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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몇 단이십니까

  • 장혜원
  • 입력 : 2018.12.0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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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몰랐던 북한-54] 수년 전, 북한에서 온 친구와 교회를 간 적이 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그에게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목사님을 소개해주기 위해서였다. 교회로 간 그날, 우리는 교회 앞에서 만난 장로님의 안내로 작은 사무실로 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던 목사님은 우리를 보더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잠시 후 두 분의 대화가 끝나고 손님으로 보이는 그 어르신이 나가셨다.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목사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나는 오랜만에 문안 인사와 함께 친구의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우리의 대화를 깨고 문득 그 친구가 질문했다. "목사님, 목사님은 몇 단이십니까?" 나도 목사님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친구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야?" 나는 다시 친구에게 물었다. "목사님은 1단이신지, 아니면 3단이신지 묻는 겁니다." 친구의 대답에 우리는 더욱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좀 전에 이 방을 나가신 분은 2단이라면서요? 그러니까 목사님은 몇 단이신지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친구는 씩씩하게 되물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질문을 이해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 사무실에 계셨던 어르신이 나간 다음 우리를 안내해 준 장로님이 목사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다. "저분 이단이죠?" 목사님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셨고, 그 상황을 지켜본 친구는 '이단'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제멋대로 해석했다. 그 친구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이단'을 태권도 단급 제도처럼 1단, 2단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종교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취급하는 북한식 종교관으로 세뇌된 그 친구에게 나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 내가 알고 있는 얕은 종교적 지식을 쏟아냈다. 북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편협한 생각과 부정적 인식, 종교 지도자에 대한 불신은 뿌리가 꽤 깊다. 북한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후반에 전후 복구 건설을 진행하면서 남아 있던 종교를 사실상 모두 없애 버렸다.

북한의 배타적 종교관을 엿볼 수 있는 단편 소설이 하나 있다. 1951년 한설야가 쓴 '승냥이'라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수길이는 시궁창에 떨어져 있는 고무공 하나를 주웠다는 죄 아닌 죄로 미국 선교사 아들에게서 폭행당한다. 조선 사람들이 반발할 것을 두려워한 선교사는 고열에 시달리는 수길이를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았고, 친미적 성향인 병원장과 짜고 결국 수길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교회 학교를 동경하던 수길이와 승냥이 탈을 쓴 미국 선교사라는 소설 속 대립 구도는 현실의 우리(북한)와 적, 공화국(북한이 스스로를 칭해 자주 사용하는 말)과 전쟁의 원흉 미국이라는 대결 구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승냥이는 북한에서 적이라는 대상을 상징화할 때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현재 남한에서는 멸종 상태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는 승냥이가 왜 북한에서는 적이라는 상징 동물이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어렸을 적 어른들로부터 승냥이는 먹잇감을 단번에 죽이지 않고, 고통스럽게 죽는 것을 보면서 서서히 죽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승냥이의 잔인성을 북한은 적이라는 대상에 투영한 것 같다.

소설 '승냥이'에서 결국 선교사는 평화라는 선한 탈을 쓰고 조선에 기어든 간악한 승냥이로 묘사된다. 소설은 이후 북한에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밖에도 영화 '최학신의 일가', 연극 '성황당' 등과 같이 반종교적 작품이 북한 주민의 종교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종교는 허황되고 악랄하다는 이미지가 각인되다 보니 북한 사람 대부분은 종교를 무턱대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북한 주민들은 미신이라 부르는 점 보는 행위를 즐긴다. 어느 동네에 누가 갓 신이 내린 신동이라는 소문이 나면 주변 동네 아낙들은 물론이고 먼 지방에서 지위가 높은 당 간부들도 야밤에 몰래 찾아가거나 전용차로 자기 집으로 모셔가 점괘를 듣는다. 불안한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본성인 것 같다.

북한에서 성경을 소지하고 있다 발각되거나,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바로 정치범으로 연행된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아닌 다른 사상을 믿는 것 자체를 국가에 대한 반역이자 도전이라고 간주한다. 언젠가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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