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미나 "'강철비'는 상실 이겨낸 뒤 도착한 고마운 영화"

  • 김시균
  • 입력 : 2018.01.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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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연배우다-5] 인생을 산다는 건, 어떤 면에서 숱한 '상실'들을 마주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 개개의 상실들을 이겨내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마음의 굳은살이 배겨가는 과정인지도. 현재의 상실들이 저 멀리 썰물처럼 과거로 물러나면, 미래의 상실들이 예고 없이 밀려든다. 인생에서 상실은 불가항력적이다. 우리가 조금씩 성장한다면 이 모든 누적된 고통들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관계의 상실이란 말할 것도 없다. 슬프고 아프기 그지 없지만 삶에서 불가피한 사건이기에 시간 만이 해결해줄 수 있다. 아름다운 시절 또한 마찬가지다. 시간은 늘 그러하듯 무심히 흘러갈 뿐이므로, 싱그럽고 생기 넘치던 '그 때' 역시 언젠간 상실된다. 청춘이 찬란한 것은 그것이 유한함의 속성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며, 이 시기를 봄철의 벚꽃에 비유하는 건 그래서다. 요체는 삶이란 '상실의 총합'이다.

배우 안미나 /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안미나 / 사진=양유창 기자

배우 안미나(34)의 지난날들 역시 상실의 아픔들을 이겨내는 여정이었다. 혹독한 시련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이어졌다. 데뷔 초창기 쏟아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약(藥)보단 독(毒)이었다. 처음엔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다. 그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으로 데뷔했다. 당시 최고 시청률 50.5%를 기록한 이 드라마에서 안미나는 선배 파티쉐 김삼순(김선아)을 동경하는 사투리 소녀로 분했다. 그리고 일약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오른다.

그는 이듬해 영화 데뷔작으로 2연타를 친다.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2006) 속 다방녀를 호연해 '신 스틸러'로 급부상한 것이다. 왕년의 잘 나가던 가수 최곤(박중훈)의 라디오 방송에서 선보인 김선욱(안미나)의 모습은 지금 봐도 감동적이다.

안미나의 영화 데뷔작인 이준익 감독의
▲ 안미나의 영화 데뷔작인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2006). 박중훈과 안성기라는 대선배들 틈에서 다방 종업원 김양을 호연하며 관객에게 눈도장을 받았다.

"엄마, 나 선욱이. 엄마 잘 있나, 이거 들리나? 엄마, 비오네. 기억 나? 나 집 나올 때도 비 왔는데. 엄마 그거 알어? 나 엄마 미워서 집 나온 거 아니거든. 그때는 내가 엄마 미워하는지 알고 있었는데, 집 나와서 생각해 보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밉고 엄마만 안 밉더라? 그래서 내가 미웠어. 나, 내가 너무 미워가지고 막 살았다? (흐느낌) 나 미쳤나봐… 엄마, 나 비 오는 날이면,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부침개 해보거든. 근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도 그때 그 맛이 안나더라… 엄마, 보고싶어… 엄마, 엄마 보고싶어…."

예능에서도 존재감은 도드라졌다. 그 해 KBS '스타 오디션'에 도전해 치열한 경쟁(1차 경쟁률만 2700 대 1)을 뚫고 2등을 꿰찬 것이다. 말하자면 드라마, 영화, 방송을 아우르며 화제를 모은 셈이다. 그런데 이게 다만 축복이기만 했을까. 이후 몇 년간 순탄한 배우 생활을 이어갔으나, 언제부터인가 안미나는 돌연 자취를 감춘다. 지난해 12월 '강철비'의 북한 여자 송수미로 스크린에 복귀하기까지 기나긴 공백의 시간이 있었다. 중간중간 조·단역 출연은 있었으나 초창기 스포트라이트는 더 이상 없었다. 안미나에겐 "기나긴 상실의 시기"였다. 지난 5일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상실의 시기에 대해 물어봤다.

배우 안미나 /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안미나 / 사진=양유창 기자

-한동안 활동이 뜸했어요.

"제 삶에서 누리던 것들을 조금씩 상실해간 시기였어요. 그 '상실감'에 줄곧 사로잡혀 있었죠."

-무엇을 상실한 거죠?

"몇 년간 늘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라디오 스타' 이후에도 SBS 드라마 '황금신부'(2008·최고 시청률 48%)가 잘 되고 그 뒤로도 작품이 꾸준히 들어왔으니까요. 언제부터인가 이 모든 게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어요. 저한테 일이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고 저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다라는, 이 '있음'을 당연하게 생각한 거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낙관에 젖어 들었어요. 지금보다 어려서 더 그랬겠죠. 제가 열심히 잘 하고 있기에 한 계단 한 계단 상승하는 거라 자만했으니까요. 그런데, 일련의 예기치 않은 일들을 겪고부터 '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지금까지도 내 노력만으로 된 게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됐어요."

-그게 언제적 일인가요?

"4~5년 전 얘기에요. 작품 네 개가 연이어 엎어졌어요.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요. 그간의 '믿음'들이 한 순간 무너졌어요. 그 모든 '있음'이 상실로, '없음'으로 바뀌었죠. 소속된 회사가 부도가 나고, 새로 들어간 회사도 잘 안 됐고요. 그렇게 작품들이 계속 엎어지면서 쭉 쉬게 됐어요.

-화려했던 출발과는 사뭇 다르군요.

"4년 간 백수생활을 했어요. 벌이가 없으니 돈이 없었죠.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니 어린 나이도 점점 없어지고, 밝았던 옛 성격도 없어지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가고.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부터 그간의 주변 관계 모두가요."

그야말로 '상실의 시대'였다. 믿음들이 일거에 허물어졌다. 어린 배우가 감당키엔 초창기 성공과의 낙차가 너무 컸다. 우울과 불안이 뱀처럼 똬리를 틀며 영혼을 잠식했다. '대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어차피 인간은 죽고 없어지는데 왜 힘들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원초적이고도 실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뾰족한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모든 걸 그저 내려놓고 싶었다. 결국 안미나는 난생 처음 집을 나간다. 몇 안 되는 푼돈과 여행가방 하나 싸든 채 '라디오스타' 속 선옥처럼…. 그때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가출했어요?

"현실에서 도망친 거죠. 강남구청 인근에 조그마한 단칸방을 얻었어요. 거기서 2년 넘게 살았어요. 명절 때면 건물이 상가여서 보일러를 다 끊더라고요. 중앙난방식이거든요. 문제는 겨울에 너무 추웠어요. 이불이란 이불은 바닥에 다 깔고 패딩을 두 겹 세 겹 입고 혼자 벌벌 떨었어요. 제가 자처한 거지만 서러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철 없고 우습죠. (웃음) 집에 있으면 부모님 걱정하신다고 나온 거였으니까요. 근데 다 허사가 된 것 같고."

-별의별 생각 다 들었겠군요.

"그동안 저는 가진 것들 위주로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단칸방은 반대였어요. '없음' 그 자체였던 거죠.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나중에 휴대폰도 끊기니 지인들과 연락도 차단되고, 자존감도 상실되고."

-집엔 안 들어갔어요?

"아예 연락을 안 드렸어요. 명절 땐 가끔 찾아갔는데 하루를 못 버티겠더군요. 엄마를 보면 반가우면서도 서럽고 슬프고…."

-연기에 대한 갈망은요?

"'나는 연기자야'라는 생각은 좀체 벗기 힘들었어요. 고개만 들어도 욕심이 났거든요. 한창 작품 할 땐 이 배역은 이렇고 저 배역은 저렇고 하면서 정말 신이 났어요. 얼른 또 다른 작품 하고 싶고. 근데 이 모든 걸 내려놓게 된 거에요. 먹고 살기 정말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니 어쩔 수 없겠더군요."

배우 안미나 /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안미나 / 사진=양유창 기자

결국 삼일 밤낮을 울고 난 뒤 포기한다. 그는 퉁퉁 부은 눈으로 회사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 연기 안 하겠습니다." 일단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이력서부터 올렸다. 그렇게 대학생 때 해본 영어과외 자리를 구하고, 야간엔 편의점에서 일했다.

이 순간이야말로 안미나에겐 '0년'이었다. 지난 시간을 추억으로 남겨둔 채 그간의 욕심들을 모두 내려놓았다. 새 출발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독서에 더욱 매진한 것도 이 시기다. 그렇게 내면을 담금질했다.

안미나는 "원래 내겐 아무 것도 없었구나,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없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잃을 게 없으니까요. 원래도 잃을 게 없었는데 잃을 게 많다고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 거죠."

문학평론가 김현이 쓴 '말들의 풍경'을 다시 꺼내 읽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런 구절이 가슴 언저리에 콕 박혔단다.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 밖의 풍경은 안의 풍경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안과 밖은 하나이다."

그에게 이 구절은 위안이자 가르침이었다. 어둡기만 했던 마음 속 풍경을, 그 안과 밖을 응시하게 해준 빛살과도 같은 구절들이었다. 덕분에 그는 외면하던 과거를 오롯이 응시하며, 지금의 모습을 서서히 인정하게 됐다. 응시와 재응시, 인정과 받아들임의 시간이었다. 안미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자 폐허 같던 마음 밭에도 조금씩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기회는 다시금 찾아왔다. MBC 아침 드라마 '엄마의 정원'(2014)에 캐스팅된 것이다.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한창 '알바'하던 중에 제의가 들어왔어요. 너무 감사했죠. 이전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예전엔 그게 너무 당연하다 여겼거든요. 제의가 오면 이거 '아침드라마야?' '나 몇 번째 역할이야?' '나보다 큰 배역 누군데?' 이런 오만한 질문부터 했을 거예요. 근데 '없음'의 상태에서 제의가 오니 그 자체로 너무 기쁘고 감사한 거예요."

-성숙해진 거군요.

"과거의 허울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아요. 다시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 과외를 그만두지 않았어요. 왜 그랬냐면 제가 일을 하니 다시 이 '있음'에 익숙해지려는 거예요. 해서 제가 겪은 '상실'들을 계속 환기시키려 했어요."

-'무한도전: 무한상사편'(2016) 출연도 전화위복이 됐죠?

"그해 가을이었어요. 김은희 작가님이 애초 '시그널'에서 저를 쓰고 싶었는데 전달이 잘 안 됐다며 언젠가 다시 쓰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미나 씨를 기억해준 분들이 곳곳에 있었네요.

"그런가요? (웃음) 당시 소속사 분들도 저를 안쓰럽게 여겼나봐요. '미나가 꼭 했으면 싶다'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렇게 출연했고, 이후 회사를 다시 나와 혼자가 됐을 때 이번 영화 '강철비'가 도착했죠."

영화
▲ 영화 '강철비'에서 안미나는 개성 공단에서 일하다 월남하게 된 북한 여공 송수미를 열연했다. / 사진제공=NEW

-양우석 감독님이 직접 연락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소속사가 없었어요. 드라마나 영화 출연작도 없었고요. 캐스팅 첫날부터 계속 연락을 주셨어요. 전화가 잘 안 되면 SNS 친구 신청도 해주시고, 여러 루트로요. (웃음) 오디션 보러 오라고 하시는 말씀인가보다 짐작했어요. 전화로 '오늘 저녁 8시까지 뵐 수 있을까요'라고만 하셨으니까요. 그래서 추운 겨울 내복 껴 입고 버스 타고 갔어요. 그런데 막상 가니, 이미 제 이름이 쓰여진 시나리오가 있는 거에요. 그날 바로 의상 치수 재고 촬영 준비에 들어갔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내정자였군요. 감독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2009년에 KBS2 드라마 '남자이야기'라는 미니시리즈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 작품을 좋게 보셨대요. 당시 극본을 송지나 작가님이 쓰셨는데, 자기와 친분이 두터우시대요. 그때 제 연기를 모니터링 하신 적이 있는데, 잘 될 배우로 봤다고 하셨어요. 근데 생각보다 활동이 뜸해 궁금했고 그래서 더 애타게 찾았다고…"

안미나는 서울 압구정고를 나왔다. 1~2학년 때 방송부였기에 점심시간이면 직접 쓴 대본으로 방송을 했다. 대본 쓰는 능력이 제법 좋았다. 2학년때는 아버지에 대한 라디오 드라마를 써 청소년방송제 수상도 했다. 그가 배우에 대한 꿈을 머금은 것도 이 즈음부터다. 하지만 부모님이 반대했다. "오빠가 고교 때까지 쭉 아역 배우를 했어요. 20대 초반까지도 모델 활동을 한지라 저는 공부부터 열심히 하고 대학가서 생각하자는 거였죠." 그래서 별 저항 없이 학업에만 매진한다. 성적은 차근차근 올랐고 결국 연세대 철학과 수시에 붙는다. "공부를 썩 잘했나봐요"라고 하니 그의 양 볼이 잠시 발그레해졌다. "열심히 했으니까요."(웃음)

-대학에 갔으니 연기도 할 수 있었겠네요.

"바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연세극우회요. 거기서 '뜻대로 생각하세요'라는 연극을 처음 올렸고,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악극도 했어요. 그 다음 작품이 데뷔작 '내 이름은 김삼순'이고요."

-철학과를 간 게 좀 특이한데요.

"사실, 고교 때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우연히 만화책으로 미셸 푸코를 읽은 적 있어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철학서를 많이 읽었죠. '현대철학의 거장들', '뇌는 스크린이다: 들뢰즈와 영화 철학', '감시와 처벌' 같은 책이요. 대학시절엔 교수님이랑 책도 냈고요."

-학부생 시절에 책을 냈어요?

"'죽음아 날 살려라: 텍스트로 철학하기'라는 책이에요. 유헌식 교수님과 대학원생 선배들이랑 같이 썼어요."

-쉽지 않았을 텐데요.

"고교 때 철학을 만화로 처음 접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철학과의 만남이 어렵기보단 가깝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대학에 와보니 책들이 대개 어려운 언어 위주인 거예요. 혹여 이런 책들로 접했으면 철학과에 가진 않았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강조했죠. '교수님, 우리 책은 쉬워야 해요!' (웃음)"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원고를 정리하면서 기자는 안미나가 쓴 철학서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2008년 10월 출간된 책이었다. 마우스 휠을 내려 저자소개를 찾아봤다. 공동 저자 다섯 명 중 '연구원 한여운'(안미나의 개명 전 이름)이란 이름이 있었다.

배우 안미나 /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안미나 / 사진=양유창 기자

-요즘도 글을 써요?

"네, 일 없으면 오전 시간대에요. 사실 제가 아무 것도 안 할 때 한겨레신문 장편소설 공모전에 응모한 적이 있어요. 좋은 결과는 없었지만요. 그때 쓴 게 아까워 다시 손보고 있어요. 그리고… 약간 서스펜스가 가미된 '은폐'라는 추리소설도 썼어요."

-다재다능하군요.

"음, 저는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연기가 특정 인물의 삶을 보여주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글은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 물어봄이 좋아서 연기 외에 소설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소설 '은폐'에 대한 귀띔을 요청하자 안미나는 난처해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밝히기로 돼 있어 어렵다는 것이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화제를 얼른 '강철비'로 돌렸다. '강철비' 얘기를 할 때면 안미나의 얼굴엔 자주 화색이 감돌았다.

-잠시 샛길로 빠졌지요? '강철비'에서 월남하는 북한 여자로 중반까지 나와요. '북한 1호', 엄철우(정우성), 여민경(원진아)과 같이 내려오죠.

"정우성 선배님과 북한 개성공단에서 남한으로 탈출하는 북한 여공 송수미 역이었어요. 현실적이기도 하면서 인간미도 지키고 끝까지 의리도 지키는!"

-극중 쓴 사투리가 평안도에요? 함경도예요?

"평안도 사투리죠. 개성공단 출신이니까."

-무슨 차이가 있나요?

"함경도는 억양이 좀 세고 뒤를 축약시켜요. 반면 평안도 사투리는 조금 더 또박또박 하달까요."

-예를 들면요?

"함경도 사투리는 '괜찮습니다'를 '괜찮슴다', '일없습니다'를 '일없음다' 이런 식으로 말끝을 흐려요. 평안도는 뒤에 힘을 좀 더 주면서 억양이 전반적으로 높죠. 탈북자이신 북한어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한 달 반 정도."

시범을 보여달라 했다. 난 데 없는 요구에 안미나는 생긋 웃었다. "음, 음." 하더니 이러는 거였다. "요민경이 정신차리라, 요민경이 정신차리라!" 모음 'ㅕ'를 'ㅛ'로 고쳐 끝음에 힘을 주면 얼추 평안도 말처럼 들린다고 했다. "'벼'는요 '뵤' '뵤' 요렇게 하면 돼요.(웃음)"

-극중 송수미는 남한에서 결국 총에 맞아 죽죠. 아쉽진 않았어요? 잘려나간 신도 좀 있을 테고.

"어휴, 많았죠. 준비했던 신 중에 신경 많이 쓴 게 잘려나가 좀 슬펐어요. 직접 대사도 써서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정우성 선배님도 현장서 지켜보시다 그 신이 슬프다고 우셨는 걸요. 총 맞고 죽는 신에서 여민경한테 하는 대사가 더 있었어요. 중간에 초콜릿 먹는 장면도요. 사실 제가 초콜릿을 다 숨겨놔요. 고향에 가져가 여동생 주려고. 제일 짠한 신인데… 감독님이 미안하시대요. (웃음)"

-3분 요리 '먹방' 신도 인상 깊었어요.

"진짜 많이 먹었어요. 송수미 입장에선 처음 보는 걸 거예요. 3분 요리는 북한에 거의 없을 테니까. 또 고기 자체가 워낙 귀하잖아요. 그러니 더 맛있게 먹는 거죠!"

-정우성 씨랑 호흡은 어땠어요?

"촬영장에서 항상 제게 북한말을 쓰셨어요. 같이 주고받으며 연습했죠. 요즘도 가끔 메시지로 안부 보내주세요. '동무, 잘 지냈나' 이런 식으로요. (웃음)"

-기억 나는 말이 있나요?

"최근에 무대 인사 돌고 회식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미나야, 라디오스타 정말 잘 봤고 안미나 하면 연기 잘 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어서 선배들이 기대 많이 하고 있었다. 근데 많이 안 나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단다.' (안미나의 눈자위가 일순간 붉어졌다) 너무 감사하고 큰 응원이었죠. 저를 기억해주고 계셨다는 거니까요."

인생은 숱한 상실들을 동반하지만 한편으론 또 기억된다. 때때로 그 기억은 누군가를 살리고 또 일으킨다. 안미나가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자신을 기억해준 누군가가 있어서일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안미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려고요." 향후 신작들에서 안미나를 볼 날이 더 많아질 거라는 예감이 그때 문득 들었다. 기분 좋은 예감이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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