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너진 놈이야" 항공사 직원의 마지막 한마디

  • Flying J
  • 입력 : 2018.12.0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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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76인승 여객기를 훔쳐 자살 비행을 벌인 항공사 지상직 직원 리처드 러셀의 평소 근무 모습. /사진=러셀 페이스북
▲ 미국에서 76인승 여객기를 훔쳐 자살 비행을 벌인 항공사 지상직 직원 리처드 러셀의 평소 근무 모습. /사진=러셀 페이스북
[두바이 파일럿 도전기-83] TV에서 멀쩡하게 웃고 떠들던 스타가 어느 날 갑자기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이어 '우울증'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한다. 전문가들은 "우울증 환자도 평범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 "겉으로는 판단하긴 어렵다"며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우울증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은 '소수의 사람만 겪는 병'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일반적인 인식보다 더 가까이 널리 퍼져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시대에선 더 그렇다. 항공기 조종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철저한 관리를 요구받고, 정기적으로 정신건강 체크를 받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앓고 있던 환자가 비행기를 멋대로 조종해 고의 추락한 사건이 미국에서 최근에 일어났다. 차이가 있다면 조종사가 아닌 항공사 직원이 저지른 일이었다는 것이다.

외딴 섬에 추락한 뒤 기체가 분해된 채 나뒹굴고 있다.  /사진=CBS뉴스
▲ 외딴 섬에 추락한 뒤 기체가 분해된 채 나뒹굴고 있다. /사진=CBS뉴스

◆비행기 훔쳐 한 시간 넘게 한 자살비행

지난 8월 10일 미국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 주기되어 있던 호라이즌 항공 소속의 터보프롭 항공기인 Q400이 갑자기 이륙했다. 관제탑에서 허가를 내리지 않은 무단비행이었다. 곧 바로 공항관계자들 모두가 비상을 선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라이즌항공 소속 직원이 빈 항공기를 훔쳐서 이륙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인근 군부대의 F-15 전투기 2대가 긴급출동해 요격을 준비했다. 조금이라도 테러 위협이 있을 경우 바로 격추시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후 1시간 넘게 기체를 180도로 기울이는 등 곡예에 가까운 비행을 하면서 F15를 따돌리던 여객기는 결국 공항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케트론 섬에 추락했다. 다행히도 당시 항공기에는 승객과 화물이 없었으며, 추락 지점도 사람이 없는 작은 섬이었기에 인명피해는 비행기를 조종한 한 명으로 끝났다. 여객기를 조종한 사람은 호라이즌항공 지상직인 29세 남성 리처드 러셀로 판명됐다.

곧 이어 추락 지점인 케틀론 섬 인근에서 비행기록장치가 발견됐으며, NTSB 측에서 분석에 나섰다. 공항 운항책임자는 러셀이 "합법적으로 비행기에 접근권이 있었으며 보안규정 위반사항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알래스카 항공의 CEO 브래드 틸든은 러셀이 "그의 신원조사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어떻게 그가 이런 복잡한 구조의 기계를 조종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러셀이 무단으로 몰고 있는 비행기를 F15 전투기가 쫓으면서 요격태세를 하고 있다. /사진=CBS뉴스 캡쳐
▲ 러셀이 무단으로 몰고 있는 비행기를 F15 전투기가 쫓으면서 요격태세를 하고 있다. /사진=CBS뉴스 캡쳐

◆평범한 남자의 무너진 삶

러셀은 호라이즌에서 2015년부터 2인1조가 되어 항공기를 견인하거나 화물을 내리고 싣는 일, 비행기 청소하는 일 지상직 근무 등을 해왔다. 공항의 지상직 근무는 그 종류가 광범위한데, 그의 업무는 정확히 지상근무요원(ground handler) 중 '수하물 담당자(Baggage handler)'로 밝혀졌다. 쉽게 말해 그는 호라이즌 항공 소속의 공항 수하물 담당자였지 항공기를 조종할 수 있는 조종사가 아니었다.

그는 계속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평소 때는 멀쩡해 보였고, 그를 아는 주변 사람 모두가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의 동료는 그가 "조용하며 주변과 사이가 좋았다"고 말했으며, 그의 가족은 '믿을 수 있는 남편(faithful husband)'이었고, '사랑스러운 아들(loving son)'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인적이 없는 외딴 섬에 비행기를 추락시킨 것을 두고서는 "명백하게 다른 이를 해칠 의도가 없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자살비행을 하던 중 관제탑과의 교신에서 "누구도 다치게 할 의도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객기가 추락한 시애틀 도심에서 50㎞ 이상 떨어진 케트론 섬. 중간에 연기가 보인다. /사진=CBS뉴스 캡쳐
▲ 여객기가 추락한 시애틀 도심에서 50㎞ 이상 떨어진 케트론 섬. 중간에 연기가 보인다. /사진=CBS뉴스 캡쳐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어요"

당시 교신을 들어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비행기 무단절도 이후 관제탑에서 그를 도우려고 하자 그는 "됐어요, 딱히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전에 비디오 게임을 몇 차례 했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비행 조종이 미숙하다는 걸 인정한 후 이륙 당시 예상보다 연료를 많이 사용했으며 때문에 관제탑의 일부 설명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를 안전히 착륙시키고 싶어하는 관제탑에서 그에게 인근 공군비행장에 착륙하라고 권고하자 러셀은 "아, 거기 착륙하려고 하면 아마 그들이 저를 공격하겠죠? 아마 조치를 취할 테죠"라고 말한다. 또 여객기를 좌측으로 회항하라고 하자 "저는 아마 (이 행위로) 종신형을 살아야 하겠죠? 이런 행동을 했으면 그게 마땅해요"라고 대답한다.

빨리 연료가 떨어지기 전 빨리 착륙하라는 명령에는 "모르겠어요, 그러기 싫어요. (저는) 이대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저를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많죠. 이 일을 알게 되면 많이들 실망할 겁니다"라며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어요. 저는 그냥…무너진 놈이에요, 나사가 몇 개 풀렸죠. 이제서야 깨닫게 됐네요"라고 되뇐다. 그리고 곧 기수를 돌려 시애틀 도심에서 50㎞ 이상 떨어진 케트론 섬의 숲으로 가 여객기를 고의 추락시키면서 목숨을 끊는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비극의 끝이었다.

[Flying Johan/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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