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어디까지 실화일까

  • 양유창
  • 입력 : 2018.12.0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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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양유창 기자의 시네마&] 1997년 11월 외환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를 그린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실제 뉴스릴 화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금 모으기 운동으로 모인 금은 기업의 부채를 갚는 데 쓰였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영화는 관객 200만명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당시를 살았던 관객이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을 느끼면서 그때의 상황과 영화가 묘사하는 가상의 과거를 비교해보게 될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시민들은 영화 속 허준호가 연기한 갑수처럼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기에 그에게 공감하면서 이야기의 다른 두 축인 한국은행 팀장(김혜수)과 금융맨(유아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곧잘 관객의 흥미를 잡아 끈다. 그 실화가 첨예한 사안일수록 관심은 증폭된다. 현실감은 영화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영화는 종종 실제 사건과 허구를 뒤섞곤 하는데 이때 어떤 관객은 영화 전부를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사극이 나올 때마다 역사 왜곡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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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가부도의 날'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외환위기의 경우, 사건이 벌어진 지 21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제2의 경술국치'라고 할 정도로 워낙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영화 제작사와 감독은 이 영화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영화 속 직책이나 사건들은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것을 살짝 바꿔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통화정책국을 통화정책팀으로,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국으로, 한국은행 총재를 한국은행 총장으로 바꾼 식이다. 이는 아마도 명예훼손 같은 법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나름의 방안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만든 창작자의 관점이다. 실화와 허구를 뒤섞은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관객이 감독의 관점에 동의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IMF 구제금융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당시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IMF를 적극적으로 불러들인 장본인으로 고위 경제관료를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실제 벌어진 일은 영화와 많이 달랐다. 특히 IMF에 대한 관료들 입장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고위 경제관료를 악당으로 설정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부 경제관료는 그동안 모피아(재무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혹은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불리며 자주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할리우드가 꽤 자주 월스트리트를 악당으로 묘사해온 것처럼 한국 영화에도 고위 관료와 정치인은 항상 부패하다는 스테레오타입이 존재하고, 영화는 이를 클리셰처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실제로 어떠했는지 비교해 볼 필요는 있다. 특히 요즘처럼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영화 속 이야기를 팩트로 믿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아는 것이 영화 속 마지막 주장처럼 깨어 있는 시민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어디까지 실화일지 궁금할 당신을 위해 다섯 가지 팩트체크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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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가부도의 날'
1. 한국은행에 여성 팀장 있었을까?

영화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한시현 통화정책팀장은 계속해서 코너에 몰리면서도 끝까지 소신을 지키는 인물이다. 그는 카리스마로 부하들을 지휘하고 또 남자들뿐인 상관들을 대할 때도 철두철미하다.

이상적인 공무원상이지만 아쉽게도 당시 한국은행에는 팀장급 이상의 여성은 없었다. 한은 역사상 여성 팀장이 처음 탄생한 것은 2008년으로 외환위기 11년 후다. 서영경 당시 경제연구원 국제경영연구실장이 주인공으로 그는 2013년 부총재보로 발탁돼 한은 최초 여성 임원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016년 퇴임한 그는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SGI 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은행 첫 여성 팀장 및 첫 여성 임원이었던 서영경 대한상의 SGI 원장
▲ 한국은행 첫 여성 팀장 및 첫 여성 임원이었던 서영경 대한상의 SGI 원장

한국은행 내 통화정책팀이라는 직제도 실제와 달랐다. 지금은 팀제로 운영되지만 당시엔 과장이 팀장 역할을 했다. 당시 통화운영과장은 훗날 서울외환중개 사장을 역임하는 정희전 과장으로 남성이었다. 또 당시 정규영 국제부장은 외환위기로 인한 국가부도 가능성을 1997년 3월께 보고한 인물이어서 한시현 캐릭터를 만드는 데 참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영화에서 한시현은 뱅상 카셀이 연기한 IMF 총재와 구제금융 조건을 놓고 충돌한다. 하지만 당시 IMF와의 협상 과정에 한국은행 팀장은 배석하지 못했다. 한국은행에선 오직 이경식 총재만 협상 과정에 참석했다. 아마도 한시현은 당시 이런 인물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바람에서 창조된 인물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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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가부도의 날'
2. 한국은행과 재경원은 IMF 구제금융을 놓고 갈라섰을까?

영화는 한시현과 대결하는 상대역으로 조신제 재경국 차관에게 악당의 특성을 부여해 선악 갈등 구조를 만들었다. 조신제를 연기한 조우진은 젠체하는 표정과 사람을 무시하는 말투로 분노를 일으킨다. 특히 그가 회의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통화정책팀원 강윤주(박진주)에게 "커피나 좀 타오지?"라고 할 때 코웃음을 칠 관객이 많을 것이다.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은 강만수였다. 모피아의 전형인 데다 훗날 이명박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면서 직권남용,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징역 5년2개월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인 인물이기도 하다. 아마도 악인으로 설정하기에 가장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행과 재경원은 갈등 관계가 아니었다. 당시는 한국은행 독립성이 지금처럼 지켜지지 않았고 재경원과 갈등을 빚을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금융사의 자율권을 강화하고 감독 체계를 단일화하는 법안 처리를 놓고 정치권의 여야 갈등이 훨씬 심했다.

영화에선 IMF 구제금융을 받느냐 마느냐를 놓고 한국은행과 재경국이 대립한다. 재경국은 적극적이고 한국은행은 반대한다. 하지만 당시 IMF와의 협상을 머뭇거린 쪽은 오히려 재경원이었다. 강경식 경제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은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대안을 검토하느라 IMF행을 미뤘다는 이유로 나중에 청문회에서 책임을 추궁당하기까지 했다. 이후 새로 부임한 임창열 경제부총리도 IMF로 가는 것에 미온적이어서 그는 일본 재무성에 돈을 빌리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반면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였다. 영화 속에서 한국은행 총장 역할을 맡은 권해효가 IMF행을 반대하는 한시현의 우군 역할을 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 총재는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IMF 구제금융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집무실에 스탠리 피셔 IMF 수석부총재,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부 차관보, 테드 트루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국제금융국장 등을 초대해 반드시 IMF로 갈 것이라고 설득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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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가부도의 날'
3. 위기 한복판에서 경제수장 교체 이유는 뭘까?

엄효섭이 연기한 청와대 경제수석은 영화 속에서 무능한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외환위기 징후를 보고받은 후 그의 첫 대응은 한시현 팀장이 호명하는 사람을 긴급 소집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엔 조신제 차관의 손을 들었다가 다음번엔 한 팀장 손을 들어준다. 결국 막후 실세인 조 차관 눈 밖에 나 IMF와의 협상을 앞두고 경질된다.

실제로도 외환위기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경제수석 교체가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11월 19일 전격적으로 김인호 경제수석과 강경식 경제부총리 사표를 수리하고 관세청장 김영섭을 경제수석으로, 통상산업부 장관 임창열을 경제부총리로 발탁했다. 이때가 아들 문제로 고심하던 김영삼 대통령이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시점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두 사람을 경질한 사유는 대선을 앞두고 나빠진 여론 속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이후 강경식과 김인호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무능한 관료로 몰려 김대중정부에서 구속까지 된다.

외환위기라는 큰 파도를 만난 와중에 갑작스러운 경제수장 교체로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는 일시적으로 마비 상태가 됐다.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아무런 자료를 남기지 않고 떠나는 바람에 후임 경제수장은 업무를 파악하느라 우왕좌왕했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제수장들. 왼쪽부터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김인호 전 경제수석, 임창열 신임 경제부총리, 김인섭 신임 경제수석.
▲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제수장들. 왼쪽부터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김인호 전 경제수석, 임창열 신임 경제부총리, 김인섭 신임 경제수석.

영화는 IMF로 가느냐 여부가 전임과 후임 경제수석의 갈등 사유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강경식과 김인호는 이미 IMF 구제금융을 받기로 IMF 측과 조율을 해놓고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바로 그날 경질되는 바람에 IMF 구제금융 신청 발표는 이틀 뒤로 미뤄지게 됐다.

또 영화에선 새로 부임한 경제수석(김홍파가 연기)이 뱅상 카셀과 함께 IMF와의 합의서에 서명하지만 실제로는 임창열 부총리와 이경식 총재가 당시 IMF 총재인 미셸 캉드쉬 옆에 나란히 앉아 서명했다. 임 부총리는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IMF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가 디폴트가 임박했다는 한국은행 총재의 말을 듣고 태도를 바꿨다.

1997년 12월 3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앞줄 왼쪽)와 임창열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앞줄 가운데),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앞줄 오른쪽)가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 1997년 12월 3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앞줄 왼쪽)와 임창열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앞줄 가운데),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앞줄 오른쪽)가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4. 외환위기를 감추는 비공개 밀실회의 있었을까?

영화에선 한시현이 올린 외환위기 가능성 보고서에 따라 청와대에서 비상회의가 열리고 그 회의에서 외환위기 타개 대책을 비공개로 추진할 것을 결정한다. 이에 한시현은 국민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며 반발한다.

실제로도 11월 7일 오후 4시 경제수석이 주재하고 재경원과 한은이 참가하는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이날 한국은행이 작성한 '외화유동성 사정과 대응방안' 보고서가 처음 논의됐는데 이 보고서에는 실제 가용 가능한 외환보유액이 알려진 것보다 적어 국가부도(디폴트)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충격적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전에도 한보 부도와 기아차 처리 이후 나빠진 국가신용등급과 동남아에서 진행되는 외환위기 파장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을 언급하는 보고서가 한국은행과 재경원에서 올라오긴 했지만, 심각하게 논의된 것은 이날이 거의 처음이다. 그만큼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를 잘 몰랐고, 외환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이날 참석자들은 외환위기 대응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국가부도 위기라는 것을 공개할 경우 더 큰 국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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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가부도의 날'
5. 외환위기 때 역발상 투자로 돈 번 금융맨 있었을까?

영화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윤정학은 외환위기가 벌어진 원인이 부실한 신용관리에 있었다는 것을 관객에게 설명해주고, 과감하게 역발상 투자를 감행해 떼돈을 번다. 당시 쓰러져간 평범한 아버지를 대변하는 갑수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인 그는 자신의 인생 역전 성공에 기뻐하면서도 휘청거리는 국가를 보면서 착잡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강방천 에셋플러스 자산운용 회장
▲ 강방천 에셋플러스 자산운용 회장
IMF 외환위기 당시 큰돈을 번 금융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97년 종잣돈 1억원을 투자해 1년10개월 만에 156억원으로 불려 전설적인 역발상 투자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 돈으로 1999년 에셋플러스투자자문을 설립했고 현재까지 '가치투자의 달인'으로 불리고 있다. 껌이 팔리면 은박지를 떠올리고, 벤처붐이 일면 책상 만드는 회사와 보안장치 만드는 회사를 눈여겨보고, 고가의 청바지가 잘 팔리면 데님 만드는 회사를 찾아간다는 그의 일상생활 기반 투자 원칙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강 회장은 부동산 투자에서도 수완을 발휘해 서귀포 땅과 판교 땅으로 큰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또 진승현 전 MCI코리아 부회장, 김석기 전 중앙종금 대표, 권성문 전 KTB투자증권 회장 등도 외환위기 당시 급락한 사업체와 부동산을 사들여 엄청난 수익을 남긴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법정에 섰다는 나쁜 공통점이 있다. 인수·합병 전문가로 활약하며 정관계 로비를 벌이던 진승현 씨는 2000년 진승현게이트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끝에 2002년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연극배우 윤석화의 남편이기도 한 김석기 씨는 업무상 배임과 골드뱅크 주가 조작 혐의로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가 2016년 말 자수해 구속됐고, 권성문 씨는 6억원 횡령 혐의로 지난 9월 기소된 상태다.

[양유창 기자 sanit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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