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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위 계승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 김덕식
  • 입력 : 2018.11.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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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로 의심받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진=AP연합뉴스
▲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로 의심받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진=AP연합뉴스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59]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태로 연일 사우디 왕실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배후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지목된 탓이다. 현재 사우디 국왕은 살만 빈압둘아지즈로 사우디 7대 국왕이다. 1932년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사우디를 건립한 지 86년이 지났다. 통상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살만 국왕은 3대 국왕이 되는 것이 적당하다. 많이 잡아야 4대 국왕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벌써 7대 국왕이다. 그 이유는 사우디만의 독특한 왕위계승 방법에서 비롯됐다.

현재 사우디 국왕인 살만은 직전 국왕인 압둘라의 이복동생이다. 압둘라 국왕도 이복형 파흐드에게서 왕위를 승계했다. 다른 왕권 국가와 달리 사우디 왕위는 장자 승계가 아닌 형제 승계로 이뤄진 셈이다. 이 같은 사우디 왕위 계승 방법은 기본통치법과 왕실충성위원회법에서 비롯됐다. 해당 법에 형제 상속을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

규정에 따르면 국왕이 형제나 다음 세대 왕자들 중 후계자 후보 1~3명을 선정한 뒤 왕실 각 집안 대표로 이뤄진 '충성위원회(Allegiance Council)'가 후보 중 한 명을 선출한다. 강제 조항이 아닌데도 형제 상속이 이뤄진 배경에는 초대 국왕의 영향이 컸다. 알사우드 초대 국왕은 호족과의 정략결혼으로 세력을 키워 1932년 사우디 왕국을 건국했다. 이렇게 결혼한 부인이 23명, 아들은 45명에 이르렀다. 그는 1953년 사망하기에 앞서 왕위 계승자로 첫째 아들 사우드를 지목하고, 또 다른 아들 파이잘을 다음 계승자로 임명했다. '형제의 난'을 우려해서다. 그의 뜻에 따라 그 이후에도 왕위 계승이 형제 간으로 이어졌다.

사우디 2~7대 국왕 6명 모두 알사우드 아들로 형제지간이다. 초대 국왕의 의지 덕분에 형제간 다툼은 줄었지만 부작용이 생겼다. 형제끼리 세습이 이뤄지다 보니 '노인 정치(gerontocracy)'라 불릴 정도로 고령화 현상이 심해졌다. 2015년 1월 80세 나이로 국왕에 오른 살만 국왕이 이 같은 형제 계승의 전통을 끊었다. 취임 직후 왕세제로 자신의 이복동생 무크린을 책봉했지만, 석 달 뒤 그를 실각시켰다. 그 대신 자신의 큰조카인 무함마드 빈나예프를 제1 왕세자, 친아들인 빈살만을 제2 왕세자로 지명했다. 왕위 계승이 초대 국왕의 아들 세대에서 62년 만에 손자 세대로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초대 국왕의 아들 세대에서 손자 세대로 왕위가 넘어가면서 왕자 간 분쟁이 터졌다. 작년 6월 빈살만이 친위 부대를 동원해 사촌형인 빈나예프를 감금하고 왕세자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조선시대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을 보는 듯하다. 빈살만 왕세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해 11월에는 정예군을 동원해 잠재적 정적인 사촌형 왕자들과 그의 측근들을 부패 혐의로 대거 체포했다. 당시 사촌형을 포함한 11명의 왕자, 여러 명의 장관 및 유력 기업인들을 구금했다. 그를 비판적인 성직자 지식인 등 500명을 호텔에 연금시켰다.

빈살만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점이 쿠데타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이번 왕자의 난을 앞두고도 쿠슈너와 이 문제를 상의해 미국의 지지를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권력의 핵심층인 수다이리파에 속해 있다. 수다이리파는 사우디 초대 국왕의 10번째 왕비인 수다이리 왕비의 후손들을 뜻한다. 당초 수다이리는 사우디 왕가에서 10번째 왕비라 왕위 쟁탈전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수다이리는 초대 국왕의 특별한 총애 속에서 아들을 무려 7명이나 낳았다. 수다이리 아들들은 '수다이리 세븐'이라 불리며 사우디 왕실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됐다. 수다이리파는 5대와 7대 등 두 국왕을 배출했고, 그 과정에서 정부 요직을 독식해 가장 힘센 세력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내 실종·피살 의혹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급파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도착해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을 만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내 실종·피살 의혹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급파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도착해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을 만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왕자의 난'을 통해 차기 왕위 계승자로 자리 잡은 빈살만 왕세자는 올해 카슈끄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사라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빈살만 왕세자가 야심 차게 준비한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에 글로벌 기업 관계자와 유명 언론들이 보이콧을 선언했다. 여기에 영국에 머물던 살만 국왕의 친동생이 돌연 귀국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흐마드 빈압둘아지즈의 귀국을 두고 "사우디 왕실 내부의 권력이 재편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또 소식통을 인용해 "이달 초 왕실 원로들이 카슈끄지 사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빈살만 왕세자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한 외교관은 "아흐마드의 귀환은 왕실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전통적인 통치 방식을 되살리겠다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흐마드는 사우디 왕실의 원로로, 살만 국왕의 유일한 생존 친형제지만 국왕과 정치적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살만이 2017년 왕위 계승 서열 1위(왕세자)였던 자신의 조카 빈나예프를 쫓아내고 아들 빈살만을 그 자리에 앉힐 때 이에 반대한 인사 가운데 한 명이 아흐마드였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아흐마드 왕자는 이후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행보를 보였다. 또한 사우디의 부패 단속을 비판하다 체포됐던 칼리드 빈탈랄 왕자가 석방됐다. 빈탈랄 왕자는 살만 국왕의 조카로 11개월 간 구금돼 있었다. 그의 석방은 카슈끄지 사태와 관련해 빈살만 왕세자에 대한 압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빈탈랄 왕자 석방과 관련해 사우디가 왕족 내 지지 강화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BBC가 전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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