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스페셜리포트

인간은 사이보그로 진화할까?

  • 박상준
  • 입력 : 2018.02.08 06: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박상준의 사이언스&퓨처-3] 20년 전쯤 어떤 남자가 전 세계에 생방송 되는 TV에 나와서 "내가 세상의 왕이다!"고 외친 적이 있다. 그때는 좀 건방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가 하는 일들을 보니 정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보였다. 그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고, 그가 왕을 자칭한 것은 영화 '타이타닉'(1997)으로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한 수상 소감이었다. 정확히는 '타이타닉'에 등장하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대사를 인용한 재치 있는 퍼포먼스였다. 이 영화는 20년이 넘은 지금도 세계 영화 사상 역대 흥행 2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당시 캐머런은 보너스로만 1억달러를 받았다. 역대 흥행 1위도 그의 영화 '아바타'(2009)이니, 어지간한 왕보다 낫다고나 할까.

캐머런이 대단한 것은 영화계 밖에서도 놀라운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2012년에 그는 혼자서 잠수정을 타고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까지 내려갔다. 에베레스트산을 집어넣어도 2000m 아래에 잠길 만큼 깊은 태평양 마리아나해구의 수심 1만900m가 넘는 '챌린저 딥' 바닥을 찍고 올라왔다. 인류 역사상 달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12명이지만, 챌린저 딥까지 내려갔다 온 사람은 단 세 명밖에 없다. 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선 자문회의에 초빙될 만큼 과학탐험가로도 유명하다. 전문대학을 중퇴하고 한때 거처가 없어 친구 집 소파에서 지내던 사람으로서는 놀랄 만한 인생 역전이 아닐 수 없다.

캐머런이 1989년에 내놓은 영화 '어비스'는 그의 작품치고는 흥행이 신통치 않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컴퓨터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영화에는 바닷물이 뱀 모양처럼 솟아올라 둥둥 떠오르더니 사람 앞에서 얼굴 표정을 그대로 흉내 내는 환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지금이야 이 정도는 컴퓨터그래픽(CG)으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마치 현실처럼 생생한 그래픽으로 큰 화제가 됐다. 이 장면을 만든 소프트웨어가 바로 오늘날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의 지존인 '포토숍'이다. '어비스' 촬영 당시엔 아직 포토숍이란 이름도 붙지 않은 초기 버전이었지만, 그 작업을 계기로 명성을 쌓아 훗날 디지털 이미지 편집 분야를 평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포토샵'의 성공을 견인한 '어비스'의 명 CG장면 /사진=20세기폭스

'어비스'에 숨어있는 또 다른 일화는 바로 '액체 호흡' 장면이다. 수압이 높은 심해 잠수를 위해 군인들이 특수 용액을 선보이는데, 시범을 보인다며 쥐 한 마리를 용액 속에 빠뜨린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당연히 익사할 줄 알고 기겁하지만, 쥐는 용액 속에서 한동안 발버둥 치다가 차츰 호흡하며 안정을 되찾는다. 이 장면은 트릭이 아니라 실제 상황을 그대로 찍은 것이다. 심해에서는 수압 때문에 인간의 폐가 짜부라져서 잠수를 할 수 없지만, 만약 폐 속이 기체가 아닌 액체로 채워져 있다면 수압의 균형이 맞아 잠수가 가능하다. 문제는 숨을 쉴 수 있는 액체가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어비스'는 바로 그 답을 시연으로 보여준 것이다.


▲ '어비스' 영화에서 쥐가 액체호흡하는 이 장면은 실제상황이다. /사진=20세기폭스

이 용액은 퍼플루오로데칼린(Perfluorodecalin)이라는 물질로서 공기 중의 농도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비율로 산소를 품고 있다. 그런데 이 용액은 포유류의 폐 속에 들어가면 기체 상태인 공기와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교환 작용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숨을 쉬는 것처럼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호흡 작용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어비스'에 나오는 주인공은 이 물질을 가지고 심해 잠수를 해서 마침내 외계 존재와 조우하게 된다(물론 영화 속에서 배우가 실제로 이 용액을 쓴 건 아니다).

이런 물질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인공혈액용 재료 등 용도가 제한되어 있기도 하지만 아직 인체 실험을 통해 안전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액체 호흡'은 심해 잠수뿐 아니라 우주여행에서도 유용한 기술이 될 수 있어서 의학계에서는 예전부터 연구해왔던 분야다. 우주선 탑승자들은 로켓이 가속운동을 할 때 중력의 몇 배나 되는 압력을 견뎌야 하지만, 액체 안에 잠겨 있으면 충격이 완화되어 훨씬 편안하다.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에 나오는 'LCL' 용액이 정확히 이런 효과를 잘 묘사한다. 아마 '어비스'에서 암시한 것처럼 미국을 포함한 일부 나라에서는 비공개로 연구와 실험을 진행해서 이미 군용장비로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액체 호흡을 연구하는 이유는 결국 극한 환경에서도 인간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발상을 좀 바꿔서, 인간의 몸을 환경에 맞게 개조해버리면 어떨까. 그렇게 하려면 인간의 몸에 인공적인 장치를 더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류처럼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인공 폐를 달거나 원래 근육보다 몇 배의 힘을 낼 수 있는 기계 팔을 붙이거나, 기온이나 습도 등이 혹독해도 견딜 수 있는 나노 피부를 부착하거나 등등.

1960년
▲ 1960년 '라이프'지에 실린 사이보그 상상도. '사이보그(CYBORG)'라는 말이 이 해에 처음 탄생했다. /사진=라이프

바로 이것이 인간과 기계의 결합인 '사이보그(cyborg)'다. 사이보그는 별로 낯설지 않은 용어지만 사실 단어 자체는 1960년에 처음 탄생했다. 인간이 우주 공간에서 활동해야 할 경우 신체 개조를 통해 환경에 적합한 특성들을 인공적으로 갖추게 한다는 발상이었다. 물론 SF에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나왔던 아이디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 사이보그는 이른바 '포스트 휴먼', 즉 인간의 미래상과 관련해 매우 의미심장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현재의 모습이 진화의 완성형일까.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장차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갈까. 여러 시나리오가 있지만 현재 가장 유력한 것은 기계(컴퓨터)와 결합해 사이보그로 변화해 나갈 가능성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이질적인 무엇이 되겠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은 그런 방향으로의 변화를 강력하게 암시하는 커다란 징조 그 자체다. 그 욕망이란 다름 아닌 생사를 초월하겠다는 의지인데, 사이보그야말로 그 의지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21세기 중반이면 인간은 영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여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어떤 천재적인 발명가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