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공무원시험의 황당한 출제, 언제까지 계속될까

  • 마석우
  • 입력 : 2018.04.25 06: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55] 원부, 허공의 '고금록'은 1284년에,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그보다 3년 후인 1287년에 편찬되었다. 이 연도까지 정확하게 알아야만 풀 수 있는 시험 문제가 2018년도 서울특별시 7급 지방공무원 시험에 출제되었다. 이 책들이 고려 충렬왕 때 출간된 책이라는 사실만 알아도 대단한데 그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다. 도대체 고금록이 제왕운기보다 3년 전인 1284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가 서울시 공무원으로서 자질을 테스트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이 문제도 한 번 풀어보자.

문: 정약용이 저술한 책의 수는?

① 500권 ② 900권 ③ 8,000권

④ 1,000권 ⑤ 200권

이렇게 황당한 문제가 있을까. 숨이 턱 막히는 이 문제의 정답은 ① 500권이다.

이것을 안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약용이 저술한 책의 수가 500권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국가공무원으로서 한국사에 관한 소양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답답한 문제가 언제 어느 시험에서 출제되었냐고?

사법시험 1차에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있던 시절, 1989년 치러진 사법시험 31회에 실제로 출제되었던 기출문제다.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사리에 밝으며 법조인으로서 소양이 있던 분들이 이런 황당한 문제에 덜미가 잡혀 낙방의 고배를 마시곤 했다. 이런 문제에 대비하여 연도와 단편적인 사실들을 암기하느냐 마느냐가 법조인이 되느냐 마느냐를 가르기도 했기에 사법시험 준비는 더 한층 가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왜 이런 문제를 풀고 암기하며 청춘을 이곳에서 낭비하고 있느냐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이 기출문제와 관련한 후일담이 하나 있다. 수험생 가운데 그때 당시 가장 많이 보던 한국사 교재의 해당 구절이 생각난 사람이 있었더란다. 그 수험생이 기억해 낸 구절은 "여유당전서 외 500여 권"이라는 구절이었다. "500여 권"이니 500권보다 많은 것 같고 게다가 "여유당전서 외"라고 했으니 그 이상이 되지 않을까. 이 수험생은 정답으로 몇 번을 찍었을까.

[마석우 변호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