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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의 유래는?_(상)

  • 남보람
  • 입력 : 2017.12.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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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17] ◆마후라? 머플러 혹은 스카프가 옳은 표현

한국 공군의 상징 중 하나로 '빨간 마후라'가 있다. (사진 참조) "빨간 마후라"라는 노래, 영화, 드라마도 있다. 그런데 '마후라(マフラー)'는 머플러(muffler)의 일본식 표현이다. '마후라'가 아니라 '머플러'가 옳은 표현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빨간 머플러'는 한국 공군의 상징"이라고 하면 되는 건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빨간 스카프'라고 불러야 한다.

교육 수료 후 ‘빨간 마후라’를 매고 있는 한국 공군 조종사들 /출처=국방일보
▲ 교육 수료 후 ‘빨간 마후라’를 매고 있는 한국 공군 조종사들 /출처=국방일보
◆연합국 조종사들의 상징, 흰색 실크 스카프

20세기 초부터 항공기 조종사들은 흰색 실크 스카프를 목에 두르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가장 단순하게는 추워서 그랬을 것이다. 당시 조종석은 오픈카처럼 개방된 형태여서 보온 대책이 절실했다. 그렇다고 두꺼운 옷을 껴입으면 몸이 둔해져 조종에 방해가 될 것이었다. 때문에 전투기 조종사들은 얇고 보온성 높은 흰색 실크 스카프를 애용했다. 스카프는 조종사의 목 주변 살갗 쓸림 방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시절, 조종사는 고개를 돌리고 젖혀 눈으로 직접 시야를 확보했다. 별다른 일이 없어도, 비행착각(vertigo)으로 인한 사고를 피하려면 수시로 고개를 돌려 상하좌우를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특히 레이다나 전자계기판이 없던 시절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적을 먼저 발견하고 쏘기 위해서 미친 듯이 고개를 휘둘렀다. 그러다가 옷깃에 목이 쓸리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록히드 마틴이 공개한 F-16 조종사의 공중전 훈련 모습. 조종사가 고개를 뒤로 젖힌 것을 볼 수 있다. 유투브에 공개된 7분 43초의 영상 속에서 이 조종사는 300회 이상 고개를 좌우와 위로 움직였다. /출처=유튜브
▲ 록히드 마틴이 공개한 F-16 조종사의 공중전 훈련 모습. 조종사가 고개를 뒤로 젖힌 것을 볼 수 있다. 유투브에 공개된 7분 43초의 영상 속에서 이 조종사는 300회 이상 고개를 좌우와 위로 움직였다. /출처=유튜브
한편, 스카프는 마스크 역할도 했다. 조종사들은 찬 바람, 갑자기 쏟아지는 비, 코와 입으로 날아오는 벌레로부터 안면부를 지키는 데 스카프를 썼다. 특히 이 시기 항공기는 엔진 오일로 피마자 기름(아주까리)을 썼는데 엔진 위치와 구조상 조종사의 얼굴에 기름이 튀거나 쏟아지는 일이 잦았다. 피마자 기름은 독성이 있어 피부를 상하게 하고 소량이라도 삼키면 설사를 일으켰다. 스카프는 조종사용 마스크가 나오기 전까지 기름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묻은 기름을 닦는 역할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의 일반적인 복장 예시. 조종헬멧, 고글, 장갑 위에 찬 벨앤로스 손목시계가 눈에 띈다. 그리고 목에 흰색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출처=벨앤로스 홈페이지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의 일반적인 복장 예시. 조종헬멧, 고글, 장갑 위에 찬 벨앤로스 손목시계가 눈에 띈다. 그리고 목에 흰색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출처=벨앤로스 홈페이지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사진을 보면 목에 흰색 실크 머플러를 두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P-47 선터볼트 전투기를 몰고 독일군 항공기 28대를 격추시켰다. /출처=위키피디아
▲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사진을 보면 목에 흰색 실크 머플러를 두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P-47 선터볼트 전투기를 몰고 독일군 항공기 28대를 격추시켰다. /출처=위키피디아
그렇다면 재질을 실크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울이나 면보다 얇게 직조된 실크는 움직임을 크게 방해하지 않았고,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겼기 때문이다. 목에 걸쳐 옷 안에 갈무리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았고 접어서 넣으면 주머니에 쏙 들어갔다.

0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조종사였던 제임스 레이시. 길게 늘어뜨린 스카프를 볼 수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 0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조종사였던 제임스 레이시. 길게 늘어뜨린 스카프를 볼 수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색은 왜 흰색으로 했을까? 우아하고 멋져보였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만 하더라도 참전 조종사 대부분은 자신의 항공기를 가지고 자원한 귀족 출신이었다. 목쓸림을 방지하든 벌레를 막든 얼굴 주변에 무언가를 둘러야 한다면 그들이 선택할 색은 단연 흰색이었다. 조종사들은 흰색의 스카프를 겉옷 밖으로 길게 늘어뜨린 채 멋을 내기도 했는데, 어떤 이들은 비행할 때도 스카프를 겉에 내놓아 펄럭이게 했다.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곧 규정에 의해 금지됐다. 그러자 흰색 끈을 헬멧 위에 달아 휘날리게 하는 이도 있었다. (사진 참조)

영화 “Dawn Patrol(1938)”의 한 장면. 헬멧 위에 단 흰색 띠가 휘날리고 있다. /출처=The Movie Database (TMDb)
▲ 영화 “Dawn Patrol(1938)”의 한 장면. 헬멧 위에 단 흰색 띠가 휘날리고 있다. /출처=The Movie Database (TMDb)
(하편에 계속)

[남보람 육군군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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