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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의전삼국지… 日 '세심함' 韓 '절제' 中 '화려함'

  • 안정훈
  • 입력 : 2017.11.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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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이] 동아시아에 '스트롱맨' 미국 대통령이 떴다. 사업가이자 엔터테이너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일본을 시작으로 7일 한국, 8일 중국을 순차로 방문하며 한·중·일 3국 일정을 숨 가쁘게 소화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교역 정상화를 부르짖어온 트럼프 대통령인 만큼 3국은 각별히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맞추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한·중·일은 역대 미국 대통령 순방과 비교해봐도 가장 극진한 수준의 의전을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저마다의 문화적 특질을 반영해 '승부수'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앞줄 왼쪽)가 3일 밤 일본 도쿄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생일 축하 꽃다발을 받는 모습. 이방카의 생일은 지난달 30일이었다. /사진=이방카 페이스북 캡처, 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앞줄 왼쪽)가 3일 밤 일본 도쿄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생일 축하 꽃다발을 받는 모습. 이방카의 생일은 지난달 30일이었다. /사진=이방카 페이스북 캡처, 연합뉴스
'언제든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가 가능한 국가 정상'으로 스스로를 홍보해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극진한 대접)'를 카드로 꺼내 들었다.

아베 총리는 5일 오전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으로 초대해 9홀 라운드를 가졌다. '골프광'인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직접 카트를 몰며 직접 의전에 나서는 모습도 보였다. 오후부터는 세계 랭킹 4위의 일본 최고 프로 골퍼 마쓰야마 히데키까지 라운딩에 동원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구호를 본떠 '도널드와 신조: 동맹을 더욱 위대하게(Donald and Shinzo: Make Alliance Even Greater)'라고 적은 모자를 건넸다. 금색을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호에 맞춰 글씨를 금실로 새겨 넣는 등 철저한 배려가 돋보였다.

음식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5일 만찬은 와규 스테이크로 유명한 도쿄 긴자의 '우카이테이'에서 진행됐다.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자리였다. 6일 만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손녀인 아라벨라가 좋아하는 일본 개그맨 피코타로까지 동석시켰다.

일본 특유의 철저한 서비스 정신이 돋보인 의전이었지만 "너무 지나쳤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충성스러운 조수(loyal sidekick)'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며 "아베 총리가 안보 문제 때문에 스스로를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노예'로 전락시켰다"고 분석했다.

일본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맨앞 왼쪽)이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서 아베 신조 총리(오른쪽)와 골프 라운딩 중 주먹을 맞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일본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맨앞 왼쪽)이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서 아베 신조 총리(오른쪽)와 골프 라운딩 중 주먹을 맞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7일 한국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청와대는 절제됐지만 품격을 갖춘 의전으로 실속을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청와대의 모습에는 대접이 과도했다고 비판받은 아베 총리와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었다. 동시에 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의 한 교회에서 괴한이 총기를 난사해 26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건에 "가슴이 찢어진다"며 희생자 유족을 위로했으며 문재인 대통령 역시 위로문을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 직후 지나치게 환대받는 모습을 보이는 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걸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도 제안하지 않았던 국빈 자격 방문을 25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허용한 만큼 의전의 격에 있어선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 평택 기지 '캠프 험프리스'를 찾아 이곳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맞이하는 '파격 영접'으로 대우했다

이어 전통 의상을 입은 의장대와 성조기와 태극기를 든 어린이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다. AP통신은 "아이들이 마치 트럼프가 아이돌 스타 저스틴 비버인 것처럼 환호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7일 공개한 국빈만찬 메뉴. /사진=연합뉴스
▲ 청와대가 7일 공개한 국빈만찬 메뉴. /사진=연합뉴스
특히 청와대가 신경 쓴 것은 만찬에 올라갈 음식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배려하면서도 식재료에 깊은 의미를 담아내고자 노력한 티가 엿보였다. 옥수수죽을 올린 구황작물 소반, 동국장 맑은 국을 곁들인 가자미 구이, 360년 씨간장으로 만든 소스의 한우갈비구이, 독도새우잡채를 올린 송이돌솥밥 반상 등이 올랐다.

구황작물 소반에 대해 청와대는 "어려울 때 한국인의 밥상을 지켜준 값싼 작물이었으나 시대 변화로 지금은 귀하게 각광받는 구황작물의 의미처럼 한미동맹의 가치가 더욱 값지게 된다는 점을 상징한다"고 소개했다.

이날 만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초대를 받아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눴다. 독도새우와 함께 '역사 외교'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심기가 불편해진 일본 정부는 이틀 연속으로 한국 측에 항의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9일 오전 텅 빈 천안문 광장에서 의장대를 사열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 9일 오전 텅 빈 천안문 광장에서 의장대를 사열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8~10일 자국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황제 의전'이란 별명이 붙은 파격 대우를 제공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명·청대 황궁이며 하루 평균 8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자금성을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통째로 전세 냈다. '황제가 다니던 길'인 태화전·중화전·보화전을 차례로 걸으며 안내한 시 주석은 청의 전성기 시절 황제를 지낸 건륭제가 지냈던 건복궁(建福宮)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해 청나라 황실의 궁중요리인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대접했다. 철통 보안으로 구체적인 메뉴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온갖 진귀한 황궁 요리가 올라와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받은 의전은 사상 초유의 수준이었다. 자금성을 통째로 비운 건 성 건립 710년 만에 처음으로 있었던 일이며, 자금성에서 만찬을 한 외국 정상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래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시 주석은 9일엔 톈안먼까지도 통째로 비워버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했다. 말 그대로 '황제의 나날'을 보낸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흡족해했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공략한 시도이기도 했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시 주석 스스로가 '황제'임을 천명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타국 정상 의전의 격을 황제급으로 높이는 건 자신부터가 황제여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국으로서 앞으로 미국과 나란히 서겠다는 시 주석의 의지가 엿보였다.

WP는 9일 "아시아 지도자들이 깔아준 레드카펫에 트럼프 대통령이 흡족해 했다"며 "아첨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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