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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들고 32세에 요절한 '노래 천재' 김현식

  • 홍장원
  • 입력 : 2018.08.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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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오브 락-68] 한국 가요계에서 '가객'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가수가 또 있을까 싶다. 살아서 유명했지만 죽어서 더 유명해진 가수. 30대 초반에 요절했지만 이제 50대가 넘은 후배 가수들이 그를 추억하며 '가장 존경하는 가수'라고 칭하는 가수. '가수 중에 가수' '노래에 미친 가객' 김현식에 관한 얘기다.

언젠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그를 떠올리며 한 얘기가 있다. "형이 가르쳐준 얘기가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1958년 태어난 김현식은 1990년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결코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없는 나이다. 고작 서른 몇 살을 산 그는 인생에 대해 많이 알기 힘든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지 30년이 지난 시간에 20대의 나이로 그를 떠나보냈던 후배 가수들이 희끗희끗한 머리로 그를 떠올리며 존경의 헌사를 바친다.

앞서 '나는 가수다'에 나온 박완규가 김현식의 '사랑했어요'를 부르며 "현식이 형이 이 무대를 보면 기특해하지 않을까 한다"며 말 못할 표정을 지은 것이 카메라에 잡힌 바 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떠난 김현식이 온갖 평지풍파를 겪으며 바닥에서 올라와 힘겹게 '나는 가수다' 무대로 재기한 박완규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겪었을까. 하지만 박완규는 무대에서 가슴을 치고 손가락을 위로 올리는 세리머니를 펼치며 무한한 존경의 뜻을 표한다. 가요계의 '레전드'라고 부르는 게 당연해진 이승철조차 김현식 얘기가 나오면 한 수 접고 들어간다. 그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김현식을 놓고 "스승처럼 여기는 가수"라는 취지로 얘기했다.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웠다는 것이다. 김현식은 '가수가 추앙하는 가수'인 셈이다.

김현식은 젊은 시절(그는 젊어서 요절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조차 어색할 수 있겠다) 알아주는 방랑자였다. 아프면 약 대신 술을 먹으며 아픔을 달랬고(결국 그 때문에 간이 나빠져 사망했다)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음악다방을 전전했다. 가요계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비가 붙어 싸움질을 했고 연습실에서 그와 의견 충돌을 빚었던 동료가 그의 주먹에 맞아 KO된 적도 있었다(나는 가수다 자문위원을 맡았던 작곡가 장기호라고 한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여러 배경과는 무관하게 그는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간장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두고 서울 중구에서 태어나 몇 번의 전학을 거쳐 수유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명문 보성중학교에 들어갈 당시 그는 전교 4등의 성적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기타에 푹 빠지며 공부를 등한시했고, 때마침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방황하다가 경기고에 낙방하는 아픔을 겪는다. 명지고에 입학한 그는 DNA에 아로새겨진 운명의 여정을 따라 밴드부에 가입했다. 하지만 선배들 몰래 금관악기를 불다가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선배의 악기에 손을 댄 것이라 한다). 선배와 한바탕 싸움을 벌인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본격적인 방랑의 길로 접어든다. 이렇게 보면 김현식을 상징하는 두 축인 '음악'과 '방황'의 큰 가닥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 완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후 그의 운명의 신이 선택한 대로 흘러간다.

자퇴 이후 검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종로에 있는 음악다방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걷는다. 여기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비범한 재주를 가진 그를 주변에서 가만둘 리가 없었다. 이 시절 원로 개그맨 전유성이 음악다방 DJ를 맡았는데 김현식에게 "넌 음악다방에만 있기 아까우니 꼭 가수가 되라"는 취지의 격려의 말을 했다고 한다.

점점 활동 범위를 넓힌 그는 나이트 무대에 설 정도로 나름의 역량을 인정받았고, 대마초 파동 등 몇 번의 우여곡절을 거쳐 드디어 1980년 데뷔곡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실린 첫 번째 앨범이 나온다(김현식을 존경하는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밴드 이름은 바로 여기서 따온 것이다).

김현식 하면 떠오르는 목소리는 걸걸하게 허스키한 목소리다. 죽음 직전의 김현식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 생긴 오해다. 데뷔 당시 김현식의 목소리는 타고난 미성이었다. 얇은 미성을 바탕으로 하늘 높이 쭉쭉 뻗어올라가는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 바리톤의 성대를 가진 사람들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음역대를 넓히려 한다. 치열한 노력으로 파사지오 구간을 넘는 요령을 익혀가며 3옥타브 이상의 고음이란 무기를 손에 얻으려 한다. 반면 큰 노력 없이 쭉쭉 올라가는 높은 목소리를 타고난 보컬은 안정된 저음이 주는 카리스마를 갈망한다. 결국 타고난 성대가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지려 한다는 얘기다. 김현식 역시 높이 올라가는 자신의 목소리가 일정 부분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그는 잦은 밤샘, 말술, 줄담배 '3종 세트'로 몸을 혹사시키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무대위에서도 로커였고, 무대 아래에서도 로커였다.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로커였다. 이런 생활 환경에서 성대가 타고난 그대로 유지되기는 힘들었다. 얇고 짱짱하던 그의 목소리에는 점차 '디스토션'이 걸리기 시작했고, 김현식을 상징하는 허무한 목소리 색채는 하루하루 깊어져갔다.

1984년 '사랑했어요'가 실린 두 번째 앨범을 내놓을 당시, 김현식의 목소리는 어느덧 좀 변해 있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가요 중에 하나라고 불러도 무방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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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어요>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님 떠나가면 어이해

바람결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이제와 생각하면 당신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찾아와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인 것을

나에게 심어주었죠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후략



이 노래는 김현식 작사, 김현식 작곡의 노래다. 이것만 봐도 그의 음악적 재능이 단지 노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는 허무한 삶의 양태를 그에 맞는 음표와 노랫말로 변환시킬 수 있는 타고난 음악인이었다. 이 노래가 지금까지 널리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로 김현식이 설정한 음의 최고음도 한몫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 노래 최고음은 '마음이 아프다는 걸' 할 때 '프'에서 걸리는 2옥타브 솔이다. 특별히 성대를 조련하지 않은 남성도 올릴 수 있는 음이라 할 수 있다(물론 김현식처럼 부르기 쉽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절절한 가사와 클라이맥스에서 확 터져주는 구성까지 더해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중 하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몇 개의 밴드를 거친 그는 1985년에는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유재하의 '어벤저스'급 라인업으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그룹을 만든다. 이후 유재하가 탈퇴한 자리에 박성식을 끌어들여 '비처럼 음악처럼'이 실린 세 번째 앨범이 나온다(유재하 역시 요절하고 장기호는 팀을 떠난 자리에 김종진, 전태관이 남는다. 이들이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게 지금 동명의 2인조 밴드다). 박성식이 작사·작곡한 '비처럼 음악처럼' 역시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전설적인 곡이다. 김현식 특유의 후천적인 탁성이 시원하게 터지는 청량감을 만끽할 수 있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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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처럼 음악처럼>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 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오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 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오



그렇게 아픈 비가 왔어요

오~ 오 오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가수 이름만 들어도 이 노래가 얼마나 명곡인지 알 수 있다. 가요계 전설 임재범은 물론 김범수, 거미 등이 이 노래에 본인의 색깔을 입혔다. 이 노래의 백미는 클라이맥스에서 숨막히듯 밀어붙이는 절규다. '아름다운 음악 같은 우리의'에서 나오는 '리' 등등에서 '2옥타브 라'가 나오는데 김현식의 원곡을 들으면 이전 파트에서 김현식 특유의 거친 호흡으로 청자의 귀를 사로잡은 뒤 섬세한 샤우팅으로 고음을 찍으며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988년에는 '언제나 그대 내 곁에'라는 곡이 실린 네 번째 앨범을 냈다. 이듬해에는 신촌블루스와 함께 '골목길'을 녹음했고, '비 오는 날 수채화' 영화 사운드트랙에 참여해 강인원, 권인하와 함께 동명의 주제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모두 지금까지 한국인이 매우 사랑하는 명곡이라 할 수 있다.

김현식의 죽음이 안타깝고 아픈 이유는 그가 정점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건강을 다쳐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다. 그가 타계한 해인 1990년 김현식은 3월에 다섯 번째 앨범을 내놓았다. 신촌블루스와 함께한 앨범도 같은 해 나왔다. 하지만 몸을 돌보지 않은 그는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졌고, 여섯 번째 앨범을 준비하던 1990년 11월 자택에서 간경화로 세상과 이별했다. 그의 유작이 바로 그 유명한 '내 사랑 내 곁에'다. 김현식의 죽음이 주는 추모 효과가 더해져 무려 200만장이 팔려나가는 히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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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하는데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시간은 멀어짐으로 향해 가는데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을 모르고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 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병마를 딛고 힘겹게 녹음한 치열함이 그의 유작 앨범에 실려 있다. 김현식은 실제 세상을 떠나기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시 녹음을 해야겠다며 열의를 불태웠다고 한다. 세상을 떠날 것을 알고 한 얘기인지, 아니면 그가 실제 그렇게 믿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병원에 입원해서도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을 정도로 너무나 노래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이때 부른 노래가 2002년 1월 22일에 나온 'The Sickbed Live' 앨범에 실려 있다.

김현식의 노래를 놓고 추천곡을 추리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한국 가요계를 뒤흔들고 젊은 나이 홀연히 떠난 그를 다시 한번 추억해본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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