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스페셜리포트

베트남 '급행비용' 문화를 아시나요

  • 하노이 드리머
  • 입력 : 2018.10.15 15:40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짜오 베트남-9] 영화 '공공의 적'을 기억하시나요. 공공의 적이란 이름으로 여러 편의 영화가 나와 있지만 시리즈의 시초가 된 것은 설경구와 이성재가 맞붙었던 1편이지요. 여기서 설경구는 강력반 형사로, 이성재는 돈에 눈이 멀어 부모를 죽인 패륜아 아들로 나옵니다(이 당시 이성재의 악역 연기가 너무 소름 끼쳐 상당 기간 이성재는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요. 광고가 다 끊어졌을 정도라고 하네요). 영화의 줄거리는 여러분들이 모두 아시다시피 이성재가 범인임을 직감한 설경구가 좌충우돌하며 이성재를 잡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지요. 영화 중간에 설경구가 의욕에 넘쳐 별다른 증거 없이 이성재를 거칠게 몰아세우다가 징계를 받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도 강력반에서 교통단속으로 바뀌게 되지요. 설경구가 교통경찰이던 시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한 아주머니가 몰던 차를 세워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하니, 이 아주머니는 은근한 미소와 함께 뇌물을 슬쩍 건넵니다. 망설이던 설경구는 뇌물을 받고 '가슈'라고 하며 아주머니를 보내죠. 이 순간 자괴감에 빠진 표정을 연출하는 설경구의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시대상을 보여주는 탁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지요. 이 영화가 나온 게 2002년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가 연출됐던 바로 그해이지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입니다. 그렇게 먼 과거라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2002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2788달러 정도였습니다. 1인당 GDP가 3만달러가 넘은 지금 보면 한없이 적어 보이지만 당시 한국은 꽤 풍요로운 시절을 보냈죠. 1998년 IMF 사태를 극복하고 월드컵 4강이라는 이벤트를 맞아 국운이 막 퍼져나가려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암암리에 뇌물을 받고 교통 위반을 눈감아주는 문화는 아직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상이 정말 많이 투명해진 요새야 이런 걸 아예 상상하기 어렵게 됐지만요.

베트남의 1인당 GDP는 아직 채 3000달러가 되지 않습니다. 하노이가 4000달러, 호찌민은 6000달러 정도 된다고 하는데 현지에서 체감하는 1인당 GDP는 이보다는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아직 결제의 대다수가 현금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어 통계로 잡히지 않는 부가가치가 어디선가 엄청나게 창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국의 3분의 1정도 되어 보이는 생각보다 높은 물가를 설명할 길이 없거든요. 이 문제는 다음에 다뤄보기로 하고 여하튼 분명한 것은 베트남의 1인당 GDP는 아직 한국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수준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급행비용' 문화가 여기에선 당연히 만연해 있겠지요. 따라서 앞으로 전해드리는 에피소드는 베트남을 비난하거나 평가절하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닙니다.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베트남 역시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투명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대두될 것이 분명하고 그럼 '급행비용' 문제 역시 시나브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니까요.

하노이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시는 분이 도로 위에서 겪은 일입니다. 대다수 한국사람은 베트남에서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도로를 뒤덮은 오토바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차 앞을 가로질러 갑니다.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 역시 글로벌 톱 수준의 터프함을 자랑하지만(방향 전환 깜박이를 켜면 오히려 뒤차가 속도를 내며 달려오죠) 베트남의 운전은 차원이 다릅니다. 차선도 신호도 모든 게 불분명해서 웬만하면 사고를 피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분은 하노이에서 워낙 오랜 기간 사신 덕에 용기를 내서 주말에 가끔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시내 고속도로, 우리로 치면 동부간선도로 같은 곳을 달리고 있는데 교통단속반이 차를 세우라고 했답니다. 운전을 하면서 이런저런 일로 워낙 많이 단속을 당한 탓에 이분은 아예 50만동(약 2만5000원) 정도의 뇌물을 따로 준비해 놓는다고 해요. 그런데 그날 따라 지갑을 여니 잔돈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지갑을 통째로 보여주면서 '지금 내가 돈이 없다'며 통사정을 했다고 해요. 그러자 이 교통단속반 반응이 엄청납니다.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고 해요. '여기서 바로 오른쪽 게이트를 나가 2분 정도 가면 곧바로 ATM을 찾을 수 있다. 거기서 돈을 인출하면 된다'고 알려주더랍니다. 그래서 이 주재원 분은 고속도로를 나가 ATM을 찾아 돈을 인출한 뒤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해 한 바퀴 돌아 이 교통단속반을 찾았다고 합니다. 돈을 건네주니 교통단속반이 씩 하고 웃으면서 보관하고 있던 자동차 등록증을 건네주더래요.

또 다른 에피소드 입니다. 가족과 떨어져 하노이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던 주재원이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한국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까다로운 베트남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했죠. 공항이 요구하는 모든 서류를 준비해 공증까지 끝내 강아지와 함께 비행기를 탑니다. 하지만 공항에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강아지를 들여보내주지 않더라는 겁니다. 사전에 공지된 모든 서류를 준비해왔다며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어요. 베트남어로 번역된 서류를 가져와야만 통과시켜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영어 서류는 받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너무 화가 난 이 분은 고래고래 따지면서 항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이어지던 실랑이가 좀 잦아들 무렵, 한 직원이 다가와 잠시 어디로 가자고 하며 이 분을 데려갑니다. 긴장되기도 하고 조금은 무서워도 하며 직원을 따라 작은 방에 갔더니 직원이 다른 얘기는 다 제쳐놓고 '100만동, 100만동'을 부르더랍니다. 약 5만원 정도 되는 돈이죠. 결국 이 분은 100만동을 지불하고 무사히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이 주재원은 '지금 같으면 서류 중간에 적절하게 지폐를 깔아두면서 설명을 했을 텐데'라고 당시의 일을 후회합니다.

하노이에 사는 한국인분들은 웬만하면 EMS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EMS는 우체국을 통한 소포 배달이죠. 물건이 제때 집을 잘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케이스도 비일비재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건강보조식품이나 콘택트렌즈, 기능성식품 같은 경계가 애매모호한 것들은 통관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우편이 오거나 전화가 옵니다. 당신 물건을 통과시키려면 허가증이 필요하다. 이러저러한 부처에 가서 허가증을 받아서 와라. 이런 식으로요.

한국에서 EMS를 통해 물건을 배송시킨 사람들은 거의 다 초짜인데 이 경우 대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한국으로 치면 이제 막 한국에 온 외국인을 상대로 보건복지부에 가서 허가증을 받아오라는 짧은 설명과 함께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인데, 그럼 이 외국인은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테고, 구글 검색을 통해 보건복지부 위치를 알아낸다 하더라고 몇 층 어떤 사무실에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할지 '멘붕'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허둥지둥 뭘 좀 알아보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요.

EMS를 통해 물건을 받아본 많은 교민의 얘기를 종합하면 결국 적절한 수준의 '급행비용'을 지불하면 물건을 찾아올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뒷돈을 좀 찔러줘야 이게 윤활유처럼 작동하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상당수 한국인은 EMS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EMS를 쓰는 것 자체가 "나는 베트남에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와도 같습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핸드캐리'라고 부르는 탁송업체들입니다. 한국에서 물건을 주문해 이 탁송업체에 보냅니다. 그러면 이 업체 직원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화물을 수화물 형태로 들고 오면서 세관을 통과하는 것이지요. 공항에서 사람과 함께 들어가는 화물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보지는 않으니까요.

앞서 부연설명한 바 있지만 아직 이런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해서 베트남을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한국인 예를 들어 설명했지만 이 모든 것은 다 국가가 발전 사이클을 그리며 생기는 한 과정입니다. 베트남에서만 급행료 문화가 남아 있는 건 아닙니다. 비슷한 경제 수준의 나라들은 대다수 비슷한 문화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전에는 당연히 그랬고요.

베트남이 고속 성장을 하면서 다수 외국 기업이 베트남 정부를 상대로도 비슷한 민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뇌물을 요구하는 기업이 있으면 담당자에게 연락해라'라고 얘기할 정도로 부패 척결에 나름 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방침이 일선 공무원 하나하나까지 퍼지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리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이걸 하나하나 전부 적발해 문화를 바꾸자니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되는 거죠. 막대한 행정비용을 들여 단속에 나선다고 해서 꼭 효과가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편익이 현 제도를 유지했을 때 드는 부패 비용보다 더 높다는 확신도 없거든요. 결국 현실 세계에서는 어정쩡한 위치에서 타협을 볼 수밖에 없는데, 그 모습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가 선진국 수준으로 완전히 근절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베트남이 성장을 지속하고 글로벌 기업이 더 들어오는 한 '급행비용 문화'는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지금보다 줄으면 줄었지 더 늘지는 않을 거란 얘기입니다. 당장 불편한 것이 많은 게 현실이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당장의 불편함은 감수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하노이 드리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