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스페셜리포트

중국 학부모 600명 집단시위 나선 이유는?

  • 홍혜진
  • 입력 : 2018.09.11 06: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지난 1일 중국 중부 후난성 레이양시의 한 학교 앞에 운집한 시위대가 시 정부의 강제전학 조치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농성하고 있다.
▲ 지난 1일 중국 중부 후난성 레이양시의 한 학교 앞에 운집한 시위대가 시 정부의 강제전학 조치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농성하고 있다.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56] 지난 1일 중국 중부 후난성의 현급 도시인 레이양시는 학부모 대규모 시위로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레이양시 학부모가 주축이 된 시위대 600여 명이 정부 교육 체계를 규탄하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시위대는 정부청사와 6개 학교 인근 도로를 점거하고 "사립학교 강제전학이 웬 말이냐"며 "공립학교에 다닐 자유를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서를 향해 화염병과 벽돌을 투척하는 등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튿날까지 이어진 철야 시위는 경찰이 시위대 46명을 연행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언제 다시 이 같은 움직임이 터져 나올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이날 시위는 레이양시 정부가 공립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5~6학년 학생 9000명을 인근 사립학교로 전학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발생했다. 공립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중앙정부 지적에 따른 것이다. 중앙정부는 학급당 평균 학생 수를 현재 100명에서 66명까지 감축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학을 통보받은 학부모들에게 당장 피부로 다가오는 문제는 학비였다. 월평균 수입이 2000위안(약 33만원)에 불과한 해당 지역 학부모들은 사립학교의 높은 학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토로하며 거리로 나섰다. 일부 사립학교 기숙사에서 안전 기준치를 초과하는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와 학부모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 같은 폭력 시위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직접 제기하기 어려운 중국에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다. 특히 수백 명이 참여해 폭력 시위를 벌였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시민들의 분노가 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외신은 "중국에서는 수십 년간 이어진 산아 제한 정책으로 부부가 한 명의 아이만 가질 수 있었다"며 "자녀 건강과 교육 문제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에 악영향을 끼치는 이번 조치는 격렬한 반발이 당연했다"고 덧붙였다.

불 보듯 뻔한 반발에도 시 정부가 조치를 강행한 배경은 따로 있다. 바로 임계점에 다다른 지방정부 채무다. 실제 지난해 레이양시가 떠안은 부채는 224억4000만위안으로 세수의 111%에 달했다. 부채가 점점 불어나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요 수입원인 석탄산업까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레이양시는 10년 전 대규모 개발을 위해 많은 빚을 진 상황이었다. 채무 만기가 닥쳐오자 심각성을 느낀 시 정부는 가장 먼저 사회 복지에 들어가는 돈을 졸라맸다. 이에 공립학교 시설 투자가 이뤄지지 못해 학급이 과밀화되면서 시 정부가 사립학교로 강제전학 조치를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앞서 지난 5월에는 공무원 월급이 일주일 이상 체불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공무원 급여가 체불된 것은 중국에서 레이양시가 처음이다. 몇 주 뒤에는 부채 상환에 실패한 시 산하 건설기업들이 디폴트를 선언했다.

극심한 지방정부 채무 문제는 레이양시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레이양시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중국 지방정부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 지방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규모는 2013년 27%에서 지난해 45%로 급증했다. 올해 3월 말 중국 재정부가 밝힌 지방정부 부채 규모는 16조6000억위안으로, 아직은 통제 가능하다는 것이 중국 정부 입장이지만 이는 축소 발표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방정부 산하 투자공사(LGFV)를 통해 빌린 음성 채무액이 공식 부채 규모에 맞먹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UBS는 공식 부채로 잡히지 않는 유사 부채까지 합칠 경우 중국 지방정부의 총 부채는 33조위안으로 공식 부채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간 중국 지방정부는 막대한 차입금으로 각종 투자 사업을 벌이며 무리하게 경제성장을 추구해오다 중국 전체의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도시화 추진이 중앙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와 맞물려 주택, 교통 부문을 중심으로 지방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는 요인으로 장기간 지속돼 온 것이 이 같은 위기를 부채질했다.

지난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정치협상회의)에서 인중칭 전인대 재정경제위원회 부주임은 "지난해 말 기준 지방정부 부채의 공식적인 통계치는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이라며 "자본 투자, 민관 합동 프로젝트, 지방정부 소유 기업 부채 등으로 위장된 지방정부 부채는 최소 20조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지난 4월 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직접 지방정부 부채 축소를 주문했다.

이에 중국 지도부는 지방정부 부채를 중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규정하고 규제 조치를 쏟아냈다. 중국 재정부는 지난 3월 말 금융기관들에 대해서 지방정부 채권 매입과 지방정부가 암묵적으로 보증하는 인프라 사업에 대한 대출을 금지했다. 중앙 정부의 회계감사 기관인 심계서는 최근 각 지방 정부에 직원들을 은밀히 파견해 숨겨진 부채 파악에 나섰지만 실제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지방 정부가 토지와 부채에 기반을 둔 자금 조달 방식에 의존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재정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혜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