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복식조' 이용대의 영원한 파트너 정재성을 보내며

  • 정지규
  • 입력 : 2018.03.13 06: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 동메달리스트 고(故) 정재성 삼성전기 배드민턴팀 감독 발인이 1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 동메달리스트 고(故) 정재성 삼성전기 배드민턴팀 감독 발인이 1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쇼미 더 스포츠-80] 2018년 3월 11일,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35호실은 일요일 아침임에도 많은 이들로 붐볐다. 이들은 지난 이틀간 조문을 이미 마쳤지만 누군가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또 누군가는 너무나 아쉬워서, 또 누군가는 할 말이 아직 남아서 발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정사진을 지켜보는 이들은 어림잡아 100명이 훨씬 넘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붉어진 눈시울과 함께 이어지는 작은 흐느낌, 그리고 이따금씩 사진기자들의 셔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모두가 너무나 슬퍼하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정사진 속의 망자는 너무나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정재성은 우리 곁을 떠났다.

배드민턴 선수 정재성, 런던올림픽 남자복식 동메달리스트인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남자배드민턴 역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인 이용대의 복식 파트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용대와 함께 2006년 1월 독일오픈 때부터 2012년 7월 런던올림픽까지 약 7년간 세계배드민턴 남자복식을 호령했다. 정재성과 이용대는 이 기간 동안 국제대회에서 25번의 우승을 함께 했고, 5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빛나는 금자탑을 이루기도 했다. 특히 2012 런던올림픽 직전 해인 2011년은 이들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데, 그해에만 국제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하며 부동의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지켰으며,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가장 확실한 금메달 카드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가 기대만큼 좋지는 못했다. 남자복식 동메달이라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4강에서 덴마크에 역전패로 진 것은 두고두고 뼈아팠던 장면이었고, 보는 이들 또한 안타까움이 무척 컸다. 이전까지 상대 전적에서 13승4패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어 더 그랬고, 첫 세트를 이긴 후 역전패를 당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재성은 경기가 끝난 후 자신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홀가분한 듯 환하게 웃으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 괜찮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재성의 그 웃음은 마치 영정사진 속의 그 환한 웃음과 같았다.

따지고 보면, 정재성의 선수 시절은 조금은 불운했다. 그는 탁월한 운동능력과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실력에 비해 다소 늦은 2004년 11월 중국오픈에서야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본격 데뷔한다. 이전까지 남자복식은 김동문, 하태권과 이동수, 유용성이 국내 무대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를 양분하며 장기집권하였다. 2004 아테네올림픽 직후 동년배인 이들이 동반 국가대표 은퇴를 하게 됨에 따라 정재성 등 후배들에게는 기회가 조금 늦게 찾아왔다. 이전 세대의 빛나는 성과에 비해 정재성 등 후배들은 경험 부족 등으로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혹자는 이때를 한국 배드민턴의 침체기라 부르기도 했다.

힘든 시기를 거친 정재성은 2006년 당시 고교 2학년 이용대라는 미완의 파트너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둘은 결성한 지 15일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하는 등 실력이 일취월장하며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정재성은 이용대와 함께 최고의 복식조로 인정받고 새롭게 거듭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 승승장구하며 기대를 모았던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1회전에 불의의 일격을 맞으며 조기 탈락했고, 앞서도 언급했듯이 2012 런던올림픽 또한 기대와 달리 동메달에 머물렀다. 게다가 2006 도하, 2010 광저우 등 두 번의 아시안게임에서도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다. 이는 그의 파트너 이용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용대는 2008 베이징올림픽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그의 불운은 조금더 커보였다. 전영오픈을 비롯해 세계 최고의 대회들에서 25개의 금메달을 땄던 화려한 커리어를 감안하면 의아하고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정재성은 아직 최고의 전성기를 꽃피우지 못했던 2009년 상무 군복무 시절 어머니를 병으로 보내야만 했다. 정재성에게는 모든 것이 순탄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이런저런 불운에 지쳐 은퇴를 생각하던 정재성이 런던올림픽까지 출전을 결심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재성은 단순히 이용대의 파트너가 아니며, 세계 배드민턴 남자복식을 대표하는 레전드이다. 비록 그가 가지고 있는 올림픽 메달은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한 개뿐이지만 그가 세계 무대에서 보여준 실력과 성과는 모두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남자복식 국제대회에서 정재성은 총 402번 경기하여 321번 승리하며 80%라는 경이적이 승률을 보여줬다. 2000년대 이후 남자복식 세계 톱랭커들 중 통산 승률이 80%를 넘는 선수는 정재성을 제외하고 단 한 명밖에 없으며 그 선수는 바로 정재성의 파트너였던 이용대다. 이 둘의 케미는 환상 그 자체였다. 둘이 파트너로 함께 출전한 318번의 경기에서 266번 승리하며 84%의 승률을 기록하는데, 이는 두 선수의 개인 남자복식 통산 승률보다 모두 높은 수치이다.

정재성은 168㎝의 단신이었다. 네트 플레이가 필수인 배드민턴에서 단신은 핸디캡이며, 세계 톱랭커들 중 정재성보다 작은 선수는 거의 없다. 하지만 정재성은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 최고의 후위 스매셔였다. 높은 타점에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스매싱은 상대 선수에게는 곤혹 그 자체였으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환호를 자아내게 했다. 정재성은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커리어 동안 이를 충분히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재성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너무나 아쉽다. 선수로서 많은 것을 보여주었지만 이제 지도자로서 감독으로서 그가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아직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정재성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한국 배드민턴계로서도 큰 손실이다. 하지만 배드민턴 레전드 이전에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선후배나 스승 또는 제자로서 인간 정재성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이 너무 클 것 같아 걱정이다. 그가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히 잘 쉬었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2006년 독일오픈은 정재성·이용대 조가 결성된 후 치른 첫 국제대회였고, 그 대회에서 둘은 커리어 첫 우승을 차지하며 시상대 맨 위에 나란히 섰다. 12년 뒤 2018년 독일오픈이 한창이던 지난 주말 정재성은 운명했고 이용대는 정재성을 운구했다. 독일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비롯한 출전선수들이 전광판 속 사진을 보며 정재성을 추모했다. 가끔은 인생도 스포츠도 조금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