을 내세워 무대에서 우승했다. 이제 김경호는 어떤 무대에 올라서도 관객의 큰 환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최고 인기 가수 반열에 다시 올랐다. 10·20대로 이뤄진 걸그룹, 보이그룹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40대 가수다.

김경호의 추천 곡은 너무 많아서 한두 개를 거론하기 힘들다. 좀 덜 알려진 곡을 굳이 추천하자면 '딜리트' '자유인' '긴 이별' '사랑, 그 시린 아픔으로' '내 그리움 널 부를 때' 정도를 얘기하고 싶다. 1집부터 순서대로 한 곡씩 들어보며 달라진 김경호의 목소리 변천사를 확인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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